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國父가 바꾼 공화국의 운명

정지섭 기자 2024. 3. 14.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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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24일 세네갈 다카르에서 열린 F24 정치 연합 집회에서 활동가들이 '선거 연기 반대, 대화 반대'라고 쓰인 매키 살 대통령의 사진을 보여주는 현수막을 내걸고 있다./EPA 연합뉴스

서아프리카 세네갈이 지구촌에서 유명해진 건 22년 전이다. 월드컵 축구 데뷔전이던 2002년 한일 월드컵 개막전에서 과거 자국을 식민 통치한 우승 후보 0순위 프랑스를 격침했다. 서울 상암 경기장에서 열린 이 경기는 지금도 세계 축구사 대이변을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다.

그 세네갈이 이번에는 정치 반전 스토리로 국제사회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후임자를 뽑는 대선을 전격 연기하며 권력 연장을 꾀하려던 마키 살 대통령이, 국민적 저항에 이은 헌법위원회(대법원 격)의 제동으로 대선 날짜를 조기 확정하고 임기 종료 뒤 물러나겠다고 밝히며 백기를 든 것이다. 반정부 시위로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진통도 있었지만, 쿠데타나 내전 같은 파국이나 외세 개입 없이 자체 역량으로 사태를 수습한 것은 아프리카에서 보기 힘든 장면이다.

보다 주목받는 것은 권력자의 폭주 조짐이 나올 때마다 자력으로 안정시키는 자정 시스템이 세네갈 현대사에서 되풀이돼 왔다는 점이다. 직전 대통령 압둘라예 와데 집권기(2000~2012)의 시작과 끝은 세네갈 민주주의의 저력을 극적으로 보여줬다. 와데는 독립 후 이어지던 사회당 1당 장기 집권 체제를 선거로 종식시킨 주역이다. 국제사회는 아프리카에서 선거를 통한 여야 정권 교체가 가능하다는 데 한 번 놀랐고, 그 과정이 순조롭다는 데 두 번 놀랐다. 그 와데가 3연임은 않겠다는 약속을 뒤집고 무리하게 대선에 나섰지만, 국민들은 투표로 장기 집권을 막았고 와데는 결과에 승복했다.

와데에 이어 대통령이 된 살도 임기 막판 대선을 돌연 연기하며 권력욕을 내비쳤지만 분노한 민심과 대선 연기에 대한 사법부의 무효화 결정에 뜻을 접었다. 이탈 직전 스스로 궤도로 돌아오는 세네갈 민주주의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시성(詩聖)으로도 이름을 떨친 초대 대통령 레오폴 상고르(1906~2001)다. 프랑스에서 교사로 살았던 그는 아프리카 정체성을 앞세워 독립을 이끌었으면서도 국가 초석을 다지는 과정에 프랑스에서 경험한 서구식 시스템을 이식했다. 사회주의 노선을 지향했지만, 편향되지 않고 개방성·민주성을 추구했다. 프랑스어권 지식인이라는 상고르의 개인 이력은 건국 초기 정치·경제적 안정에도 도움이 됐다.

인구의 90% 이상이 무슬림인 나라에서 가톨릭교도 출신임에도 절대적 지지를 받았던 상고르는 일당독재가 당연시되던 1976년 다당제를 도입했고, 그로부터 4년 뒤 스스로 물러났다. 권력은 유한하며 그 원천은 국민이라는 원칙을 몸소 실천한 것이다. 그 신념이 옳았음을 지금의 상황이 보여준다. 1959년 함께 독립하며 한때 세네갈과 연방을 이룬 니제르·말리·부르키나파소는 2020~2023년 잇따른 군부 쿠데타로 혼돈 상태에 빠져있다. 국부(國父)의 안목과 신념이 신생 공화국의 운명을 바꾼다는 사실을 1만3000㎞ 떨어진 두 나라, 한국과 세네갈이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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