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러시아의 첫 한국인 ‘간첩 혐의’ 체포, 인권 규범 준수해야
러시아 정보당국이 한국인 백모씨를 간첩 혐의로 체포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백씨는 지난 1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연방보안국(FSB)에 체포돼 한 달 뒤 모스크바 근처 레포르토보 미결 구치소로 이송됐다. 러시아 정부는 이 사실을 지난달 한국 정부에 통보했고, 지난 11일 관영 타스통신을 통해 공개했다. 백씨는 러시아 극동지역을 중심으로 탈북민 지원, 선교 활동 등을 해왔다고 연합뉴스가 보도했다.
러시아 언론 보도만으로는 그가 어떤 간첩 활동을 했는지 알기 어렵다. 통신은 백씨가 2020년부터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여행사를 운영하며, 국가기밀 정보를 빼내 ‘외국 정보기관’에 전달한 혐의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어떤 기밀인지, 어느 나라 정보기관인지도 분명치 않다.
다만 정황상 이번 사건이 단순한 국외 형사 사건에 그치지 않는다는 건 짐작할 수 있다. 러시아에서 한국인이 간첩으로 체포된 사실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러시아 정부는 백씨 체포 후 한 달이 지나 한국에 통보했고, 또 한 달이 지나 일반에 공개했다. 러시아가 한국 정부에 모종의 불만을 표현하려 한 것일 수 있다. 한·러관계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급속히 악화됐다. 한국은 서방의 대러 제재에 동참했으며, 러시아는 한국을 비우호국으로 지정했다. 지난해 말 한국이 대러 수출 통제 품목 확대를 예고하자, 러시아 외교부 대변인은 강하게 반발하며 한국에 ‘비대칭적 대응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각의 관측대로 백씨의 탈북민 지원 활동이 원인이 됐다면 그 역시 우려스럽다. 러시아는 중국과 달리 탈북민 문제와 관련해 한국에 협조해온 나라였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북·러관계가 밀접해지며 북한의 요청을 수용해 단속을 강화했을 수 있다. 어느 면으로 보나 외교적 문제로 비화할 수밖에 없는 사건인 셈이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킬 책임이 있다. 그런 만큼 한국 정부는 변호인 접견 등 백씨의 안녕을 확보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백씨가 구금된 구치소는 스탈린 시대 이래로 정치범 등에 대한 혹독한 심문으로 악명 높은 곳이다. 러시아에 재소자에 대한 국제 인권 규범 준수를 요구해야 한다. 무엇보다 이 사건이 한·러관계의 또 다른 갈등과 악재가 되지 않도록 원만히 풀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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