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대전환의 시대, 구원투수 되겠다" '홀드왕' 출신 차명주, 국민의미래 비례대표로 정치 입문

정현석 2024. 3. 13.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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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미래 비례대표로 출마하는 차명주 교수.

[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홀드왕' 출신 차명주 국민대 스포츠산업 대학원 겸임교수(51)가 22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다.

차명주 교수는 12일 "3월 9일 국민의미래에 비례대표 공천 신청을 했다"며 "대한민국 체육과 프로스포츠 발전을 책임지고, 대안을 제시할 정당으로 국민의미래가 가장 앞선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부산 출신 차 교수는 1973년 생 '전설의 92학번 황금세대'로 경남상고-한양대를 거쳐 1996년 프로에 입문, 롯데 두산 한화에서 좌완투수로 활약했다. 통산 613경기에서 26승31패 12세이브, 80홀드, 평균자책점 4.51를 기록하며 필승조로 활약했다.

은퇴 후 스포츠역학 전문가이자 연구원으로 한국 프로스포츠 발전을 위해 연구와 봉사를 해온 차교수는 프로스포츠 전문가로 의정활동을 펼쳐나갈 포부를 밝혔다. 그는 "한해 스포츠 매출 80조 원, 스포츠 산업 종사자 가족까지 300만 명이 넘는 대한민국 스포츠가 앞으로 더 큰 발전을 하려면 정치가 체육을 도와야 한다는 일념으로 국민의미래 비례대표에 도전하게 됐다"고 출마의 변을 밝혔다. 이어 "3천만의 여가생활이자 미래 신산업인 '프로스포츠'의 가능성과 미래에 주목한 국민의 대표는 없었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차 후보는 "의회에서 지금까지 아마추어 선수 출신, 금메달리스트 등 체육인이 큰 역할을 했으나, 프로스포츠 혁신과 발전은 프로스포츠 전문가가 더 잘 이끌 역량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해 스포츠 매출액이 80조 원을 웃돈다. 스포츠 산업 종사자 가족까지 300만 명 시대에 국민 보건과 신산업을 책임지는 시대로 대전환해야 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또한 "국영수 위주의 입시제도에서 예체능 과목은 '전인교육'이라는 국가교육의 최소한의 보루"라며 "초중고에 일주일 중 이틀 간 오후 3시간을 아트데이와 스포츠데이로 운영하도록 일조할 것"이라고 공약을 밝혔다.

현역 시절 홀드왕을 차지할 만큼 전문 구원투수로 명성을 떨친 차명주 후보는 "대한민국 리빌딩을 위해서라면 화려한 선발이 아니어도 좋다. 어떤 역할이든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고 낮은 곳에서의 봉사를 다짐했다.

항저우아시안게임_야구기술위원(왼쪽에서 네번째)
현역 시절 차명주.

차명주 후보는 국민과 스포츠산업 종사자, 스포츠인들에게 자신의 진심을 담아 장문의 출사표를 던졌다.

다음은 스스로 밝힌 출마의 변.

존경하는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오늘도 건강한 대한민국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주시는 체육인 여러분,

사랑하는 스포츠팬 여러분.

1920년 4월 10일. 이날은 동아일보 고 변봉현 기자가 '체육기관의 필요를 논함'이라는 역사적 사설을 게재한 날입니다. 변 기자는 사설을 통해 "운동의 장려와 운동가의 양성, 부진한 체육의 현실을 쇄신하려면 통일된 체육기관의 설치가 필요하다"며 "우리 민족의 독자적인 체육기관 결성을 위해 뜻 있는 하나가 되자"고 역설하였습니다. 변 기자의 사설을 발판 삼아 1920년 6월 28일 조선체육회 창립위원회가 개최됐고, 같은 해 7월 13일 발기인 70명이 모여 역사적인 조선체육회 창립총회가 발족했습니다. 조선체육회가 창립 이후 최초로 개최한 제1회 전국체육대회가 1920년 11월 4일 열리지 않았다면 대한민국 체육도 '프로야구 선수 차명주'도 없었을 것입니다.

존경하는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그로부터 104년이 지난 2024년 4월 10일.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스포츠는 소중한 기회와 마주하고 있습니다.

그 '소중한 기회'는 바로 대한민국 국회가 갈등과 반목의 이전투구장에서 벗어나 협치의 장, 민생 해결의 장이 되고, 대한민국 스포츠가 정치에 악용되는 게 아닌 체육이 정치를 활용해 더 큰 발전을 이룰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입니다.

지금껏 유권자로만 살아왔던 저는 대한민국 정치를 보며 항상 답답한 마음이었습니다. 상대와의 '다름'을 인정하기보단 상대는 무조건 '틀렸다'고 정의하고, 이 정의를 관철하고자 '반대를 위한 반대'를 거듭하는 것만이 유일한 정당 정책인 것처럼 보이는 정치 현실이 특히나 안타까웠습니다.

제가 국민의미래에 비례대표 공천을 신청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국회가 협치의 장으로, 민생 해결의 장으로 변화해야 하고, 그러한 국민의 바람과 열망이 현실이 되는 데 있어 국민의미래가 가장 의욕적인 정당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여기다 경제와 안보 위기에 대한 가장 현실 가능한 해법과 대안을 제시하는 대안 정당이 '국민의미래'라는 확신이 선 까닭입니다.

오늘도 건강한 대한민국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주시는 체육인 여러분.

누군가에게 저를 소개할 때마다 저는 '프로스포츠인 차명주'라는 말을 씁니다. 제가 살아왔던 날들과 살고 있는 날과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종합적으로 표현하기에 이보다 함축적인 말도 없다고 믿습니다.

제 고향은 광주, 인천과 함께 '3대 구도(球都)'로 불리는 부산입니다.

부산에서 초, 중, 고를 다닌 저는 1991년 부산 경남상고 3학년 시절 박찬호, 고 조성민, 임선동, 박재홍, 고 손경수 등과 함께 청소년 대표팀에 뽑혔습니다. 그리고 1992년 한양대에 입학하면서부터 성인 야구대표팀 멤버로 활약하였습니다. 이른바 '전설의 92학번' 멤버에 제가 포함된 건 그때나 지금이나 순전히 좋은 동기들을 만난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1996년 고향팀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하고선 두산 베어스, 한화 이글스 등을 거치며 2006년까지 10년 넘게 프로야구 선수로 뛰었습니다. 2001년 두산 시절엔 홀드왕에 오르면서 두산이 한국시리즈 우승하는데 작은 기여를 했습니다.

이때 제가 우승 반지를 낄 수 있었던 것도 저보다 뛰어난 프런트와 코칭스태프, 그리고 그보다 훨씬 더 뛰어난 선수들과 팬들을 만났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봅니다.

2007년 은퇴할 땐 과분하게도 프로야구팀 지도자나 억대 연봉의 해설위원을 제안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제안에 따르지 않았습니다. 대신 유소년 선수 육성과 부상 선수 재활을 겸하는 스포츠 과학 연구소를 설립했습니다.

제가 '은퇴 후 필수코스'로 불리던 지도자나 해설위원을 마다할 수 있던 배경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프로야구 선수 시절 딴 곳에 눈 팔지 않고서 열심히 돈을 모았고, 두 번째는 프로야구 선수로서의 오랜 경험에 학술적 연구를 더 해 대한민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프로스포츠 전문가가 되자는 인생의 목표를 세웠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저는 스포츠 과학 연구소를 운영하면서 국민대에서 스포츠 자연과학 생체역학 석박사통합과정 박사 수료하며 프로스포츠 산업 경영자와 함께 학자의 길을 동시에 걸었습니다. 국민대 생체역학실 연구원과 차의과학대학교 스포츠의학 대학원 강사로 출강하며 귀중한 강단 경험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지금은 국민대 스포츠산업 대학원에서 겸임 교수로 학생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야구를 외면한 건 아닙니다. 사람들이 잘 주목하지 않는 여자야구 대표팀 투수코치, 베이스볼5 월드컵 감독, KBO(한국야구위원회) 재능기부위원 등으로 활약하며 야구 보급에 힘썼습니다. 무보수 명예직인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이사를 맡은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이렇듯 프로스포츠인, 야구인으로 살아온 제가 갑자기 우리 사회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계기가 있습니다. 앞선 정부의 스포츠를 대하는 태도와 관점이었습니다.

몇 년 전 앞선 정부가 내세운 위원회에 속한 완장맨들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동화책에서나 볼 법한 주장을 내놓고, 이를 무조건 따르길 요구하였습니다. 특히나 '내로남불'이 심했습니다.

좋은 예가 '학기 중 스포츠 꿈나무들의 주중 대회 참가 전면 금지'였습니다. 완장맨들은 아이들에게 주말에만 운동하라고 강요하였습니다. 그러나 야구만 해도 야구장이 태부족한 게 현실입니다. 주말엔 거액의 돈을 지급하고 '연 계약'을 맺은 사회인 야구팀이 야구장을 차지하고, 그나마 남은 야구장은 고교, 대학교 야구부가 쓰기 마련입니다.

과거엔 이럴 때 초, 중학교 운동장을 썼지만, 권력의 완장을 찬 이들이 "학교 운동장이 특정 스포츠부 아이들의 전유물이 돼선 안 된다"고 주장하는 통에 이마저도 쓸 수 없게 됐습니다.

주말에 경기할 여건이 전혀 안 되는데 어디서 경기하라는 소리인지, 어째서 대안도 없이 구호만 외치는지, 이보다 더 기가 막혔던 건 이런 비현실적인 주장에 완장을 찬 이들과 그 완장을 찬 이들을 불편하게 보는 이들 모두 입을 다물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체육계 완장맨들은 언제나 '헌신' '선의' '아이들을 위한 길'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들이 헌신하고, 선의를 베푼 건 그들 자신에게 였습니다. 실제 체육 요직은 그들 차지였습니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저는 '내가 속한 프로스포츠 영역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이 우리 사회 발전에 도움이 되는 길'이라는 소시민적 사고 속에 살았습니다. 그러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야당 모 의원의 대정부 질의에서 이른바 '사이다 발언'을 하는 걸 보며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체육계에서 해당 의원은 누구도 대항하기 어려운, 반대 목소리 내는 것조차 두려움을 느껴야만 하는 체육계의 실세였습니다.

한 장관이 그런 모 의원을 향해 사이다 발언을 했을 때 저를 비롯한 스포츠인들이 크게 놀란 건 당연했습니다.

그즈음 학계, 체육계 사람들과 만났을 때 제가 했던 이야기가 기억 납니다. "법무부장관이 저렇게 당당히 목소릴 낼 때 우린 지금껏 뭐했느냐"고요.

이후 국민의힘이 변화는 걸 보면서 저는 대한민국 정치가 바뀔 수 있겠다는 희망을 품게 됐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어떤 한 사건을 접하면서 '대한민국 정치가 바뀌려면 한 사람만의 힘으론 역부족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바로 '1992 티셔츠' 일이었습니다.

법무부장관에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변신한 한 위원장이 롯데 경기 관전 이야기를 했을 때 저를 비롯한 적지 않은 야구인이 반가운 마음이었습니다. 한 위원장 스스로 야구팬이라고 밝혔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야구를 보며 일상의 피곤과 괴로움을 잊었다는 이야기에서 저 뿐만 아니라 많은 야구팬이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꼈으리라 봅니다.

하지만, 이런 소소한 이야기조차 정쟁의 도구로 삼는 분들을 보며 매우 큰 실망감을 느꼈습니다. 특히나 롯데 응원과 관련해 본말과는 전혀 상관없는 트집잡기를 여론화할 때 큰 절망을 느꼈습니다.

무엇보다 큰 실망과 절망은 이러한 정쟁 시도와 트집잡기에 한 위원장 혼자서 소나기를 맞고 있다는 현실이었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집권 여당에 프로스포츠에 대한 전반적 이해와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 있었다면"하는 아쉬움을 느꼈던 게 사실입니다.

그러던 중 70년대생 야구인, 90년대 학번 친구들 사이에서 "프로스포츠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우리가 같은 세대, 같은 학번인 한 위원장을 돕자"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사랑하는 스포츠팬 여러분.

저는 92학번입니다. 1992년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됐던 해입니다. 먼저 그해 치른 대통령 선거에서 군사정부가 아닌 문민정부가 탄생했습니다. 본격적인 민주주의 시대가 열렸다고 봐야 합니다.

대한민국이 중국과 정식 수교를 맺으면서 우리나라가 국제적으로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던 것도 바로 1992년이었습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하면서 대한민국 문화의 틀이 바뀐 것도 역시 1992년이었으며, 제가 데뷔했던 친정팀 롯데 자이언츠가 우승한 해도 1992년이었습니다.

저는 2024년이 1992년처럼 우리나라가 획기적인 변화를 이끈 해로 기억됐으면 합니다.

프로야구에서 약팀이 강팀이 되려 할 때 늘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세대교체'입니다.

역대 프로야구팀 가운데 세대교체에 성공하지 못한 채 우승을 차지한 팀은 한 팀도 없습니다. 저는 국민의힘이 변화하는 걸 보면서 '정치의 세대교체'가 이뤄질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봤고, 그 가능성이 현실이 될 것이라 확신하고 있습니다.국민의힘이 더욱 젊은 정당, 비난이 능사가 아닌 대안을 제시하는 정당이 되는 '어게인 1992'에 동참할 수 있다면 무척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제가 준비한 여러 실천적 공약을 이 자리에서 상세히 말씀 드릴 순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약속드릴 수 있는 건 두 가지입니다.

먼저, 한해 스포츠 산업 매출액 80조 원을 상회하고, 스포츠 산업 종사자 가족까지 합치면 300만 명에 가까운 대한민국 스포츠가 정치에 이용 당하는 악순환을 반드시 끊겠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정치가 체육을 활용해 국민 보건과 스포츠 산업을 책임지는 시대로 대전환하는데 일조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국영수 위주의 입시제도에서 예체능 과목은 '전인교육'이라는 국가교육의 최소한의 보루인 만큼 초중고에 일주일에 이틀 각 오후 3시간을 'Arts day' 및 'Sports day'로 배분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하여 학교가 '아이들이 노는 걸 배우는 공간'이 되고, 아이들의 건강함을 책임지는 장소로 변화하는데 일조하겠습니다.

존경하는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오늘도 건강한 대한민국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주시는 체육인 여러분,

사랑하는 스포츠팬 여러분.

프로스포츠는 대한민국에서 3천만 명이 즐기는 가장 대중적인 여가생활이자 미래 신산업입니다. 그러나 헌정사에서 프로스포츠 전문가 출신은 거의 전무합니다. 의회에서 아마추어 선수 출신, 메달리스트 체육인분들이 큰 역할을 담당해왔으나, 프로스포츠 혁신과 발전은 프로스포츠 전문가가 더 잘 이끌 역량이 있다고 믿습니다.

체육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결과를 보여주는 분야입니다. 제가 약속합니다. 프로스포츠 전문가 차명주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시대가 요구하는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체육의 커다란 변화를 이끌겠습니다.

제 선수 시절 유일한 목표는 1월 1일 훈련을 시작해 12월 31일 더 나은 선수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제가 국민의힘에 정책적으로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된다면, 저는 과거 선수 시절처럼 1월 1일부터 정책을 공부하고 훈련해 12월 31일 더 나은 국민의힘 구성원이 되는 걸 유일한 목표로 삼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스포츠가 변화하는 '절호의 기회'에서 작은 역할이라도 담당할 수 있다면 저는 화려한 선발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주목받는 마무리가 아니어도 상관없습니다. 저는 현역 시절 좌타자를 잡는 좌완 스페셜리스트로 활약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게 중요한 건 보직도 자리도 아니라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대한민국 리빌딩, 변화하는 국민의힘에 도움이 된다면 저는 비례대표가 되지 않아도 좋습니다.

집권여당이 대한민국을 리빌딩할 수 있도록 국민 여러분께서 많은 성원과 지지를 보내주시면 그만입니다. 저도 현역 선수 시절처럼 죽을 힘을 다해 그 리빌딩에 참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3월 12일 국민의미래 비례대표 공천 신청자 차명주(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이사, 국민대학교 생체역학실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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