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새 한·일 선언, 역사는 잊고 안보 협력만 강조하려는가

한겨레 2024. 3. 13.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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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가 내년으로 다가온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에 맞춰 1998년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김대중·오부치 선언)을 대체하는 새 문서를 만들기 위한 본격적인 움직임에 나섰다.

26년 전 김대중 전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전 총리가 역사적인 공동선언에 합의할 수 있었던 것은 일본 정부가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의 뜻을 다시 확인하고 전후 평화헌법을 통해 국제사회에 기여해왔음을 한국인들이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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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안+3 정상회의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11월13일 캄보디아 프놈펜의 한 호텔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프놈펜/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윤석열 정부가 내년으로 다가온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에 맞춰 1998년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김대중·오부치 선언)을 대체하는 새 문서를 만들기 위한 본격적인 움직임에 나섰다. 혹시라도 역사는 잊고 안보 협력만 강화하는 선언을 만들 것이라면 당장 그만둬야 한다.

13일 요미우리신문과 아사히신문 등은 한국 대통령실 고위 당국자가 11일 서울 주재 특파원들을 불러 모아 “한-일 관계 발전을 위해 내년에 양국 정상이 ‘미래지향’적인 공동 비전을 발표하고 싶다는 의욕”을 내비쳤다고 보도했다. 대통령실 고위 당국자도 이날 김대중·오부치 선언 이후 발생한 여러 “걸림돌, 도전 요인, 국제 정세 변화를 반영할 시점에 와 있다”며 이를 위한 “준비를 앞으로 차차 일본과 해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점점 혼탁해지는 국제 정세 속에서 기본적 가치를 공유하는 두 이웃이 협력을 강화한다는 데 반대할 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그동안 보여온 모습을 생각할 때 여러모로 깊은 우려를 감출 수 없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3월 양국 간 최대 현안이던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에 굴욕적인 양보안을 내놓았고, 8월엔 캠프데이비드 정상회의를 통해 한·미·일 3각 동맹을 향한 첫발을 내디뎠다. 그런데도 일본이 채운다던 물컵의 반은 여전히 비어 있다. 결국, 새 공동선언엔 식민지배에 대한 일본의 명확한 사죄와 반성은 빠지고 중국·북한을 포위·압박하기 위해 안보 협력을 강화한다는 내용이 주로 담길 가능성이 높다.

이를 보여주듯 대통령실 고위 당국자는 이날 한·일 협력이 한반도뿐 아니라 “지리적으로 훨씬 확장돼야” 하고, “과거를 넘어서는 미래지향적 약속과 희망사항을 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새 선언이 만들어지면 한-일 관계는 아베 신조 전 총리가 2015년 담화에서 밝힌 것처럼 역사는 제쳐두고 드넓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 포위에 골몰하는 ‘새 시대’로 진입하게 된다.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26년 전 김대중 전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전 총리가 역사적인 공동선언에 합의할 수 있었던 것은 일본 정부가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의 뜻을 다시 확인하고 전후 평화헌법을 통해 국제사회에 기여해왔음을 한국인들이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런 내용을 빼놓은 채 새 한·일 공동선언 작성에 나선다면, 윤 대통령은 강한 국민적 저항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윤 대통령이 개선하려던 한-일 관계 역시 되레 악화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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