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외과의사
외과(surgery)는 수술을 전제로, 질환의 진단과 치료를 담당하는 과를 말한다. 외부에서 물리적 충격에 의해 발생한 몸 안팎의 상처와 내장기관의 질병을 수술 하는 여러 진료과를 통틀어서 부르는 말로도 쓰인다.
21세기에 들어오면서 외과마저 위장관외과 간담췌외과 대장항문외과 유방외과 혈관외과 소아외과 외상외과 등으로 세분화되었다. 필자가 수련을 받던 1970, 80년대에는 외과가 분과되지 않아 전 영역을 다 수련을 받았고, 또 전문의가 되어서도 외과 전체의 진료를 담당했다.
모든 과가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외과의 수련은 어려우며 매우 혹독하다. 3일간 환자 곁을 지키다 스러진 경우도 있고, 열 몇 시간씩 수술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힘들게 전문의가 되더라도 외과의사라는 직업은 대표적인 ‘3D(difficult, dangerous, dirty) 업종’ 중의 하나로 인식돼 있다.
최근에는 이런 이유로 외과를 지원하는 의대생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으며, 외과와 더불어 소위 메이저과로 알려진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의 지원 역시 감소해 매우 안타깝다. 그 대신 개업이 상대적으로 쉬운 피부과 안과 성형외과, 그리고 전문의 취득 후 취업도 잘 되고 수익도 높은 정형외과 재활의학과 영상의학과 등에 대한 지망은 넘치다 못해 재수생까지 생기고 있는 실정이다.
외과 의사로서 최근 의대생들이 너무 편안한 것과 경제적인 측면만을 추구하는 것 같아 섭섭하기도 하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을 잘 읽고 거기에 순응해가는 이들을 나무랄 수만은 없을 것이다. 어쩌면 열악한 의료 환경과 사회적 분위기가 이들을 한 쪽으로 내몰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나라는 1977년에 의료보험 제도가 도입됐고, 불과 12년 만에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전 국민 의료보험제도를 정착시켰다. 그러나 성과의 이면에는 정부의 저수가 정책과 규제 일변도의 통제 정책으로 의료의 왜곡 현상을 심화시켰고, 그 결과 필수의료의 붕괴현상이 일어났다는 분석엔 대체로 이견이 없다.
단순히 의사를 많이 늘리면 필수의료 붕괴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이는 잘못된 판단이다. 본질은 의사 수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아과 오픈런, 응급실 뺑뺑이, 외과 산부인과 흉부외과 등 의료기관의 휴·폐업은 의료제도의 구조적인 잘못으로 인해 발생한다. 이 분야의 의사 수가 부족해서 나타난 현상이 아니다. 제도가 뒷받침 되지 않으면 아무리 의사 수를 늘려도 해결되지 않는다. 의사는 성인이나 신이 아니며, 그들도 부양할 가족이 있고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평범한 직업인이다. 무조건적인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지금 세계는 저마다 중앙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반도체 컴퓨터 로봇 자동차 원자력 등 국가의 미래 생존을 견인할 최첨단 산업분야에서 우수한 인재들이 불꽃 튀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의대 학생수가 늘어나면 우수 학생들이 의대로 쏠리게 될 게 불을 보듯 뻔한 현실에서 과연 우리나라는 미래 먹거리경쟁에서 버틸 수 있을까. 조만간 닥쳐올 국가의 장래와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깊은 고민이 지금 필요하다고 본다.
현재 열악한 의료 교육 현장에도 불구하고 의료인의 헌신으로 성장한 대한민국 의료는 세계가 부러워할 정도로 우수하다. 또 코로나 팬데믹 때에는 K-방역과 치료가 세계인의 부러움을 샀고, 의료인의 영웅적인 헌신에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이런 세계 최고의 의료 수준은 그냥 이뤄지는 것이 아니고 우리나라 의료인의 자긍심을 바탕으로, 피나는 노력과 희생의 결과로 얻어졌다고 본다.
특히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강한 통찰력과 사명감으로 무장하고, 나라의 미래를 위해 헌신 봉사하는, 소수지만 멋진 의사후배들의 소식들이 자주 전해지고 있어 매우 흐뭇하다. 이들이야말로 ‘참의사’요, 우리나라 의료의 희망이다. 이들을 소수정예로도 키워내려면, 문제가 있는 현행 제도를 과감하게 손질하는 특단의 정책 개발을 모색해야 한다. 전공의, 그들은 ‘돈벌이의 화신’도 아니고 ‘파업 전문가’도 아니며 실제로 떼돈을 벌수도 없다. 그저 세상에 도움이 되고 싶은 우리의 착한 이웃이고, 아픈 환자를 돌보는 선량한 시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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