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老 예술가의 공통점

김지연 2024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 당선자 2024. 3. 14.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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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순을 바라보는 1세대 여성 조각가 김윤신은 아직도 직접 톱을 들어 나무를 다듬는다. 체력이 있는 오전에는 조각을, 오후엔 남은 체력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매일 4~6시간씩 꾸준히 작업한다. 그는 작년 남서울미술관 전시에서 나무의 속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실험적인 조각으로 화제가 되었고, 올해는 글로벌 화랑 리만머핀, 국내 대표 화랑 국제갤러리와 전속 계약을 맺고 세계 미술 시장으로 진출한다. 그의 대표작인 ‘기원 쌓기’는 소원을 빌며 쌓는 돌탑 모양 나무 조각이다. 원산에서 태어나 만주와 사리원을 거쳐 서울로, 다시 전쟁을 피해 부산으로 떠돌았고, 이후 프랑스 파리 유학과 아르헨티나 생활, 최근의 양구 레지던시까지, 세상을 돌며 쌓아 올린 그의 삶과 닮은 작품이다. 체력과 끈기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1970년대 한국 실험미술의 대표 작가 성능경은 요즘 ‘80대 신예 원로’라 불린다. 처음엔 몸을 써서 퍼포먼스를 벌이는 그의 예술을 이해하는 사람이 드물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작품의 의미가 알려졌고 마침내 전환기를 맞았다. 작년 11월 뉴욕 구겐하임에서 신문을 오려내며 유신 체제의 검열을 풍자하는 ‘신문 읽기’ 퍼포먼스로 기립박수를 받았다. 그리고 최근 국내외 유수 갤러리와 손잡고 활동하기 시작했다. 거리의 예술에서 시작해 중심부로 불려나온 것이다.

필자 역시 허리 재활을 위해 운동을 시작하면서 의외의 깨달음을 얻었다. 일엔 재능도 필요하지만 반복하고 지속할 수 있는 ‘체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을 망치거나 성취가 더뎌서 조바심이 들 때면 ‘망친 예술이 아름답다’는 성능경의 예술 기조를 떠올린다. 몸을 사려선 좋은 작품을 낼 수 없다. 열심히 망치고 계속 다시 하다 보면 열리는 어떤 지평이 있는 듯하다. 오랜 시간을 견뎌낸 예술가들이 이를 증명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망친 오늘을 다독이는 담대한 마음과 다시 하는 체력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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