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칼럼] 비정상 과학시스템, 빨리 복구하자
지난해 정부 R&D 예산이 느닷없이 삭감된 이후 우리나라 과학시스템은 비정상적으로 작동해 왔다. 과학계는 정부의 R&D 예산 삭감에 그야말로 날벼락을 맞은 듯 대혼란에 빠졌다. 그 여파로 지금까지 과학계는 침통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R&D 예산 삭감 이전의 모습을 되찾을 기미 조차 보이지 않는다. 맥락 없이 R&D 카르텔로 내몰려 상처 입은 과학계의 마음을 돌리기엔 한 번 무너져 버린 정부에 대한 신뢰 회복이 어려워 보인다.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해 집단행동을 불사하고 있는 의료계와 비교하면 R&D 삭감에 따른 과학계의 대응은 확연히 다르다. 과학자는 미래에 가치를 두지만, 의료계는 현재에 충실해야 하는 직업 속성 때문일까.
그나마 지난달 16일 KAIST 학위수여식에서 정부 R&D 예산 삭감에 용기 있게 항의하다가 '입틀막' 당한 KAIST 졸업생의 행동이 과학계의 유일한 강경 대응이다. 이에 반해 의료계는 삭발은 물론 병원 이탈, 사직서 제출, 동맹 휴학 등 강경한 투쟁 기조로 반정부 대응 수위를 점점 높여가고 있다.
이런 의료계와 달리 정부의 R&D 삭감 조치 초기 과학계는 즉각 반응하지 않고 신중 모드였다. 그러다가 대학원생들이 정부를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하며 먼저 들고 일어났다. R&D 삭감으로 연구실에서 쫓겨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학생연구원을 중심으로 반발이 시작됐고, 그게 촉발이 돼 이례적으로 과학계의 전반으로 확산됐다.
R&D 삭감의 최대 피해자가 학생연구원을 포함한 젊은 과학자가 될 것이라는 걸 정부는 진작부터 몰랐을까. 뒤늦게 예상치 못한(?) 이들의 집단 행동에 놀란 정부는 과학계를 달래기 위해 각종 정책들을 급조한 듯 꺼냈다.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 내년 R&D 예산 증액을 여러 차례 약속했고, 대통령과학장학생 확대와 연구생활장학금(스타이펜드) 신설 등 젊은 과학자를 위한 지원 확대, 도전적·혁신적 R&D 지원 강화, 신진 연구자의 국내외 연수 기회 등으로 급한 불을 끄는데 행정력을 소모해야만 했다. 신뢰가 깨진 상황에서 대통령과 정부가 내놓은 정책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것'과 매 한 가지였다.
현실을 보자. 과학자 입장에서 당장 올해 연구비가 합리적 이유 없이 깎여 나갔고, 지금껏 해 온 연구과제가 중단되는 수모를 당했다. "정부의 R&D 예산 일괄 삭감으로 어쩔 수 없다"는 이유같지 않은 이유로, 단 한 번도 상상하지 못한 일들이 현실이 된 상황에 자존심이 상했고, 깊은 자괴감에 빠졌다. 대통령의 지시에 비효율과 낭비를 걷어내고 'R&D다운 R&D'를 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R&D 예산을 일방적으로 삭감한 정부의 결정이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이처럼 정부발(發) 'R&D 예산 삭감'과 'R&D 카르텔'이라는 두 개의 폭탄이 과학계에 투하된 이후 우리의 과학시스템은 먹통인 채로 비정상적으로 작동해 왔다. 대통령실 과학기술비서관 출신의 전직 과기정통부 차관은 이임식에서 '미션 클리어'라는 과학계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듯한, 너무도 옹색하고 낯부끄러운 자화자찬과 함께 나몰라라하며 떠나 버렸다.
이제부터는 그동안의 비정상 과학시스템을 제대로 정비해서 정상 작동 모드로 돌려 놔야 한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면 밝은 빛이 기다리고 있듯 최근 들어 과학시스템을 정상화하기 위한 희망의 빛이 감지되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과학계에서 지속 요구했던 과학기술수석이 대통령실에서 신설됐고, 4개의 비서관실 체제도 갖춰졌다. 이례적으로 과기정통부 1·2차관과 차관급인 과학기술혁신본부장 등 3명이 동시에 바뀌었다. 이들 모두 과학기술와 디지털 분야에서 풍부한 현장 경험과 전문성, 역량을 갖춘 내부 인사로, 내·외부적으로 신망이 두텁고 소통에도 능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과학기술수석과 3명의 차관이 현장과 더욱 소통하며 비정상의 과학시스템을 정상화하는데 멋진 호흡을 이루길 바라본다. bongc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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