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중현]노인·청년 연금 ‘일국양제’가 필요해진 나라

박중현 논설위원 2024. 3. 13.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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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개봉한 일본 영화 '플랜 75'는 상당한 화제가 된 데 비해 흥행이 별로였다.

영화는 근(近)미래 일본에서 노인 빈곤, 청년층의 노인 혐오 범죄가 심각해지자 정부가 앞장서서 75세 이상 노인에게 안락사를 독려한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조사에서 국민 10명 중 7명 가까이가 노인 연령 기준을 높이는 데 동의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청년과 기성세대의 갈등을 심화할 수 있는 주제가 바로 국민연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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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 전쟁’ 위험 갈수록 커지는데
정치권은 위기감 없는 개혁안 내놔
박중현 논설위원
지난달 개봉한 일본 영화 ‘플랜 75’는 상당한 화제가 된 데 비해 흥행이 별로였다. 내년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둔 한국인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요소들 때문일 것이다. 영화는 근(近)미래 일본에서 노인 빈곤, 청년층의 노인 혐오 범죄가 심각해지자 정부가 앞장서서 75세 이상 노인에게 안락사를 독려한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20여 년 전 나온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단편 ‘황혼의 반란’에선 이보다 5세 적은 70세 이상 노인이 대상이었다. 노인 복지비 폭증으로 청년층 불만이 커지자 소설 속 정부는 노인의 약값, 치료비를 제한해 사망을 유도한다. 노인들이 반란을 일으켜 산속에 요새를 만들고 저항해 보지만 헬기로 독감바이러스를 뿌리자 간단히 진압된다.

고령화로 인한 세대 갈등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인간의 수명을 통제하는 디스토피아는 문학,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다뤄진 주제다. 영국 소설가 올더스 헉슬리는 90여 년 전 소설 ‘멋진 신세계’에서 수명이 60세로 제한된 미래사회를 그렸다. 이곳에서 인간은 노화 방지 약물로 20대의 젊고 건강한 신체를 유지하다가 60세가 되는 해에 화려한 예식을 거쳐 자연 원소로 돌아간다.

한국은 역사상 최단기간에 초고령사회에 들어서는 선진국이자, 초유의 0.7명대 출산율을 기록한 나라다. 1981년 노인복지법 제정 당시 노인의 연령 기준을 65세 이상으로 정할 때 평균 기대수명은 약 65세였다. 올해 초 보험개발원이 발표한 한국인 남성 평균수명은 86.3세, 여성은 90.7세다. 노인을 위해 부담하는 비용에 대한 청년층의 불만이 커지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조사에서 국민 10명 중 7명 가까이가 노인 연령 기준을 높이는 데 동의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청년과 기성세대의 갈등을 심화할 수 있는 주제가 바로 국민연금이다. 역대 정부가 개혁에 손대는 시늉만 하다가 땜질하는 바람에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났다. 개혁을 공약했던 윤석열 정부도 20개가 넘는 시나리오만 국회에 넘겼다. 이를 토의해온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산하 공론화위원회가 최근 개혁안을 2개로 추렸다.

현재 소득의 9%인 보험료율을 13%로 올리고, 40%인 소득대체율을 50%로 높이는 게 1안, 보험료율을 12%로 조금 올리고 소득대체율을 40%로 유지하는 게 2안이다. 둘 다 당초 2055년인 연금 고갈 시점을 7∼8년 늦추는 효과밖에 없다. 지금 25세 청년이 65세가 되는 2064년쯤이면 기금은 여지없이 바닥난다. 국회는 500인 시민 패널을 뽑아 이들이 토론을 통해 하나를 고르게 하겠다고 한다.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도 ‘우리 노후는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당신들 노후는 당신들이 책임져라’라고 하는 청년들이 받아들이긴 어려워 보인다.

국회 안보다 오히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내놓은 ‘신구 연금 분리안’이 주목을 받고 있다. 기성세대가 쌓은 보험료는 구연금, 앞으로 청년이 쌓을 보험료는 신연금으로 계정을 따로 떼어내자는 방안이다. 평생 보험료를 내도 원금조차 돌려받지 못할 거란 청년층의 불안을 잠재우려면 이 정도의 파격적 조치가 필요해졌다는 의미다.

정부와 국회의 연금개혁이 지금 논의 수준에서 결론 난다면 세대 간 갈등 격화는 피하기 어렵다. 언젠가 청년들이 한 나라 안에서 세대를 갈라 칸막이를 세운 일국양제(一國兩制) 연금제도를 요구하거나, 기성세대에 대한 적대감을 보이며 ‘연금파업’에 나서지 말란 법도 없다. 사회 구성원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이런 디스토피아적 상황은 피해야 한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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