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세업체 작업복 1000원에 세탁… 노동자 건강권 챙긴다 [지방기획]

오상도 2024. 3. 13.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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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블루밍 세탁소’ 큰 호응
道, 지자체와 설치·운영비 분담 협업
유해 화학물질 찌든 옷 수거·배송해줘
안산·시흥 이어 2024년 6월 파주에 3호점
장애인 단체에 운영 맡겨 고용효과도

“장당 500원의 세탁비만 받고 수거·배송까지 해드리니 다들 깜짝 놀라세요. 올해 들어 ‘입소문’을 타면서 세탁소 운영도 궤도에 올랐습니다.”(경기도 ‘블루밍 세탁소’ 안산점 서기훈 팀장)

11일 오전 경기 안산시 반월국가산업단지의 한 지식산업센터 1층. 수거해온 얼룩진 작업복들이 탁자 위에 우르르 쏟아지자 358㎡ 크기 세탁소 안에서 직원 3명이 바쁘게 움직였다. 직원 이모씨는 “가끔 작업복 안에 드라이버 등 공구가 들어 있어 주머니를 꼼꼼히 뒤지는 데 적잖은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경기 안산시 단원구 만해로의 경기도 블루밍 세탁소 안산점에서 직원들이 분주하게 세탁물 배송을 준비하고 있다. 이곳에서 수거해 세탁을 마친 세탁물은 신사복처럼 깔끔하게 다림질이 돼 배송된다. 경기도 제공
안산시가 지난해 8월 시범운영을 시작한 블루밍 세탁소는 도와 시가 협업해 만든 도내 1호 공공 작업복 세탁소다. 벌당 1000원(동복 2000원), 상·하의는 장당 500원씩 받아 시중 세탁소의 절반 가격으로 세탁이 가능하다.

중금속과 화학약품에 찌든 작업복을 노동자와 업체가 세탁하지 않고 맡길 수 있어 호응이 높다고 세탁소 측은 전했다. 대상은 50인 미만의 영세사업장 노동자로, 주말과 공휴일을 제외한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된다.

안산점에선 70대인 이영식 세탁소장을 포함한 직원 6명 모두 아침 일찍 출근한다. 수거·배송을 맡은 직원들이 공단을 돌며 하루 평균 18개 업체에서 180여장의 세탁물을 수거해 오면 세탁을 담당한 직원들이 분류작업을 마치고, 6대의 세탁기와 건조기를 가동한다. 전날 맡긴 세탁물이 깔끔하게 변신해 오전부터 1t 트럭에 실리면, 수거와 배송이 동시에 이뤄지는 방식이다. 금형·합금 등 영세업체가 대부분이라 업체마다 세탁물이 5∼20장에 불과하지만 직원들의 얼굴에선 피곤한 기색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곳에 세탁물을 맡기는 한 금형업체의 팀장은 “한 달 50만원 넘게 나가던 직원들 세탁비가 블루밍 세탁소 개장 이후 10만원 안팎으로 확 줄었다”면서 “남는 돈을 직원들 회식비로 돌리니 반응이 좋다”고 전했다.

블루밍 세탁소 안산점에 따르면 개장 이후 이곳과 세탁계약을 맺고 세탁물을 맡긴 반월공단의 업체는 127곳에 이른다. 1인 사업장이나 직원 수 10명 이하인 소규모 업체가 절반 가까이 차지한다. 안산점 서기훈 팀장은 “산단 노동자들도 신사복처럼 깨끗한 작업복을 입도록 직원들이 세탁 전문교육을 받는 등 질 좋은 서비스를 위해 노력한다”며 “도와 시의 예산으로 운용되는 이곳의 한 달 매출액 320여만원은 그대로 시로 보내진다”며 “사실 이 돈으로는 전기·수도료나 인건비를 충당하기에도 빠듯해 공공시설이 아니라면 운영이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노동자 복지·장애인 고용 ‘일거양득’

기름때나 약품에 찌들어 일반 세탁소 이용이 어려운 영세공장 노동자들의 작업복을 자판기 커피 한 잔 값에 세탁해 주는 블루밍 세탁소가 안산과 시흥에 이어 파주에서도 개장을 앞두면서 안팎의 이목을 끌고 있다.

13일 경기도에 따르면 수도권에 산재한 영세공장 상당수는 유해 화학물질에 찌든 작업복을 노동자들에게 맡겨 왔고, 이들이 집에서 세탁하는 과정에서 가족들의 옷가지와 섞이며 가족 건강까지 위협한다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이 같은 문제점을 간파한 경기도는 2022년 1월 ‘경기도 노동자 작업복 세탁소 설치 및 운영 조례’를 제정해 우려를 불식하기 위한 첫걸음을 뗐다. 이어 민선 8기 김동연 지사 취임 직후 문제 해결에 속도를 냈다.

노동자의 건강권 보호와 가정 내 오염 문제 해결을 민선 8기 공약사업으로 내걸었던 도는 노동자 작업복 세탁소를 지난해 7월과 11월 안산시와 시흥시에서 잇따라 개장했다. 올해 1월 말까지 두 곳의 세탁소를 거쳐 간 영세업체는 169곳, 세탁물은 1만8000장이 넘는다.

그동안 노동자 작업복 세탁소는 경남 김해·거제시 등 기초자치단체 위주로 운영됐다. 이에 도는 도내 시·군을 설득했고, 해당 지자체들은 수요조사 등을 마치고 설치·운영비를 분담하는 등 화답했다.

이렇게 문을 연 세탁소는 영세·중소사업장 종사자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고, 수거·배달 서비스도 제공한다. 다만, 원활한 관리를 위해 개인이 아닌 업체 단위로 계약을 맺는다.

특히 안산점에선 노동자 복지와 함께 장애인 일자리를 챙기기 위해 지역 장애인 단체에 세탁소 운영을 위탁했다. 안산지점 관계자는 “6명의 직원 가운데 회계담당을 제외한 세탁소장·팀장 등 5명이 지체·신체 장애인으로, 운영을 경기도 장애인복지회 안산지부가 맡는다”며 “기름때 묻은 작업복을 깨끗하게 세탁하면서 동시에 장애인 고용까지 챙겨 일거양득(一擧兩得)”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11월 시흥시 시화공단 인근에 문을 연 블루밍 세탁소 시흥점의 경우 장애인단체가 아닌 지역자활센터가 운영을 맡았다. 이곳은 390㎡ 공간에 대형 세탁기와 건조기 각 3대와 스팀다리미 등을 갖췄다. 공간 내부를 1∼2층으로 구분해 1층에는 세탁 전용 공간을 조성하고, 2층에는 휴게공간 등 편의시설을 마련해 작업자가 업무와 휴식을 병행하도록 했다.
블루밍 세탁소 안산점을 알리는 문패. '경기도의 보조금을 지원받아 설치·운영된다'는 글귀가 보인다. 경기도 제공
◆노동자 63% “집에서 작업복 세탁”

지자체가 세탁소 개장을 앞두고 반월·시화공단 노동자 507명과 사업주 207명을 대상으로 벌인 실태조사에선 노동자들이 평균 하복 3벌(동복 2.7벌)의 작업복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일주일에 평균 1.6회 세탁하는데, 63.4%가 ‘집에서 세탁한다’고 답했다. ‘인근 세탁소를 이용한다’(1.6%)거나 ‘회사가 수거해 세탁한다’(14.6%)는 비율은 낮았다. 또 회사의 세탁비 지원 여부에 대해선 95.7%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시흥시에는 1만979개 업체에서 12만여명, 안산시에선 8594개 업체에서 11만여명의 노동자(지난해 3분기 기준)가 일하고 있다.

경기도는 오는 6월 파주시에서 세 번째 블루밍 세탁소의 문을 열 계획이다. 최근 파주시는 ‘노동자 작업복 세탁소 설치 및 운영 조례’ 제정 등 사전행정절차를 마치고 개장을 준비하고 있다. 파주시는 경기 북부에서 산단 규모가 가장 큰 도시로 꼽힌다. 이곳에는 16개 산단(국가산단 포함)에 1382개 업체, 3만9000여명의 노동자가 근무하고 있다. 세탁소는 파주 산단 인근에 설치돼 종사자 50인 미만 사업체와 영세사업장 노동자에게 세탁 서비스를 지원하게 된다.

앞서 도와 파주시는 지역 상공회의소와 노동 단체 등 지역 노사민정 협업 체계를 마련, 블루밍 세탁소 파주점 홍보에 나선 상태다. 도는 파주 블루밍 세탁소가 문을 열면 열악한 북부지역 소규모 사업장의 환경 개선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경기도 관계자는 “북부에는 상대적으로 열악한 소규모 사업장이 많아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며 “앞으로도 북부지역 취약 노동자의 건강권 보호와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조상기 경기도 노동권익과장 “위생에 대한 우려 해소… 취약 노동자 복지 증진”

“노동자와 그 가족의 건강, 위생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고 취약 노동자의 복지 증진을 위해 사업을 추진하게 됐습니다.”

조상기(사진) 경기도 노동권익과장은 공장 노동자 전용 세탁소를 도입한 숨은 주인공이다. 노동 전문 언론과 노동계에서 일해온 그는 그동안의 경험을 살려 다른 지방자치단체에서 먼저 출범한 작업복 세탁소를 경기도식으로 ‘업그레이드’했다. 기름때 등 유해물질에 오염된 작업복을 세탁할 곳이 마땅치 않아 어려움을 겪는 노동자들에게 적당한 세탁소를 제공하는 게 노동자의 권익 보호를 위한 첫걸음이라는 생각에서다.

조 과장은 13일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경기도에는 유해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소규모 영세사업장이 많지만 노동자와 사업주의 경제적 부담이 늘어나 작업복 세척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며 “가정에서 세탁할 경우 교차오염으로 가족의 건강까지 해칠 우려가 있어 세탁소 조성 사업을 우선 추진해 왔다”고 소개했다.

이어 “큰 공장에선 사내 복지 같은 게 잘돼 있지만 영세사업장은 그렇지 않다. 이곳에선 단순히 세탁만 해주는 게 아니라 수거한 작업복을 양복처럼 다림질을 마치고 배송까지 하는, 자존감을 높여주는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한다. (세탁소 조성을 기점으로) 다른 영역으로 사업을 넓혀 가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블루밍 세탁소의 명칭에 대해선 “도민 대상 공모에서 582명의 의견을 취합해 최종 우수작품인 ‘경기도 블루밍 세탁소’가 선정됐다”며 “노동자를 상징하는 ‘블루(blue)’와 ‘꽃이 만개한다(blooming)’의 의미를 함께 담아 노동자에 대한 존중, 꽃처럼 아름답게 피어날 미래를 응원한다는 조어를 만들었다”고 전했다.

조 과장은 향후 경기도의 역할을 두고는 “영세기업 노동자를 비롯해 사내 복지 혜택이 거의 없는 플랫폼 특수고용직 노동자 등이 보다 나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촘촘하고 든든한 안전망을 제공하려 한다”며 “이들이 꿈을 키워가도록 돕는 게 지방정부의 역할이자 기회의 사다리를 만드는 일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수원·안산·시흥=오상도 기자 sdo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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