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의 시골편지]쇠똥구리
말똥구리랑 쇠똥구리는 이웃사촌. 그중 말똥구리는 예민한 성질인가 한반도에서 자취를 감췄다. 항생제를 먹은 말들이 싼 똥을 굴렸다가 그만 변을 당한 모양. 한번은 몽골에서 말똥구리 200마리를 수입했다던데, 녀석들 안부가 궁금해. 한편 쇠똥구리는 어떻게든 버티는 중인가 봐. 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덩만 참말 그러한가.
쇠똥구리는 똥을 둥그렇고 야무지게 뭉쳐 삐뚤빼뚤 밀고 간다. 덩어리가 약간 촉촉할 때 훨씬 잘 굴러가. 솜털이 가슬가슬한 참다래나 복숭아처럼 둥그런 똥덩어리를 발차기로 굴리는 걸 보면, 저는 힘들겠으나 엄청 귀여워. 한정반 리미티드 에디션이 아니라 ‘내 밑으로 오디션’ 자랑대회를 하는 듯 뽐내면서 어기영차. 지나가던 개 한 마리 멈칫. 개들 사이에서 공중화장실 격인 전봇대에 실례를 한 뒤 쇠똥구리를 쳐다보는데, 똥냄새에 컹컹 뒷걸음질. 똥을 굴리기를 참말 잘했지 안 그랬음 개에게 물릴 뻔. 쇠똥구리에게 학삐리(?)들이 시시포스의 신화를 들려주곤 하는데, 웃기지 말라고 그래. 쇠똥구리에게 똥 굴리기는 형벌이 아니야.
가정이나 사업을 경영하는 일도 일단 작은 덩어리부터 잘 굴려야 해. 한 주부가 여행을 떠나면서 냉장고에 붙여 놓은 글귀. ‘까불지 마라!’라고 적힌 다섯 글자 경고문. 해석인즉슨 ‘까스불 조심해라. 지저분하게 지내지 말고 청소해라! 마누라만 생각해라. 라면만 주야장천 먹지 마라’라는 말로 퍼뜩 알아먹어야지. 머리를 잘 굴려야 살아남는다.
봄바람이 살랑살랑, 봄치마는 팔랑팔랑, 날씨도 참 좋을시고. 방보다는 마당이, 동네보다는 꽃핀 공원과 산자락이 똥덩어리를 굴리기에 좋은 장소. 당신은 시방 무엇을 굴리며 살아가는가. 어떤 이들은 혀로 거짓과 독설을 굴리고, 두뇌로는 얍삽한 셈을 굴리며 삿된 이익에 탐욕스럽다. 저 스스로 싸지른 똥을 굴리면서도 부끄러움조차 몰라.
임의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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