[인문학 칼럼] 부산의 야구박물관은 홈런을 칠 수 있을까
스토리텔링 개발도 중요, 사전 조사·연구 선행돼야
류승훈 부산근현대역사관 운영팀장
이번 주말이면 부산근현대역사관 개관 특별전 ‘마, 쌔리라 야구도시 부산의 함성’이 막을 내린다. 전시가 끝날 즈음이 되면 처음 발을 내디뎠던 출발선이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개관에 맞춰 문을 여는 첫 특별전이었던 만큼 주제에 대해서 치열하게 논의하던 자리가 생각난다. 부산 시민의 관심이 뜨거운 ‘야구’로 주제를 정했지만 막상 야구와 관련한 자료는 수집된 게 없어서 처음부터 난관이었다. 다행히 KBO(한국야구위원회)와 롯데 자이언츠 구단, 부산의 야구 명문 고교 등에서 협조를 해준 결과, 무사히 전시자료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중 마음에 들었던 전시자료는 1973년에 제작된 ‘축! 개선 3관왕 김용희군 현수막’이었다. 지금처럼 기계로 인쇄한 플래카드가 아니라 같은 반 친구들이 손수 색칠해서 만든 대형 현수막이었다. KBO 아카이브실에서 이 현수막을 보자마자 나는 경남고 학생들의 남다른 야구사랑과 김 선수에 대한 친구들의 따뜻한 우정을 스토리텔링 하기에 제격인 자료라고 여겼다. 그런데 지난 1월, 김용희 롯데 2군 감독이 직접 손자를 이끌고 야구 특별전을 보러 왔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마침 방송국에서 특별전 촬영이 있는 날이었다. 50살 나이를 먹은 현수막 앞에서 김 감독이 인터뷰하는 모습이 화제가 되었으며, 이 자료를 찾아 전시한 우리에게도 뿌듯한 순간이었다.
야구 특별전은 곧 종료되지만 아쉬워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2026년 부산 기장군에 한국야구박물관이 개관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야구의 역사 문화를 집대성해 보여줄 한국야구박물관은 다른 지자체에서도 유치하고자 경쟁이 치열했다. 야구는 우리나라 스포츠 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높은 종목이거니와 120여 년 역사를 지니고 있어 전시자료도 차고 넘친다. 게다가 야구박물관은 보는 전시 외에도 던지고 치고 달리는 체험까지 할 수 있으므로 앞으로 많은 관람객이 방문할 것으로 예상된다.
교육은 ‘국가의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고 하지만 박물관 건립도 마찬가지이다. 적어도 한국야구박물관은 100년 미래를 바라보고 건립돼야 한다. 박물관의 시설과 규모, 전시기법과 인테리어까지 모두 100년을 견딜 것을 예상하고 지어야 한다. 더욱이 한국야구박물관은 하나의 스포츠를 주제로 하는 박물관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선보이는 기관이 아닌가. 우리가 흔히 아는 고고 미술 역사 민속 등을 전시한 국공립 박물관과 확연히 다른 그 무엇을, 한국야구박물관만의 정체성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 특별함을 갖추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야구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조사하고 검토하고 연구하는 등 수많은 공을 들이는 수밖에 없다. 수십만 번 공을 던지고 치고 잡는 연습을 해야 비로소 야구선수가 될 수 있듯이 한국야구박물관도 그만한 공력을 들여야 우리나라의 대표적 박물관으로 우뚝 설 수 있는 법이다.
한국야구박물관의 성공적 개관을 바라며 몇 가지 제안을 해보고 싶다. 박물관 개관의 기본 요건은 첫째는 시설 건립, 둘째는 콘텐츠 확보, 셋째는 전시 스토리텔링과 연출이다. 물론 세 요소가 따로 분리된 것은 아니고 서로 유기적 관계를 지니고 있다. 콘텐츠 확보의 측면에서 보면 한국야구박물관은 이미 반쯤의 성공이 보장돼 있다. KBO 아카이브실에는 그간 수집한 수만 점의 야구 자료가 소장돼 있기 때문이다. 이따금 큰 박물관을 짓기 위해 예산을 확보했지만 정작 전시유물은 확보하지 못한, 공중누각의 사례와는 출발점부터 다르다. 그런데 문제는 매년 선수들과 구단으로부터 엄청난 자료들이 기증된다는 점이다. 현재 설계된 수장고의 규모로는 아마 몇 년을 버티기 어려울 것이므로 특별한 대책이 필요하다. 한국야구의 방대한 역사와 문화를 일목요연하게 하나의 스토리 라인으로 꿰어 전시 연출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한국야구박물관은 야구도시 부산을 넘어 한국의 야구를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에 알리는 박물관이다. 산처럼 쌓인 전시 스토리 가운데 빛나는 보석을 골라내기 위해 사전에 철저한 조사와 연구가 선행돼야 할 것이다. 요즘은 시민에게 효과적으로 다가서기 위한 각종 전시연출 기법이 개발되고 있어 최근의 전시 트렌드에 대해서도 세심한 검토가 필요하다. 한편, 형식적 자문회의보다 박물관 전문가, 야구 연구자, 관계자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실질적 회의가 필요하고, 이런 자리를 통해 꼭 결과물이 도출돼야 한다.
나는 야구 특별전의 문을 연 뒤에 만약 최동원 선수가 돌아와 전시를 본다면 어떤 평을 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투지와 집념의 사나이였던 그의 눈으로 본다면 부족한 점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야구 기획전이 부산에서 처음 개최됐고, 스포츠 전시를 타석에 오르게 했다는 점에서 성과가 있었다고 자평해 본다. 이제, 다음 타자는 한국야구박물관이다. 한국야구박물관이 멋진 홈런을 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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