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 두 대표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김태훈 2024. 3. 13.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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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1988년 세계는 희한한 광경을 목도했다.

당시 유럽공동체(EC·현 EU의 전신) 정상회의와 주요7개국(G7) 정상회의 등에 프랑스 대표가 두 명이 참석했기 때문이다.

국제사회는 '한 나라에서 대표가 한 명만 나와야지' 하며 마뜩찮아 했으나 프랑스로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투스크 총리가 취임하자마자 과거 PiS 내각 시절 추진한 정책들을 하나하나 뒤집자 두다 대통령은 발끈하며 거부권 행사 의지를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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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1988년 세계는 희한한 광경을 목도했다. 당시 유럽공동체(EC·현 EU의 전신) 정상회의와 주요7개국(G7) 정상회의 등에 프랑스 대표가 두 명이 참석했기 때문이다.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과 자크 시라크 총리가 주인공이다. 좌파 사회당 소속인 미테랑은 1981년 임기 7년의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런데 1986년 실시된 하원의원 총선거에서 야당인 공화국연합 등 우파가 이기며 여소야대가 되었다. 프랑스 제5공화국 헌법상 대통령이 총리를 임명하려면 하원 과반의 동의가 필요했다. 이에 따라 서로 다른 정파에 속한 대통령과 총리가 함께 나라를 이끄는 이른바 ‘코아비타시옹’(cohabitation·동거정부)이 탄생한 것이다.

프랑스 대통령을 지낸 자크 시라크(왼쪽)와 프랑수아 미테랑. 미테랑이 대통령이던 1986년 시라크가 총리로 임명되면서 프랑스 역사상 첫 동거정부가 탄생했다. 미테랑의 최대 정적이었던 시라크는 1995년 미테랑의 뒤를 이어 프랑스 대통령에 취임했다. AFP연합뉴스
프랑스와 같은 이원집정제 국가에서는 흔히 대통령이 외교와 국방, 총리가 경제 등 내정을 각각 책임진다. 문제는 이들 영역이 칼로 두부를 자르듯 명쾌하게 구분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례로 외국과 통상협정을 맺는 것은 외교와 경제가 겹친다. 국내 방위산업 육성은 경제 문제인 동시에 국방 현안이기도 하다. 시라크는 ‘외교라고 해서 대통령한테만 맡길 수 없다’는 논리를 들어 미테랑이 참석하는 각종 국제회의에 동행했다. 외국 정상과의 양자회담도 마찬가지였다. 총리가 끼며 본의 아니게 ‘3자회담’이 되곤 했다. 국제사회는 ‘한 나라에서 대표가 한 명만 나와야지’ 하며 마뜩찮아 했으나 프랑스로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프랑스는 1986∼1988년에 이어 1993∼1995년, 1997∼2002년까지 세 차례 동거정부를 경험했다. 국민 직선으로 뽑힌 대통령의 권력을 총리가 제한하는 것은 모순이란 비판이 커졌다. 결국 2000년 프랑스는 헌법을 뜯어고쳤다. 대통령 임기를 7년에서 5년으로 줄여 하원의원 임기와 맞추는 개헌을 단행한 것이다. 이로써 2007년부터 5년에 한 번씩 5월 대선을 치르고 그 직후인 6월 하원 총선을 실시하는 관행이 자리잡았다. 대통령을 배출한 여당이 하원 다수당도 될 가능성을 높임으로써 동거정부가 생겨날 여지를 축소했다. 실제로 그 뒤 동거정부는 사라졌다. 하원이 여소야대가 되어도 동거정부 출현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12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에서 미국·폴란드 정상회담이 열려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왼쪽부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도날트 투스크 폴란드 총리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폴란드를 대표해 대통령과 총리 두 명이 나란히 참석한 점이 이채롭다. EPA연합뉴스
12일 열린 미국·폴란드 정상회담이 눈길을 끈다. 폴란드를 대표해 안제이 두다 대통령과 도날트 투스크 총리 둘이 나란히 백악관에 가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만나 대화를 나눴다. 폴란드 정부 형태도 대통령과 총리가 권력을 분점하는 이원집정제다. 법과제도당(PiS) 출신 두다 대통령과 시민연단 소속 투스크 총리는 정치 성향이 정반대다. 투스크 총리가 취임하자마자 과거 PiS 내각 시절 추진한 정책들을 하나하나 뒤집자 두다 대통령은 발끈하며 거부권 행사 의지를 내비쳤다. 아무리 이원집정제 국가라도 대통령과 총리의 ‘코드’가 맞는다면 외국 정상과의 회담에서까지 서로 경쟁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진 않았을 법하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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