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 혐의’ 한국인 체포한 러, 윤석열 정부 외교 압박 나서나

박민희 기자 2024. 3. 13.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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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정부가 지난 1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탈북민 지원과 선교 활동을 하던 한국인을 체포하고 이를 지난 11일(현지시각)에야 뒤늦게 공개한 것을 두고 러시아가 윤석열 정부를 향해 외교적 압박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전직 고위 당국자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미국이 대러 제재를 강화하고, (한국에도) 우크라이나 지원 확대 등을 계속 요구하면서 한-러 관계가 계속 악화되고 있다"면서, "악재들이 누적된 상태에서 러시아가 지난 1월 한국인을 체포해 내사를 하다가 공개해 본격적으로 윤석열 정부를 압박하고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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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서 간첩 혐의로 체포된 한국인 백아무개씨가 극동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운영하던 여행사가 등록된 건물. 블라디보스토크 연합뉴스

러시아 정부가 지난 1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탈북민 지원과 선교 활동을 하던 한국인을 체포하고 이를 지난 11일(현지시각)에야 뒤늦게 공개한 것을 두고 러시아가 윤석열 정부를 향해 외교적 압박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쌓인 갈등이 표면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 관영매체는 지난 1월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에 체포돼 현재 모스크바 구치소에 구금된 한국인 백 아무개씨가 간첩 활동을 했다고 연일 보도하고 있다. 타스통신은 12일 “백씨가 자신을 작가라고 소개하면서 소식통으로부터 국가 기밀 정보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그가 이 정보를 외국 정보기관에 보낼 예정이었다”고 전했다. 타스통신은 전날도 백씨의 체포 구금사실을 처음 보도하면서 “일급 기밀정보를 외국에 넘긴 간첩 사건”이라고 보도했다.

백씨는 블라디보스토크를 중심으로 탈북민 지원과 선교활동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에서 오랫동안 탈북민 지원 활동을 하던 그는 중국의 단속이 심해진 뒤 2020년 러시아로 가 현지 탈북자와 북한 벌목공 등에게 의약품, 의류 등 생필품을 지원해 왔다고 한다. 러시아는 1월에 백씨를 체포한 뒤 2월이 되어서야 한국에 이를 통보하고 물밑에서 한국과 교섭해오다가, 지난 11일 관영 타스 통신을 통해 이를 공개했다.

그동안 러시아는 한국인들의 탈북민, 북한 벌목공 등에 대한 지원 활동에 대해 용인하는 태도를 보여왔고, 한국 정부에도 협조적이었다. 남북관계와 탈북민 문제 등을 오랫동안 다뤘던 전직 당국자는 “러시아는 탈북자 문제로 그동안 한국과 갈등한 적이 거의 없었다. 탈북민들의 한국행 등에도 한국의 입장을 많이 수용해왔다”며 “탈북자 지원 활동을 해온 한국인을 간첩 혐의로 체포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특히 백씨가 체포된 지난 1월은 한-러 관계가 악화로 치달을 때였다. 지난해 12월26일 산업통상자원부는 미국 주도의 대러시아 수출 통제 공조를 강화하는 ‘제33차 전략물자 수출입 고시’ 개정안을 행정 예고했고 이에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교부 대변인은 “우리는 대응 조치를 취할 권리를 가진다. (한국이) 나중에 놀라지 않기를 바란다”고 불쾌감을 표시했다.

1월31일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북한 정권을 향해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핵 선제 사용을 법제화한 비이성적 집단”이라고 비난한 것에 관해 자하로바 대변인이 상대국 정상을 향해 이례적으로 “윤 대통령의 발언은 편향적”이라고 직공했다. 한국 외교부는 “수준 이하로 무례하고 무지하며 편향돼 있다”며 주한 러시아 대사를 불러 항의했다.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 전쟁 계기로 악화한 한-러 관계와 북-러 밀착 상황 속에 러시아 정부가 윤석열 정부를 겨냥해 압박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직 고위 당국자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미국이 대러 제재를 강화하고, (한국에도) 우크라이나 지원 확대 등을 계속 요구하면서 한-러 관계가 계속 악화되고 있다”면서, “악재들이 누적된 상태에서 러시아가 지난 1월 한국인을 체포해 내사를 하다가 공개해 본격적으로 윤석열 정부를 압박하고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박민희 선임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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