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은 푸틴 편?…“백기 들 용기” 발언, 전황 악화 우크라 겨냥했나
교황청, 교황 ‘백기’ 발언 수습 진땀
교황 과거에도 “위대한 러시아 후예” 표현
친러 아르헨티나 출신 영향 가능성
“백기를 들고 협상할 용기가 있는 사람이 가장 강한 사람이라고 믿는다”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두고 나온 프란치스코 교황의 발언이다. 발언이 연일 논란이 되며 교황청이 수습에 나섰다. 러시아의 손을 들어주는 듯한 발언으로 교황이 비판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교황의 출신지가 전쟁을 보는 시각에 편파적으로 보게 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는 배경이다.
러시아를 염두에 둔 비판도 제기했다. 파롤린 추기경은 러시아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직접 언급하진 않았지만 “침략을 끝내는 것이 협상을 통한 해법의 전제조건”이라며 “침략자들이 먼저 공격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교황은 지난 9일 공개된 스위스 공영방송 RTS와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상황이 악화하기 전 협상할 용기가 있어야 한다며 “상황을 보며 국민을 생각하고 백기를 들고 협상할 용기가 있는 사람이 가장 강한 사람이라고 믿는다”라고 말했다. 또 “상황이 더 나빠지기 전에 협상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며 전황이 불리해진 우크라이나에 러시아와 협상을 촉구하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제기됐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교황의 해당 발언 직후 “교회는 사람들과 함께해야 한다”며 “살고자 하는 사람과 당신을 파괴하려는 사람을 사실상 중재하려면 2500㎞ 떨어진 곳에 있어서는 안 된다”며 프란치스코 교황을 향해 날 선 목소리를 냈다. 우크라이나 외무부는 이 발언과 관련해 자국 주재 교황대사를 불러들여 항의했다. 우크라이나 외무부는 “백기를 드는 용기를 내 침략자와 협상해야 할 필요성을 언급한 교황의 발언에 실망했다는 뜻을 전했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바티칸 소식통조차 AFP에 교황이 “항복과 동의어인 ‘백기’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이런 발언은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고 지적했다.
또 같은해 11월에도 한 언론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로 쳐들어온 군인 중 “가장 잔인한 건 러시아의 전통에 속하지 않은 체첸인, 부랴트인 등등”이라며 “물론 침략자가 러시아 정부라는 건 분명하다”고 발언했다. 러시아 내 소수민족을 손가락질하며 마치 전쟁범죄에 러시아군 대다수는 책임이 없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발언이었다.
작년 8월에는 화상 연설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모인 러시아 청년 신자들에게 “여러분의 유산을 잊지 말라. 여러분은 위대한 러시아의 후예”라고 말하면서 러시아 제국의 초대 황제였던 표트르 대제와 마지막 여제 예카테리나 2세를 칭송하는 듯한 발언을 해 서방 진영의 반발을 부르기도 했다.
이를 두고 교황이 러시아와 우호적인 관계인 아르헨티나 출신이라는 점이 객관적이지 않은 발언을 야기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경에 병력을 집결하던 2022년 2월 초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당시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과 회담하면서 “우리는 국제통화기금(IMF)과 미국에 너무 의존하고 있다”며 “이를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다른 나라들에 길을 열어줘야 한다”며 “러시아는 그 길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에 있다”고 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2022년 한 보고서에서 중남미 국가는 경제 논리 탓에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강한 비판을 제기하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아르헨티나의 경우 러시아군이 철수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지만 푸틴 대통령을 직접 겨냥한 발언은 하지 않았다”며 “이는 아르헨티나가 러시아나 중국과 무역 관계를 강화하려 했던 행보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고 설명했다.
윤준호 기자 sherp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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