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포럼] 잡음 큰 ‘한국형 이지스 구축함’ 사업
정부 결정 문제 삼아 소송전도
성장가도 달리는 K-방산에 찬물
정부가 소모적 갈등 중재 나서야
‘이지스’(Aegis)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의 방패’다. 현대의 이지스 구축함 명칭은 여기서 따왔다. 고성능 레이더와 중장거리 대공미사일을 이용해 목표 탐색부터 추적, 공격에 이르는 전 과정을 동시에 진행하는 통합형 이지스 전투체계를 탑재한다. 2007년 5월 25일 울산 HD현대중공업 6번 독(dock·선박건조시설). 우리 해군의 첫번째 이지스 구축함인 세종대왕함 진수식이 열렸다. 행사에 참석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축사를 통해 “세종대왕함이 우리 해군력을 한 차원 높여줄 것”이라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현재 이지스함 보유국은 미국, 일본 등 6개국에 불과하다. 충무공 이순신의 후예인 우리 해군이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라이벌 기업들이 더러 티격태격하지만 한화오션처럼 대놓고 경쟁사를 공격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것도 고객인 정부가 결정한 내용을 문제 삼아 소송전에 뛰어들었다. 한화측이 “정부에 대한 반발은 아니다”며 손사래치지만 예사롭지 않다. 믿는 ‘구석’이 있지 않고서야 이럴 수는 없지 않겠냐는 반응이 나온다. 업계에선 한화오션이 이참에 함정과 잠수함 등 특수선 사업 분야에서 HD현대중에 경쟁 우위를 점하려는 의도로 보고 있다. 그동안 방위산업 영토 확장에 집중해온 한화로선 그룹의 미래가 달린 일이니 그럴 수밖에.
HD현대중도 2022년 사법부 판단까지 나온 종결 사안이라며 반박하고 나섰다. 한화오션이 방사청의 결정을 문제 삼을 아무런 법적 권한이 없으며, 수사 기록과 판결문을 일방적으로 짜깁기해 사실관계를 크게 왜곡하고 있다는 것이다. 회사의 신인도가 훼손되는 데 대한 반격이다. 양사의 특수선 매출 비중이 전체의 10% 정도에 불과하지만 함정 건조는 상징적이라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는 전문가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동안 정부는 방산업계 내부에 분쟁이나 갈등이 생기면 주도권을 쥐고 조정하거나 통제했다. 업체들도 따랐다. 1996년 한국형 구축함(KDX-Ⅱ) 사업을 두고 현대중공업과 대우중공업의 경쟁이 치열해지자 국방부는 물량을 3척씩 나눠 과열을 막았다. 2001년부터 건조된 이지스 구축함 사업도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이 나눴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기술과 능력이 더 뛰어난 업체가 선도함을 건조하도록 개입하기도 했다. 하지만 웬일인지 이번에는 ‘강 건너 불구경’이다. K-방산은 요즘 괄목할 만한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다. 그만큼 정부 역할이 중요하다. 업체 갈등을 방치하다 KDDX 사업도 표류하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특정업체를 두둔한다면 국가 방위사업이 업체에 휘둘릴 수 있다. 불법행위를 묵인하는 것도 좋지 못한 선례를 남긴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정부가 서둘러 KDDX 사업 기준과 방침을 정리해 갈등 조정에 나서야 한다. 배가 산으로 가는 일은 막아야 하지 않겠나.
박병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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