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말 한동훈의 말 [로버트 파우저, 사회의 언어]

한겨레 2024. 3. 13.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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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연합뉴스

로버트 파우저 | 언어학자

지난 5일 미국 15개 주에서 실시한 공화당 예비 선거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압승으로 끝났다. 다음 날 유일한 경쟁자였던 니키 헤일리는 트럼프에 대한 지지 선언 없이 선거 운동을 중단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민주당 예비 선거에서 압승함으로써 두 사람의 대결은 확정됐다. 지난 2020년 대선과 똑같은 대진표다. 두 후보에 대한 반감이 적지 않아 무소속 또는 작은 정당 후보 몇몇이 표를 조금씩 더 얻긴 하겠지만 양당 구조는 깰 수 없을 것이다.

지난 2020년 선거에서 패배한 트럼프의 이번 승리는 대단한 성공이다. 대통령 재선에 실패한 뒤 다시 후보로서 당의 지명을 받는 일은 흔치 않다. 20세기에 재선에 실패한 대통령은 넷이었고, 그걸로 그들의 정치 생명은 끝이었다. 19세기 말 낙선 후 다시 출마해서 성공한 그로버 클리블랜드(Grover Cleveland)가 유일하다.

트럼프는 2022년 말 출마했다. 과연 성공할까, 싶었지만 바이든에 대한 평가가 지속적으로 낮아지면서 2023년 하반기부터 점점 지지도가 상승하기 시작했다. 언론은 트럼프를 외면했지만 지지도 상승에 따라 보도 건수는 점점 늘어났고, 그 와중에 ‘트럼프의 말’은 예전처럼 화제가 되었다. 지난 2월 중순 트럼프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 중 방위비가 국내총생산의 2%에 못 미치는 나라에 대해 “돈을 제대로 내지 않으면 보호하지 않겠다”는 충격적인 발언을 했고, 이는 큰 비판을 받았다.

‘트럼프의 말’을 자세히 분석하면 크게 두 가지 흐름이 있다. ‘공격적 마초’와 ‘계산된 풍자’다. 이 두 개를 동시에 섞으면서 트럼프는 말을 통해 자기 지지 기반의 단결을 촉구하고, 그로 인한 확고한 지지를 통해 공화당 예비 선거에서 세 번 연속 이겼다.

‘공격적 마초’는 무엇보다 트럼프에게 강력한 리더의 이미지를 만들어준다. 강한 명령형과 거친 표현의 활용으로 ‘우리’와 타자인 ‘그들’에 대한 갈등 구조를 만든다. 이를 통해 자신이 ‘우리’에게 필요한 강력한 지도자, 나아가 구원자라는 이미지를 심어주는 데 기여한다.

‘계산된 풍자’ 역시 비슷하다. 풍자를 잘 쓰는 뉴욕 출신답게 트럼프는 자연스럽게 풍자를 정치적 도구로 삼아 타자에 대한 비하와 공격을 서슴지 않고 있다. 주로 정치인과 언론을 비하하고 웃기는 대상으로 활용함으로써 ‘우리’와 동질감을 갖게 해 지지를 결집한다.

트럼프처럼 말하는 정치가는 세계 곳곳에 있다. 한국에는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있다. 한 위원장은 정계에 등장할 때부터 말로 인해 큰 화제가 되었고 점차 지지를 넓혀왔다. 두 사람의 문화와 언어는 다르지만, 이들은 공격적 마초와 계산된 풍자를 똑같이 활용해 ‘우리’와 ‘그들’의 흑백 구조를 만든다.

지난 2월 말 한동훈은 민주당 공천에 대해 “저게 무슨 민주당인가, 이재명 대표의 이름을 넣어 ‘재명당’으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마초적 공격이 담겨 있으면서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을 동시에 풍자적으로 비하한다. 이로써 본인이 이끄는 진영에 어떤 순수함이나 선이 있다는 이미지를 만들려고 한다.

한국어의 ‘합쇼체’와 ‘해요체’를 섞으면서 말하는 그의 어법은 트럼프에 비해 풍자의 비중은 더 크지만 얼핏 완곡하게 들린다. 예를 들면 2023년 11월 법무부 장관 재직 당시 “여의도에서 일하는 300명만 쓰는 고유의 어떤 화법이나 문법이 있다면, 그건 여의도 문법이라기보다는 여의도 사투리 아닌가요? 저는 나머지 5천만이 쓰는 언어를 쓰겠습니다”라고 했다. 주로 합쇼체에 해요체를 섞어 친근감을 준다. 그렇지만 생각해보면 ‘재명당’처럼 ‘여의도 사투리’는 트럼프가 워싱턴 정계와 관료를 공격할 때 자주 쓰는 말인 “시궁창의 물을 빼라!”와 별 차이가 없다.

최근 한동훈 위원장이 이재명 대표를 근소한 차이로 앞서 차기 대선 후보 적합도 1위로 부상했다는 여론조사가 있었다. 이런 상태가 계속 유지되면 한동훈 위원장이 2027년 봄 트럼프와 만날 수도 있겠다. 겉으로는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 회담이겠지만, 그 만남은 그의 정치적 스승을 만나는 자리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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