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가려진 이야기, 노래로 꺼내 보여주고 싶어요”
“밑동만 남은 나무 가까이 빙빙 맴돌았어요. 이제 나는 이곳에서 떠나야겠죠. (중략) 길을 떠나요. 집을 찾아서. 아스팔트로 덮인 흙과 땡볕으로 타들어 간 너와 종과 함께 기도하는 사람들을 지나. 난 하늘을 나는 다람쥐였고요.”
지난 1월 발매된 노래 ‘피난’은 대전 보문산 숲에 사는 동물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 노래를 만들고 부른 싱어송라이터 유진솔(본명 임유진, 32)씨는 살 곳을 찾아 보문산을 떠나야 하는 동물들의 마음을 노래했다. 대전 도심에 있는 ‘보물산’이라 불리는 보문산에는 멸종위기종인 하늘다람쥐와 삵, 수달, 노란목도리담비 등 동물이 산다. 그동안 이곳을 관광자원으로 개발하려는 시도가 계속됐는데, 현재 대전시는 보문산에 케이블카와 전망타워, 워터파크 등 체류형 관광단지를 조성하는 ‘보물산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대전 보문산에 케이블카 추진되자
동물의 마음 대신 담은 ‘피난’ 발표
“자본의 관점에 생명의 소리 묻혀”
NGO·기자 경험 바탕 노래 만들어
성매매 착취구조 끊으려는 활동가
대전역 옆 정동·원동 사람들 담아
“사건과 현장 외면하고 싶지 않아”
피난은 유씨가 대전의 생태책방인 ‘버들서점’, 대전충남녹색연합의 임도훈 활동가와 함께 만든 프로젝트 곡이다. 보문산 숲 속을 걷고 느끼며 쓴 노래와 가사에 보문산에서 녹음한 소리를 덧입혀 완성했다. 지난 6일 대전 중구 선화동에서 한겨레와 만난 유씨는 “인간의 언어를 갖지 못한 생명은 권력을 쥔 사람들 눈엔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자본의 관점으로 보문산에 케이블카를 만들려는 상황에서 ‘우리 여기 있다’는 생명의 소리는 묻히기 마련인데, 그런 생명을 대신해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유씨는 대전에 살며 노래를 만든다. 전북 익산이 고향인 그는 대학에 입학하며 대전에 왔고, 대전에서 시민단체 활동가로 일하다 충북 옥천에서 기자 생활도 했다. 2021년 기자 일을 그만두고 떠난 태국여행에서 느낀 ‘일상의 소중함’을 노래로 만들었는데, 그 곡이 첫 싱글 음원인 ‘장모의 고양이’다. 어린 시절 어렴풋이 ‘가수가 되고 싶다’ 생각했지만, 커가면서 현실을 깨달으며 그 꿈과 멀어졌다. 그러나 결국 진짜 하고 싶은 건 노래였고, ‘노래하는 유진’으로 돌아왔다. 지금은 프리랜서 기획자·창작자로 일하며 비교적 노래 만들기에 집중하고 있다.
“노래로 돈을 벌긴 어렵겠구나 생각하면서도, 계속 노래하며 살긴 했어요. 대학 때부터 노래를 만들고, 크고 작은 무대에서 공연도 했고요. 기자 일을 한 옥천은 공동체가 활성화된 곳인데, 그곳에 살며 동네 할머니·할아버지를 인터뷰하고, 수몰 마을을 취재하고, 지역 사람들을 만나 끊임없이 말을 건네고 질문했던 경험이 제겐 밑거름돼 노래를 만들고 있어요.”
어릴 때부터 사회 문제에 관심 많고 노래하는 걸 좋아한 유씨는 ‘마음을 넘어 시선이 담긴 노래’를 한다. 그리고 그 노래의 기반은 사는 곳 대전과, 대전 사람들이다. 2022년 3월 발매한 앨범 ‘만달라’는 2021년 대전역 옆 동구 정동과 원동을 기록하는 지역리서치 사업에 참여하며 만든 것이다. 해 뜨기 전 집을 나서 해 지기 전 집으로 돌아가는 상인과 시장 풍경(해가 지기 전에), 정동 골목의 화분·식물·이끼·곰팡이들(만달라), 원동의 잔뼈 굵은 철공소 장인들(나이테), 대전역 근처 성매매 집결지(얼굴들), 정동상회 사장님 이야기(말줄임표)가 노래가 됐다.
앨범 소개에 그는 “인터뷰를 마치고 한 계절이 지날 즈음 정동상회에 다시 찾아 ‘말줄임표’를 들려드렸더니, ‘은은하니 좋다’고 하셨다. 영옥님이 좋아하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아 누워 계시던 방에 들어가 기타를 치며 노래했다. 마음이 살아나는 기분이었다”고 적었다.
지난해 3월 세상에 내놓은 ‘말을 건다’는 성매매여성피해지원센터인 ‘여성인권티움’과의 협업으로 탄생한 곡이다. “여성을 착취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착취구조를 끊어내고자 노력하는 사람들도 존재함”을 노래하려 했다.
“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나의 마음을 이야기하고 싶기도 하지만, 나를 분노하게 하는 사건이나 현장을 외면하며 살고 싶진 않아요. 세상에 가려진 이야기를 노래로 꺼내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그런 면에서 전 늘 지역 시민사회에 빚지며 산다고 생각해요. 그분들이 전업으로 싸워주는 덕분에 제가 이렇게 노래하며 살 수 있는 거잖아요.”
유씨가 진솔하게 웃으며 말했다.
최예린 기자 floy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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