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종북연대 시즌2

이용수 논설위원 2024. 3. 14.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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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진당 국회 진입 도왔던 야권연대
12년 만에 다시 하겠다는 민주당
옛 원탁회의, 범민련 인사도 동참
종북 행각, 내란 모의 또 봐야 하나
범민련 남측본부의 노수희 부의장(뒷줄 왼쪽에서 다섯 번째)이 2012년 3월 13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야권연대 공동선언 행사에 참석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앞줄에 유시민·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 김상근 목사,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앞줄 왼쪽부터)이 앉아있다. /오종찬 기자

12년 전 이맘때 국회 귀빈식당에서 ‘야권연대 공동선언’이란 행사가 열렸다.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이 19대 총선 후보 단일화에 합의한 것을 자축하는 자리에 범야권 인사들이 집결했다. 이 합의에 따라 민주당은 지역구 16곳을 통진당에 양보했다. 본선에서 통진당은 지역구 7석, 비례대표 6석을 얻어 원내 3당으로 도약했다.

의석 수와 지지율에서 통진당은 민주당의 10분의 1도 안 됐다. 동등한 연대 파트너가 될 수 없었다. 배후에 ‘원탁회의’가 있었다. 백낙청 교수, 박석운 진보연대 대표, 함세웅 신부 등이 민주당을 압박했다. 국회 귀빈식당 행사 기념사진을 보면 백낙청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민주당 한명숙 대표, 왼쪽에 통진당 이정희·유시민·심상정 공동대표가 앉아 있다.

이 사진의 백미는 백낙청 바로 뒤에 서 있는 범민련 남측본부 부의장 노수희다. 국내 종북·좌파 진영의 구심점 역할을 해 온 범민련의 야권연대 합류는 많은 것을 시사했다. 참석자들과 손을 맞잡고 “야권연대 파이팅”을 외친 노수희는 11일 뒤 평양에서 목격됐다. 김정일 사망 100일을 추모한다며 베이징을 경유해 무단 입북했다.

김정일 사망 100일을 맞아 무단 방북한 범민련 남측본부 노수희 부의장이 2012년 3월 25일 평양 김일성광장에 걸린 김정일 초상화 앞에 조화를 진정하고 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는 영원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글귀가 선명하다. /조선중앙통신

노수희는 김일성광장 김정일 초상화 앞과 김정일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에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라고 적힌 조화를 바쳤다. 개선문 앞에서 “아, 그 이름도 그리운 우리 장군님”이라며 ‘김일성 장군의 노래’를 불렀다. 조선중앙통신 인터뷰에선 “김정일 국방위원장님은 민족의 어버이”라고 했다.

104일 체류 마지막 날 평양에서 환송 집회가 열렸다. 노수희는 “통일 인사로 여생을 살겠다”며 목청껏 외쳤다. “위대하신 김일성 주석님 만세! 만세! 만세! 위대한 김정일 장군님 만세! 만세! 만세! 경애하는 김정은 최고사령관님 만세! 만세! 만세!”

노수희가 북을 누비는 동안 휴전선 이남에선 통진당의 실체가 드러났다. 후보 단일화 여론조사 조작, 비례대표 경선 부정이 잇따라 적발·폭로됐다. 사태 수습을 위해 열린 당중앙위에선 각목을 휘두르는 폭력 사태가 생중계됐다. 이듬해엔 국가 기간시설 타격을 모의하다 국정원에 덜미를 잡혔다. 주동자 이석기는 징역 9년을 받았다. 헌재는 통진당 해산 결정을 내렸다.

2012년 야권연대는 종북연대였다. 민주당은 통진당 지지율 3%가 탐났다. 박빙의 총선 수도권 승부에서, 궁극적으론 대선에서 득을 보려 했다. 원탁회의 압박에 못 이기는 척 통진당과 손잡은 대가는 비쌌다. 과반을 낙관한 총선에서 127석 대 152석으로 여당에 패했다. 대선도 졌다.

노수희의 만세 3창이 울려 퍼진 ‘조국통일 3대 헌장 기념탑’은 이제 없다. 김정일이 “김일성 동지의 조국통일 유훈을 철저히 관철하자”며 세운 탑이었다. 북 주민 전체가 신성시해 온 구조물을 두 달 전 김정은이 ‘꼴불견’이라며 철거했다. 방북 때마다 이 탑을 성지순례하며 ‘위수김동’(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을 외치던 종북 주사파들이 김정은의 패륜엔 입을 다물었다.

노수희가 이끌던 범민련도 간판을 내렸다. 올초 김정은의 ‘대남 사업 정리’ 한마디에 자진 해산했다. 이적단체 판결을 세 차례 받고도 버텼던 단체다. 통일운동가를 자처해 온 종북 주사파 세력은 김정은의 ‘민족 부정’ ‘통일 반대’ 선언에 동조하고 있다. 이들에게 ‘민족’ ‘통일’은 허울이고 ‘수령님 말씀’만이 절대 진리다. ‘반탁’을 부르짖다 소련의 지침에 ‘찬탁’으로 표변한 박헌영 일당이 원조일 것이다.

이런 세력이 12년 전처럼 민주당의 축복을 받아 국회에 들어오려 한다. 등장인물도 그대로다. 통진당은 ‘이석기 키즈’의 저인망식 재건 노력 끝에 진보당으로 거듭났다. 종북의 순도를 한층 높였다. 훈수만 두던 원탁회의는 ‘연합정치시민회의’로 간판을 바꾸고 민주당 주도 위성정당에 후보를 낸다. 그 심사를 범민련 출신이 했다. 민주당은 12년 전 흑역사를 잊은 걸까. 바야흐로 종북연대 두 번째 시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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