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능 엔터테이너 장도연의 '착한 개그'에 빠져드는 이유[TEN피플]
데뷔 16년차 개그우먼 장도연의 진행력
[텐아시아=이하늘 기자]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고등학교 문학 시간에 익히 들어 친숙한 나태주 시인의 시 '풀꽃'은 겉보기엔 화려하지 않아도 본연의 매력을 품고 있는 대상들에 대한 말들을 담고 있다.
2007년 KBS 22기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한 개그우먼 장도연은 딱 풀꽃 같은 매력을 지녔다. 데뷔 16주년을 맞은 장도연은 언뜻 보기엔 강렬한 색깔이 없어 지나치기 쉽지만, 무해하고 은은하게 빠져든다. 혹자는 장도연을 두고 무색무취라고 칭할 수도 있다. 과거 장도연 역시 강렬한 색깔을 내뿜지 않는 본인을 두고 이렇게 지칭한 적이 있다. 하지만 나태주 시인의 '풀꽃'처럼 장도연은 오랜 시간 대중의 곁에 머물면서 자신의 색을 전하고 있다.
현재 장도연은 웹예능 '살롱드립2'에서는 인터뷰어(interviewer)로서의 편안함을, MBC '라디오스타'에서는 적재적소 파고드는 재치를,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생생한 몰입감을, JTBC '배우반상회'에서는 예능이 익숙치 않은 배우들을 위한 일종의 가이드가 되어주기도 한다. 모나지 않고 둥글둥글한 형태의 일명 '착한 개그'를 하는 장도연이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1명에서 많게는 3명 정도의 게스트와 만나 작품의 비하인드와 최근 근황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살롱드립2'는 MC로서 장도연의 장기가 가장 잘 드러나는 프로그램이다. 격하게 몸을 움직이지도, 여러명의 MC가 있지 않은 소규모의 토크쇼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인터뷰이(interviewee)와 소통할 수 있느냐다. 평소 예능 출연이 잦지 않은 배우들의 경우, 카메라 시선부터 어떤 이야기를 꺼내야 하는지를 어려워하는 상황도 종종 있기 때문이다.
인터뷰어인 장도연은 "문화, 예술, 철학, 뒷담화와 항간에 떠도는 소문들까지. 입 털고 싶은 분은 모두 모이세요"라는 오프닝 문구처럼 게스트가 편하게 입을 열어 이야기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영화 '발레리나'(감독 이충현)의 배우 전종서는 포켓몬빵의 띠부띠부씰 스티커를 언급하며 함박웃음을 짓기도, 디즈니+ '비질란테'(감독 최정열)의 배우 유지태는 20살 무렵 지프차와 있던 에피소드를 떠올리기도, 배우 이동욱은 작품 홍보 없이 '이동욱은 토크가 하고 싶어서'로 인연을 맺은 장도연을 응원하러 나오기도 했다.
'케미 여신'이라는 수식어로도 불리는 장도연은 지난 12일 '살롱드립2'에 출연한 배우 손석구와 함께 솔직담백한 입담으로 대중들을 사로잡았다. 영화 '댓글부대'(감독 안국진) 홍보차 출연한 손석구는 인생 드라마 '모래시계'(1995)부터 '순풍산부인과'(1998)에 이르기까지 유년 시절을 언급하며 장도연과 이야기를 나눴다. 무엇보다 영화 '재방송'(2021)의 연출을 맡기도 한 손석구에게 장도연은 다음 차기작을 물었고,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쓴다던 말에서 유년 시절로 물꼬가 트였던 것. 평소 장도연이 이상형이라고 밝히기도 했던 손석구는 달달한 분위기를 보여줬고, 해당 영상은 238만 조회수(3월 13일 기준)를 기록했다.
마치 가까운 친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꼬꼬무'에서 장성규, 장현성과 함께 이야기꾼이 된 장도연. 그녀는 2020년 첫 시즌부터 2024년에 이르기까지 3년 가까운 시간 동안, 몰입감 넘치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KBS2 '개그콘서트'부터 tvN '코미디빅리그'에서 콩트 실력을 키워온 장도연은 '꼬꼬무'에서 상황에 맞게 캐릭터를 생생하게 묘사하는 능력과 진행력을 보여줬다. 사건, 사고 및 역사적 기록을 다루며 다소 무거울 수도 있는 시사교양에서 장도연은 실감 넘치는 대사로 상황에 빠져들게 했다.
그런가 하면, 개그우먼 안영미가 출산으로 하차한 '라디오스타'의 빈자리를 채우기도 했다. 2023년 9월 20일부터 '라디오스타' 첫 녹화를 한 장도연은 "'라스'가 최장수 토크쇼 프로그램으로서 2007년에 시작했다더라. 아주 놀라운 운명을 말씀드리자면 저도 2007년 방송에 데뷔했다. 데뷔 동기로서 제가 많이 모나지 않게 잘 스며들어서 열심히 잘 해보겠다"라는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그 포부처럼 장도연은 몇차례 교체된 MC 자리를 잘 버티고 있다.
개그맨 이경규는 이런 장도연을 두고 '제2의 오프라 윈프리(Oprah Gail Winfrey)'라고 칭했다. 오프라 윈프리는 2012년 제84회 아카데미 시상식 평생공로상, 2013년 포브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유명인사 100인 등을 수상하며 명실상부 최고의 진행자로 일컬어진다. 지난해 장도연은 이경규의 유튜브 채널 '스발바르 저장고'에 출연했고, 이경규는 "장도연 하면 떠오르는 예능 캐릭터는 뭐냐"라고 물었다.
이에 장도연은 "이게 약간 고민도 있었다. 딱 뭐가 없다. 19금이라고 하자니 그쪽으로 특화되어있지도 않다. 그것도 능력이다. (안)영미 선배는 유쾌하고 선을 잘 타는데 저는 그 정도는 아니고 (박)나래 선배만큼의 파이팅이나 에너지도 없고 (김)숙 선배처럼 '저 언니 너무 멋있다' 할 정도로 포스도 별로 없다. 그거에 대한 고민을 너무 많이 했다"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이경규는 "너의 캐릭터는 티키타카다. 누구하고 티키타카를 해도 되는 개그우먼이다. 19금 이런 거 하지 마라.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오프라 윈프리가 될 수 있는 사람이 너다"라고 말했던 것. 아마 이경규가 장도연을 오프라 윈프리로 칭한 이유는 이 때문일 것이다.
지난 2월 28일 유튜브 '요정재형'에 출연한 장도연은 "대한민국에 제2의 오프라 윈프리가 많기 때문에, 나는 '72번째 오프라 윈프리 정도는 된다'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라고 이야기했다. 정재형은 장도연이 타인의 흠집을 잡는 비하 개그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언급했고, 장도연은 "내가 그걸 지킨다고는 절대 말을 못 하고, 그런 방향으로 가고 싶다는 거였다. 선배들의 좋은 점을 흡수하려고 한다"라고 답했다.
그간 장도연의 모습을 돌아보면, 174cm의 큰 키에 장신 캐릭터로, '개콘'에서 박나래와 '패션넘버5(패션 no.5)' 코너를 이끌며 엽기적인 패션을 선보였고, '코빅' 속 개그맨 양세찬과 현실감 넘치는 커플 연기 등등 다양한 코너와 프로그램에서 자신만의 인장을 남겼다. 이제는 MC로, 인터뷰어로 대중들을 만나는 장도연은 약점을 장점으로 바꿀 줄 아는 능력이 빛난다.
이하늘 텐아시아 기자 greenworld@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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