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제4 이통사 "망사용료 절반 깎아달라"

정지은 2024. 3. 13.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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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 요구…특혜 논란 불거질 듯
서상원 스테이지엑스 대표가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페어몬트앰배서더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내년 상반기 전국망 서비스 출시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최혁 기자


제4 이동통신사로 선정된 스테이지엑스가 공동이용(로밍) 대가를 알뜰폰 사업자의 절반 이하로 책정해달라고 요구해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 지원을 받아 사업하겠다는 의미로 특혜 논란이 불거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13일 정부와 업계 등에 따르면 스테이지엑스는 최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통신 3사로부터 3.5㎓ 무선 접속망을 빌려 쓰는 대신 내야 하는 로밍 대가를 낮추도록 해달라”고 요구했다.

스테이지엑스는 정부 지원을 등에 업고 싼값에 통신망을 확보한 뒤 해당 통신망을 알뜰폰 사업자에게 비싸게 파는 식의 도매사업을 구상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명 이동통신망 재임대사업자(MVNE) 형태다. 이 회사는 지난 1월 31일 5세대(5G) 28㎓ 주파수 경매에서 최종 낙찰받아 제4 이동통신사 지위를 확보했다. 최종 입찰액으로 경매 시작가(742억원)의 5.8배 수준인 4301억원을 쓸 정도로 의지를 보였다.

스테이지엑스의 사업 구상은 정부에 기생하는 방식으로 제4 이동통신사 도입 취지에 어긋난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당초 정부는 ‘통신 3사 과점’을 깨뜨리는 혁신 기업을 출범시켜 통신비 인하 등 소비자 편익을 늘리겠다며 제4 이동통신사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통신시장 '메기'라더니…정부 '기생충' 된 제4 이통사
"혁신기업 통해 통신비 낮춘다는 당초 취지에 벗어난 정책 실패"

스테이지엑스가 통신 시장의 ‘메기’가 되길 기대한 정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스테이지엑스 측의 요구가 통신업계에서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을 한참 벗어났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정부의 ‘정책 실패’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스테이지엑스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요구한 로밍 대가 수준은 알뜰폰 사업자가 통신 3사에 내는 도매 대가의 절반 이하다. 이 회사가 낙찰받은 5세대(5G) 28㎓ 주파수를 중심으로 한 사업은 서비스 기반을 구축하는 데만 최소 2년 넘게 걸린다. 당장 사업화가 어렵다 보니 통신 3사로부터 3.5㎓ 무선 접속망을 싸게 빌려 알뜰폰 사업자에게 비싸게 파는 사업부터 하겠다는 구상이다. 로밍 대가를 받는 통신 3사가 거둬들여야 할 이익의 일부를 이전해달라는 얘기이기도 하다.

스테이지엑스가 무리한 요구를 한 것은 ‘지갑’이 얇아서다. 이 회사는 올해 총낙찰가의 10%인 430억원을 정부에 납입해야 한다. 3년 안에 28㎓ 기지국 6000대도 의무로 구축해야 한다. 5G 28㎓ 기지국은 구축 비용이 대당 2000만~3000만원에 이른다. 장비 구매 및 구축 비용을 합치면 최소 2000억원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선 3.5㎓로 돈을 벌어 28㎓ 사업비를 마련한다는 스테이지엑스의 사업 구상이 제4 이동통신사 출범 취지와 거리가 있다고 설명한다. 새로운 업체가 등장했지만 소비자 편익은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스테이지엑스가 출범 초와 말을 바꿨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상원 스테이지엑스 대표는 지난달 7일 첫 기자간담회를 열고 “각종 수수료와 유통 구조를 바꿔 파격적인 가격의 요금제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알뜰폰 사업자 사이에선 특혜 논란이 일어날 전망이다. 로밍 대가를 스테이지엑스에만 알뜰폰 사업자의 절반 수준으로 책정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나서다. 알뜰폰 사업자도 잇따라 로밍 대가를 낮춰달라고 나설 가능성이 높다.

과기정통부에서도 스테이지엑스 측 요구를 들어주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렇다고 마냥 손을 놓을 수 없어 고민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2010~2016년 일곱 차례에 걸쳐 추진했다가 ‘8수’ 만에 출범시킨 제4 이동통신사가 시장에 안착하는 것이 중요 과제여서다.

통신업계는 우려하던 일이 벌어졌다며 이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 제4 이동통신사 출범으로 소비자 혜택이 커지기는커녕 사업 지속력이 검증되지 않은 기업에 특혜가 몰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통신업계 고위 관계자는 “애초에 28㎓ 주파수로 제4 이동통신사를 출범시켜 메기 효과를 일으키겠다는 발상엔 한계가 있었다”며 “정부가 큰 그림을 보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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