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 그라운드에 드리운 ‘정치색’
국민의힘 지자체장 입김 논란
‘도 지원’ 시민구단 한계 드러나
K리그2 충남아산FC의 홈 개막전 유니폼 색깔 논란이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충남아산 선수들은 구단의 상징 색깔인 파랑 대신 빨강 유니폼을 입고 뛰었는데, 정치 논리에 휘둘린 것이란 비난이 잇따른다.
충남아산 선수들은 지난 9일 아산 이순신종합운동장에서 열린 부천FC와의 2024시즌 K리그2 홈 개막전에서 빨간 유니폼을 입고 뛰었다(사진). 구단의 첫 번째 상징색은 파랑이다. 빨강은 두 번째도 아닌 세 번째 상징색인 데다가 상대 팀 부천FC의 대표 상징색이었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구단 서포터스 ‘아르마다’와 팬들은 이날 경기장을 찾은 김태흠 충남 도지사와 박경귀 아산 시장의 소속 정당인 ‘국민의힘’ 상징색 빨강에 유니폼 색깔을 맞춘 것이라고 비난했다. 김 지사와 박 시장은 각각 명예 구단주와 구단주로 이날 빨간색 유니폼을 입고 등장해 관중들에게 인사말을 했다. 당시 관중석 곳곳에 “축구는 정치도구가 아니다” “아산의 축구는 죽었다” “정치에 자신 없으면 때려치워” 등 문구가 담긴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충남아산 팬들은 다음달 총선을 앞두고 구단이 지역 정치인들의 입김에 휘둘린 것이라고 보고 있다. 당시 경기장에는 국민의힘 소속 충남 아산갑 지역구 현역 국회의원 이명수도 방문했다. 지역 시민단체 ‘아산시민연대’는 특히 박경귀 아산 시장을 지목하며 선거중립 의무 위반이 의심된다고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박경귀 시장은 허위사실 공표에 따른 선거법 위반으로 1·2심에서 당선 무효형을 받고 다시 재판을 받고 있다.
김태흠 충남 도지사는 13일 유니폼 색깔 논란에 대해 해명했다. 김 지사는 이날 충남 도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시축도 하고 격려사도 해달라고 해서 갔다. 유니폼이 빨간색인지 파란색인지 노란색인지도 몰랐다”며 “사복을 입고 시축할 수 없으니 그날 경기장에서 주는 것을 입었다”고 말했다.
앞서 구단은 “아산은 이순신 장군이 영면한 곳”이라면서 “이 장군 옷의 상징색인 빨강 유니폼을 입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충남아산 팬들은 구단 지원과 운영에 전권을 쥔 지자체장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벌어진 일로 구차한 해명이라고 보고 있다. 충남아산은 지난 시즌 홈 개막전에서는 파랑 유니폼을 입었다.
지자체장 한두 명 입김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시민구단의 한계만 다시 도드라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 지사는 이날 기자회견 서두에 “구단에 재정적 어려움이 있어서 민선 7기 때부터 재정 지원을 시작했다. 도의회에서도 타 시군과 형평성 문제가 있어서 적절치 않다고 하는데도 프로축구단이 도민과 함께 가고 자부심을 불어넣는 구단으로 거듭나고 1부리그로 올라가길 원해서 적극적으로 지원했다”고 말했다. 행여나 지원이 줄어들까 우려한 구단이 알아서 지자체장 심기를 살핀 것이라고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박효재 기자 mann616@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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