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의 눈]‘바보’ 박용진

안홍욱 기자 2024. 3. 13. 22:1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 멤버다. 2011년 범야권 대통합 물결에 몸을 실었다. 혈혈단신으로 진보신당을 떠나 민주당원이 됐다. 민노당 후보로 두 번 총선에서 낙선한 박용진은 민주당 간판을 달고 20·21대 국회의원이 됐다. 20대 국회에서 이건희 전 삼성전자 회장의 4조원대 차명계좌 문제를 제기해 당국이 과세하도록 하는 등 재벌 저격수로 불렸다. 비리 유치원 명단을 공개했다. 국회를 통과한 ‘유치원 3법(유아교육법·사립학교법·학교급식법)’의 별칭은 ‘박용진 3법’이었다. 법안에 의원 이름 붙는 거, 흔치 않다. 21대 총선 서울 득표율 1위는 그냥 된 게 아니었다.

박용진을 주목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민주당의 97세대 대표 주자로 떠올랐다. 하지만 그에겐 계파와 세력이 없었다. 친문재인·친이낙연·친이재명 어디에도 속한 적 없는 늘 비주류, 이질적인 존재였다. 관계에 얽매일 필요가 없으니 발언도 소신껏 했다. 여기저기서 펀치가 날아왔다. 여당 시절 조국 사태를 비판하자 친문 지지층은 ‘당 나가라’는 문자폭탄과 욕설을 퍼부었다. 지난 대선 경선에선 유력 주자 이재명을 집중 공략했다. 대선 패배 후 전당대회에선 ‘어대명(어차피 대표는 이재명)’에 날을 세웠다. 이 대표가 공언한 불체포특권 포기를 이행하라고 요구한 그는 ‘수박’이 됐다. 주류에게 그는 ‘내부 총질러’일 뿐이었다.

박용진의 3선 도전이 좌절됐다. 서울 강북을 후보 경선 결선투표에서 정봉주 당 교육연수원장에게 졌다. 강북을은 박용진의 사반세기 정치적 근거지였다. 정봉주는 연고도 없는 곳에 박용진을 잡겠다고 찾아온 친명이었다. 박용진은 ‘현역 의원 평가 하위 10%’ 통보를 받는 순간 “분노, 당혹, 황당, 슬픔, 어이없음, 좌절, 허탈, 억울함”이 밀려왔단다. 당은 ‘박용진이 왜’라고 의아해하는 국민들에게도 설명하지 않았다. 박용진은 “과하지욕을 견디겠다”며 경선을 받아들였다. 친명 강성 당원의 전폭적 지지를 받은 정봉주에 득표율이 앞섰지만, 30% 감점 영향은 절대적이었다. 김한정·윤영찬 등 스스로 하위 20%라고 커밍아웃한 의원들이 죄다 떨어진 그 경선을 박용진도 피하지 못했다.

이 대표는 민주당 공천을 “혁신공천을 넘어 공천혁명”이라고 했다. 2022년 당대표 경선 때 “박용진도 공천 걱정하지 않는 당을 만들겠다”고 약속하고, 지난달 문재인 전 대통령을 만나선 ‘명문(이재명·문재인) 정당’을 다짐했지만 허언이었다. 비명만 솎아내는 혁명에 당 원로들이 공개적으로 우려했다. 혁명이 진행될수록 정당 지지율은 떨어졌다. 국민들 눈에 그렇게 비치는데 성공적 혁명일 리 만무하다.

이런 혁명에 횡사한 건 비명만이 아니었다. 보수정당과 차별화되는, 민주당의 69년 정치적 자산이자 정체성인 ‘민주’도 휩쓸렸다. 한 가지 의견만 있으면 이미 결론이 난 거다. 다른 의견이 있어야 토론이 된다. 때로는 시끄럽다. 하지만 그렇게 의견을 모아가야 민주 정당이다.

박용진은 왜 당권파 지지층의 공격을 받을 줄 알면서도 ‘입틀막’을 하지 않았을까. 그는 이렇게 얘기했었다. “저라고 쓴소리하는 게 즐거운 일이겠습니까. 당을 사랑하니까 그 일을 하는 거죠.” 박용진을 통해 민주당의 다양성이 살아 있음을 보여줄 수는 없었나. 민주당은 어쩌다 이런 정치인 하나 품지를 못하고 박절하는 정당이 되었나.

박용진은 경선 결선 투표를 앞두고 “정치적 손해에 발끈하고 눈앞의 이익에 민첩하게 움직이는 게 똑똑한 정치라면 저는 그냥 바보하겠다”고 했다. 패배 후엔 “민주당의 총선 승리를 위해 묵묵히 헌신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광야로 나가는 그의 발길이 어디에 닿을지는 그조차 모를 것이다. 박용진의 행보는 차차 지켜볼 일이다.

민주당이 ‘비명 심판’에 몰두하는 사이 4·10 총선은 한 달도 남지 않았다. 계파색이 옅은 김부겸 전 국무총리가 3인 상임선대위원장 체제의 한 축을 맡고, 친문 고민정 최고위원도 돌아왔다. 분열의 씨앗을 통합의 모양새로 일단 덮었다. 김 전 총리는 “이제 친명이니 친문이니, 이런 말들은 내다 버리자”고 했다. 윤석열 정부가 남은 3년을 폭주할 것인가, 퇴행적 국정 방향을 돌려세울 것인가. 총선 결과에 달렸다. 선거를 목전에 둔 민주당은 신뢰를 많이 까먹었다. 지금이라도 민주당이 정권심판의 도구가 될 준비가 돼 있는지 자문해 보라. 준비가 됐다면 방향과 목표와 자세를 분명히 하고 지지를 호소하라.

안홍욱 논설위원

안홍욱 논설위원 ahn@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