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즉위 11주년 짓누른 '백기' 논란·보혁 갈등·건강문제
(바티칸=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 "10주년 선물로 가장 원하는 것은 평화입니다. 우리는 평화가 필요합니다."
정확히 1년 전, 프란치스코 교황은 즉위 10주년을 맞아 세상에 바라는 선물이 있느냐는 질문에 주저 없이 평화라고 답했다.
그러나 교황이 간청했던 평화는 그가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된 지 11주년을 맞은 13일(현지시간)에도 찾아오지 않았다.
3년 차에 접어든 우크라이나 전쟁에 더해 지난해 10월에는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테러 공격과 이스라엘의 군사적 보복으로 또 하나의 전선이 생겼다.
교황청 관영매체 바티칸 뉴스에 따르면 교황은 지난 1년간 공개 연설에서 우크라이나를 130회 이상,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60회 이상 언급했다.
교황은 무고한 희생자를 한 명이라도 줄이기 위해, 또한 우크라이나 전쟁이 인류 절멸을 초래할 핵전쟁으로 번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평화를 호소했다.
교황은 이날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수요 일반알현에서 다시 한번 '전쟁의 광기'를 비난했지만, 평화를 위한 그의 노력은 큰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
오히려 교황은 지난 9일 공개된 스위스 공영방송 RTS와 인터뷰에서 '백기'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이 알려지며 평화를 향한 진정성마저 의심받는 처지에 몰렸다.
교황은 이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상황을 보며 국민을 생각하고 백기를 들고 협상할 용기가 있는 사람이 가장 강한 사람이라고 믿는다"라고 말했다.
또 "상황이 더 나빠지기 전에 협상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도 했다.
이는 수세에 몰린 우크라이나를 향해 러시아와 협상을 촉구하는 듯한 발언으로 해석되며 교황은 거센 역풍을 맞았다.
당사자인 우크라이나는 교황을 비난하고 나섰다. 우크라이나 외무부는 자국 주재 교황청 대사를 초치하고 교황의 '백기' 발언에 항의했다.
독일과 폴란드 등 유럽 국가들도 부적절한 발언이라며 일제히 교황을 비판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은 우크라이나에 필요한 건 백기가 아니라 무기라고 강조했다.
논란이 커지자 교황청 이인자로 꼽히는 피에르토 파롤린 국무원장은 교황이 언급한 '백기'가 "적대행위의 중단을 의미한다"고 해명했다.
바티칸시국이 있는 이탈리아의 안토니오 타야니 부총리 겸 외무장관도 "교황은 평화를 원할 뿐 러시아를 편드는 것이 아니다"라고 옹호했다.
그러나 교황이 그전에도 러시아의 손을 들어주는 듯한 발언으로 비판을 받은 적이 있어서 이번 논란이 제대로 수습될지는 미지수다.
프란치스코 교황을 향한 공격은 내부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최근 한 추기경은 '데모스 2세'라는 필명으로 교황을 맹비난하는 글을 가톨릭 언론사인 '데일리 컴퍼스'에 실었다. 원조 '데모스'는 지금은 고인이 된 조지 펠 추기경이었다.
이 추기경은 교황이 신앙과 도덕과 관련해 신자들에게 혼란을 주는 모호한 태도를 보여 가톨릭교회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더 분열돼 있다고 주장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동안 동성애, 피임, 이혼 후 재혼자에 대한 성체성사 허용, 성직자의 독신 의무, 불법 이민 문제 등에 전향적인 태도를 보였고, 가톨릭의 식민 지배 가담과 사제의 성추행을 적극적으로 사과했다.
가톨릭교회 역사상 가장 급진적인 교황으로 꼽히는 프란치스코에 대한 보수파들의 공격은 늘 있었지만, 최근 교황에 대한 부정적인 기류와 맞물려 서서히 표면화하는 양상이다.
이와 더불어 지난 2년간 더욱 두드러지고 있는 건강 문제도 교황의 즉위 11주년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교황은 지난해 3월과 6월 호흡기 질환과 탈장 수술로 입원했고, 같은 해 12월에는 급성 기관지염에 걸려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 참석 일정을 취소했다.
최근 3주간은 감기와 기관지염에 시달려 일부 일정을 취소했고, 원고는 대부분 보좌관에게 대신 읽도록 했다.
올해 87세인 교황의 지속되는 호흡기 문제는 그의 행보를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들고 있다.
역대 교황 가운데 최장기 재위 기록 보유자는 초대 교황인 베드로 사도로 약 35년간 재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몇 세기 중에서는 1846년부터 1878년까지 32년간 교황좌에 머무른 비오 9세의 재위 기간이 가장 길었다. 1978년부터 2005년까지 27년간 재위한 요한 바오로 2세 전 교황이 그다음이다.
앞선 교황 265명 중에 선종할 때 프란치스코 교황보다 나이가 많은 이들은 7명 뿐이다.
chang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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