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과 그 많던 고구마 [똑똑! 한국사회]

한겨레 2024. 3. 13.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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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농사실습 온 풀무고등학교 학생들과 고구마를 심었다. 지금 우리 집에서도 고구마는 겨울 양식이다. 원혜덕 제공

원혜덕 | 평화나무농장 농부

내가 자라던 우리 집에는 ‘운동장’이 있었다. 아니, 가정집에 웬 운동장이야? 하겠지만 운동장으로 불렸다. 사실은 넓은 마당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맞았을지 모르겠다.

그 운동장은 추수를 하기 위해 만들었다. 밭에서 거둔 콩을 가져다 널어서 말린 다음에 도리깨로 털기도 했고, 탈곡기로 밀과 보리도 털었다. 두 사람이 나란히 서서 한발로 탈곡기 페달을 계속 밟으면 나머지 식구들이 밀이나 보리 등의 곡식 단을 들고 와서 돌아가는 탈곡기에 갖다 댄다. 그러면 곡식 알갱이가 우수수 떨어져 나온다. 단단하게 다져놓은 운동장 바닥에 곡식이 쌓이면 넉가래와 빗자루로 가마니에 쓸어담았다.

그 운동장 한쪽에 깊게 파 내려간 구덩이가 두 개 있었다. 그 움에 겨울 동안 고구마를 저장했다.

동네와 떨어져 산 중턱에 홀로 있던 우리 집 아래쪽에는 아주 큰 밭이 있었다. 아버지는 해마다 그 밭에 고구마를 심었다. 아버지가 공동체를 꾸려나가셔서 우리 형제들은 많은 언니, 오빠들과 함께 살았다. 식구가 많아서 쌀이 많이 필요한데 우리는 밭만 있고 논이 없었다. 밭에 작물을 길러 팔아서 쌀을 샀는데 넉넉하게 사들일 돈이 부족해서 고구마를 많이 심어서 식량으로 했다. 우리 집뿐 아니라 어느 집에서나 밭에 심는 주요한 작물 중 하나가 고구마였다. 우리 그 넓은 밭에 고구마를 심으려면 손이 많이 필요했다. 우리들 농번기 방학에 맞춰 같이 고구마를 심은 기억이 난다. 고구마 싹은 아버지가 미리 길러두었다. 각자 한 손에 고구마 순 한 다발을 들고 긴 밭 한 이랑씩 맡아서 심어나갔다. 고구마 순을 놓고 그 위를 주먹으로 꾹 눌렀다 떼면 흙이 알맞게 덮이고 주먹 자리만큼 파였다. 그러면 그다음 사람이 주전자와 바가지를 가지고 그 파인 자리에 물을 주었다.

밭이 넓어서 고구마를 심는 것도 큰일이었지만 물 주는 것도 일이었다. 밭 근처에는 물이 없어서 꽤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커다란 웅덩이에 가서 물을 길어 왔다. 그 일은 남자 어른들이 했다. 물을 퍼서 지게에 지고 작은 도랑도 건너고 밭둑도 넘어 고구마밭까지 왔다. 수십번 물을 길어 왔을 것이다. 우리는 아껴가며 물을 주었다. 물이 부족하겠다 싶어서 물을 조금 주면 자칫 고구마 순이 강렬한 햇볕에 타 죽고 넉넉하게 주면 마지막 고구마에 줄 물이 없어지니까 누군가가 그 요량을 해서 조금 덜 부어라, 좀 더 부어주어도 되겠다 하고 지시를 해주었다.

지난해 가을 남편과 아들이 경운기로 고구마를 캤다. 가을 가뭄으로 땅이 단단해져 호미로 캐기 어려웠다. 원혜덕 제공

여름을 지나며 잘 자란 고구마는 캐서 겨울 동안 보관했다. 고구마는 따뜻한 곳에 두어야 썩지 않는다. 시골은 집집마다 겨울 양식을 위해 고구마를 심었다. 수확해서는 따뜻한 방에 두고 겨울에 먹었다. 큰 방 한구석에 고구마를 쌓고 그 가장자리에 수숫대를 묶어 세워서 나머지 자리와 구별했다. 수숫대가 없으면 싸릿대를 묶어서 세우기도 했다.

우리는 수확한 고구마가 많아서 방에 보관할 수가 없었다. 넉넉한 저장고가 필요했다. 운동장 한편에 있던 움은 그래서 생겼다. 구덩이 지름이 1미터 남짓하게 파서 4~5미터쯤 파 내려갔고 그 아래는 넓게 옆으로 둥글게 팠다. 그 둥근 부분에 고구마를 저장했다. 땅속 깊이 파 내려갔고 위에는 흙이 있어서 그런대로 바깥 한겨울의 추위를 막을 수 있었다.

가을에 수확한 고구마를 그 움에 저장했다. 망태기에 줄을 달고 고구마를 담아 위에서 밧줄로 내려보내면 움 안에서 기다리던 사람이 받아서 가만히 고구마를 하나씩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고구마는 거칠게 다뤄 상처가 나면 금방 썩는다. 봄이 올 때까지 우리 식구들은 그 고구마를 꺼내서 점심으로 먹었다. 고구마는 긴 겨울의 양식이 되었다. 고구마를 겨울 양식으로 삼은 게 어디 우리 집뿐이었으랴. 우리 집은 식구가 많아서 고구마를 많이 심었고 그 많은 고구마를 보관할 저장소가 필요했을 뿐이다.

요즘도 많은 사람이 즐기는 고구마지만 이제 고구마는 식량에서 간식의 자리로 내려왔다. 그토록 부족했던 쌀은 남아돈다. 고구마가 중요한 양식이었던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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