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전공의 집단사직은 교육문제다
최근 전공의들의 집단사직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그동안 주먹구구식으로 가려져온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난맥상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한국의 의료체계 문제는 단지 의사 수 부족, 낮은 의료수가, 필수의료 붕괴 등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공공성을 상실해가는 치료행위 위주의 분절된 영리체계가 문제의 핵심이다. 이번 전공의 집단사직 사태는 온 국민이 한국의료체계의 근본적 문제를 종합적으로 학습하고 그 치유 방안을 공론화할 수 있게 하는 장을 만들었다는 나름의 효과를 가진다.
이번 사태는 의료문제를 넘어 의사를 길러내는 의학교육 전반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의사교육은 세 단계로 이뤄지는데, 첫째는 의과대학이라는 학교체계 안에서 이뤄지는 형식학습 과정이며, 두 번째는 대학병원이라는 의료현장 안에서 이뤄지는 도제식 수련과정이다. 세 번째는 의사가 된 이후 은퇴 시까지 지속되는 연수와 계속교육 과정이다.
우선, 의대생들은 식당 메뉴도 암기하려 든다는 농담처럼, 의대 학습에서 외워야 할 것은 참으로 많다. 최근 그 현장이 문제중심학습, 경험기반학습 등으로 전환되고 있지만 여전히 의대교육에서 암기는 대체불가 능력이다. 게다가 학년과 기수 서열에 의한 통제와 복종 문화는 전임의나 교수가 되어서조차 사라지지 않는다. 이러한 학습과정은 창의성을 지향하는 인공지능 시대의 풍토에 적합하지 않다.
전공의 단계에서의 도제식 수련과정은 더 큰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신분상 수련생이지만 거대병원의 40% 정도를 구성하면서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한다. 그들은 저임금 중노동에 시달리며, 배우는 시간보다 업무에 투입되는 시간이 더 많다. 한국의 거대병원들의 수익은 이들을 통해 유지된다. 전공의들은 2000명 증원이 곧 이러한 ‘의료 노예’들을 확충하는 수단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실, 직업 전문가 교육에서 ‘도제교육’은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지만, 전공의들의 저임금 중노동은 모든 종류의 도제교육 현장에서 똑같이 발견되는 고질적 병폐이다. 직업계 고교생들을 현장실습에 투입하는 과정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기업에서도 인턴들에 대한 열정 페이 논란은 끊이질 않는다. 교육자로 둔갑한 사용자들은 도제 수련생들을 학생이 아닌 값싼 노동력으로만 취급한다.
이런 약자로서의 전공의들이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약한 고리’를 형성하고 있다. 시스템의 붕괴는 약한 고리에서 시작된다. 이번에 불거진 전공의들의 집단사직 사태는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의 약한 고리가 어디인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대학병원의 교수들은 평소에 이런 사정을 뻔히 보고 있었지만 그동안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그들이 이제 와서 전공의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집단행동에 돌입하는 모습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제자들을 아끼는 마음일까 아니면 저임금 노동력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일까.
물론 모든 문제에 대한 책임은 무리한 정책 집행과 검찰수사라는 겁박을 일삼는 정부에 있다. 한국 민주주의 지수를 20위권에서 40위권으로까지 추락시킨 윤석열 정부의 행태는 의료 대란이라는 상황까지 만들어내었다. 집권 초기부터 ‘대화’라는 단어를 실종시킨 정부가 만들어낸 처참한 상황이다.
하지만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이번 사태는 파국으로 치달아서는 안 된다. 전공의들은 이 사태를 끝내고 병원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것이 모든 것을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윤석열 정부에 대항하는 제대로 된 방법이다.
돌이켜 보면, 의료와 교육은 그 처지가 비슷하다. 우리나라 의료체계와 교육체계 모두 세계적으로 찬사를 받고 있지만, 실상은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할 만큼 중병에 걸려 있다. 또한, 둘 다 ‘공교육체계’와 ‘건강보험체계’라는 국가적 강제장치에 의해 통제되고 있지만, 주로 민간에 의존하고 있으며, 끊임없이 ‘시장화’라는 영리주의 유혹에 시달리고 있다.
의사도 교사와 같이 스승 사(師)자를 쓴다. 1900년 대한제국 의사규칙에서 의사를 의사(醫士)로 표기하기도 했지만 해방 후 의사(醫師)로 바뀌어 법령화된다. 일제하 초기에 배출된 많은 의사가 독립운동에 참여했고, 5·18 광주에서도 의사들은 계엄군을 설득하여 병원문을 열도록 했고, 밀려드는 총상환자들을 무료로 치료했다. 저소득층과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보이지 않는 헌신은 말할 것도 없다.
의사는 하나의 직업인임을 넘어 도덕적 사명과 사회적 봉사를 천명으로 여기는 스승들이다. 그들이 최고의 엘리트 집단이라면, 문제 해결 방식도 국민의 존경을 받는 방식을 선택할 필요가 있다.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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