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속의 섬, 바다 벚꽃길…여긴 별주부전 고향
- 봄이 닿기 전 떠나본 사전답사 여행
- 섬 초입 ‘벚나무 터널’ 개화 땐 명물
- 수많은 캠핑·글램핑장… 성지로 부상
- 월등도까지 하루 두 번 ‘모세의 기적’
- 토끼와 거북의 숨겨진 이야기 엿봐
- 인근 팔포 돼지생갈비·서대구이 별미
차가 비토섬에 들어섰다. “와! 여긴 벚꽃 필 때 오면 정말 좋겠네요.” 말문이 막 트인 사람처럼, 일행이 말했다. 섬 들머리에 정겨운 벚나무가 길 양쪽으로 길게 줄지어 서 있었다. 봄이 더 익으면, 벚꽃 터널이 될 터였다. 섬을 더 둘러보니 도로 곁에 심은 벚나무가 꽤 많았다. 경남 사천시가 펴낸 사천관광 안내지도를 펼쳐 ‘비토섬’ 항목을 찾아봤다. 벚꽃이 명물로 꼽혔다.
“비토섬. 별주부전 휴앙지. 사천핫플. 연륙교로 이어진 비토섬은 바다와 갯벌이 공존하고 별주부전 전설이 서린 섬으로, 봄에는 벚꽃길 드라이브와 함께 어촌 마을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지난 7일이었다. 봄맞이 비토섬 여행이 드디어….
▮이 섬에 온 이유
그런데 한 가지 어려운 일이 있었다. 벚꽃은 아직 피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이는 어쩌면 여행 담당 기자의 숙명이다.
계절에 초점을 맞춰 여행 취재를 할 때 여행 담당 기자는 ‘미리’ 움직인다. 절정이 오기 전 현장을 취재하고 좀 일찍 기사를 써서 사람들이 그 정보를 참고해 제철 여행을 할 수 있게 돕는다는 기본 틀이 짜여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절정을 피해 다닌다고도 할 수 있다. 예컨대 봄을 맞이하려고 조금 일찍 길을 떠났더니 아주 또렷한 봄 풍경은 미처 만나지 못할 수 있다. 특히 지난 7일은 춥고 바람이 셌다. 손이 시렸고, 볼펜 잉크가 뻑뻑하게 굳는 느낌이 취재하는 내내 손끝에 전해졌다.
여행 담당의 숙명에 걸려든 우리는 비토섬을 더 다녀보기로 했다. 경남 사천시 서포면 비토섬을 봄맞이 여행지로 찍은 이유가 몇 가지 있다. 늦가을부터 이듬해 겨울 끝 무렵까지 이어지는 비토섬의 굴은 워낙 잘 알려졌다. 이와 함께 비토섬 봄기운도 유명하다.
▮캠핑·글램핑·낚시 명소
먼저, 비토섬 벚꽃이 있다. 인터넷을 참고하니 자연스럽고 소박하면서 화사한 비토섬 봄 벚꽃의 매력은 과연 사람을 끌어당기는 맛이 있다. 예쁘고 아담한 비토섬은 우리 설화 별주부전의 고향이기도 하다. 날 비(飛), 토기 토(兎)를 써서 비토섬이다. 날 듯이 뛰는 토끼가 떠오른다. 섬 형상 또한 토끼와 닮았다고 한다. ‘날 듯이 뛰는 토끼’ ‘나는 토끼’라는 뜻풀이에서 무엇을 느끼시는가? 그렇다. 생동하는 봄기운이다.
비토섬 넓이는 20만8000㎡(6만2920평)로 나온다. 비토섬에 관해 찾아보면 반드시 글램핑·캠핑·펜션을 만난다. ‘성지’ 수준이다. 이번에 가서 알았다. 비토섬에는 진짜로 글램핑장·캠핑장·펜션이 많다. 봄이 오면서 손님도 늘어나는지, 이번 취재를 앞두고 비토섬 한 글램핑장에 문의했더니 “예약이 꽉 찼다”는 답이 단박에 돌아왔다. 묵은 겨울을 털고 햇볕 잘 드는 바닷가에서 상쾌하게 캠핑! 이 또한 비토섬 봄기운의 한 요소다.
사천관광 안내지도와 사천시 홈페이지에서 주소를 확인해 가며 비토섬 안에 있는 캠핑장·글램핑장을 살펴보았다. 적어도 12곳은 된다. 실제로는 더 많을 듯하다.
▮하루 두 번 길 열리는 월등도
바다 풍경에 홀려 돌아다니다가 비토어촌체험휴양마을(서포면 거북길)에 들어섰다. 여기서 만난 안내인은 “10월부터 2월까지 굴이 참 좋고, 봄에 섬 입구 벚꽃이 아름답고, 글램핑장이 유명하고, 솔섬 쪽도 좋을 텐데, 이 시각이면 월등도에 들어갈 수 있다”고 알려줬다. 월등도?
월등도는 비토섬에 딸린 0.097㎢ ,해안선 길이 1.5㎞ 작은 섬이다. 월등도 건너가는 길은 평소엔 바다에 잠겨 있다가 하루 두 번 썰물 때 열린다. 아주 아주 작은 모세의 기적인 셈이다. 토끼와 거북 옛이야기를 담은 조형물이 서 있는 월등도 입구에 닿았을 때 오후 4시 반 언저리였다. 운 좋게, 물길이 열려 있었다. 차로 건너갈 수 있다. 월등도와 비토섬을 잇는 이 길 이름은 ‘바닷길’인데 표지석에 “하루에 두 시간 동안 두 차례 물이 빠져 육지와 월등도를 연결하는 길”이라고 써놓았다.
표지판과 덱길을 잘 만들어 둔 월등도에서 우리는 ‘본고장 토끼와 거북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다. 흔히 아는 별주부전 내용과는 살짝 달랐다. 거북이의 꾐에 빠져 용궁으로 간 토끼는 꾀를 써 ‘간을 꺼내 말리고 있어서 지금은 간이 없다’고 말하고는 겨우 빠져나온다. 그런데!
▮토끼는 왜 그리 빨리 뛰어내렸나
거북이 등에 타고 바다 위로 올라온 토끼는 월등도 근처에서 달빛에 비쳐 바다 위에 나타난 뭍의 형상을 보고는 진짜 땅인 줄 알고 성급히 뛰어내렸다. 토끼는 물에 빠져 죽었고 그 자리에 토끼처럼 생긴 작은 섬이 솟았다. 월등도에서 덱으로 이어진 토끼섬이 바로 그 섬이다. 토끼를 놓친 거북이는 용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거북섬이 됐다. 토끼섬과 멀지 않은 거북섬은 진짜로 거북이처럼 생겼다. 남편 토끼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아내 토끼는 바위 끝에서 떨어져 죽고, 지금의 목섬이 됐다. 비토섬 월등도에서 만난 별주부전에는 옛날 어부 식구들의 애환이 담긴 듯했다. 신데렐라 설화가 그림 형제의 손을 거치며 밝고 매끈한 이야기가 된 것처럼 별주부전도 그런 변화를 거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월등도에는 집이 있고 사람도 살고 있었다. 마당에서 일하던 아주머니를 만났다. “월등도 들어오는 바닷길은 하루 두 번 열리는데, 몇 시쯤인가요?” “시각은 줄곧 바뀌어서 달력의 물때를 봐야 압니다. 하루 네 시간쯤 열리는 셈인데, 바닷길이 잠기면 차도 사람도 못 다녀요. 근데 어디서 오셨소?” “부산에서 왔습니다. 국제신문에서요.” “아! 국제신문. 잘 알지요. 동래 근처에 있지 않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교대역 앞에 있지요. 고맙습니다.” “잘들 가세요.”
▮팔포의 밤, 다솔사의 아침
차가운 바닷바람 속에서도 기어이 몸을 푸는 봄기운을 느껴 충만해진 우리는 솔섬 쪽을 거쳐 삼천포항의 팔포로 갔다. 팔포에 숙소·음식특화거리·시장이 몰려 있다고 들었다. 팔포에서 박재삼문학거리(박재삼문학관)를 만난 건 행운이었다. 삼천포에서 자란 박재삼(1933~1997) 시인은 가난 속에서도 참으로 아름다운 시를 썼다. 박재삼 문학거리는 품격이 있었다. 이 거리에서 만난 시 한 구절을 여기 써둔다. “이것은 죽을 때까지/ 가리라고 봅니다./ 그런 엉터리 사랑이 어디 있느냐고/ 남들은 웃겠지만,” 이 구절 앞에서 한참 서 있었다.
팔포에서 우연히 찾아 들어간 ‘호야식당’ 돼지생갈비는 참 좋았다. 흡족했다. 근처 야식집 ‘지글보글’에서 맛본 서대구이는 끝내줬다. 이튿날 오전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저 유명한 사천 다솔사에 들러 아름다운 솔숲과 와불, 그리고 안심료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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