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앞둔 아나키스트, 배움도 시신도 나눴다

한겨레 2024. 3. 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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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까지 호기심을 놓지 않고 자유롭게 공부하다 57살을 일기로 행복하게 생을 마감한 아나키스트가 있습니다.

암 투병 중에도 세미나를 조직하고 글을 쓰고 강의를 열어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마지막 힘이 소진될 때까지 밝게 공부하고 글쓰고 강의하신 도인", "새로운 생각과 세상을 열어주신 선생님", "공부한다는 게 뭔지, 생각한다는 게 뭔지 보여주신 분", "지식을 전하는 사람이 아닌, 그 지식 안에서 함께 나누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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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신이의 발자취] 박성관 독립 연구자를 기리며
암으로 체중 주는데 세미나 매진…시신은 병원 기증

마지막까지 호기심을 놓지 않고 자유롭게 공부하다 57살을 일기로 행복하게 생을 마감한 아나키스트가 있습니다. 암 투병 중에도 세미나를 조직하고 글을 쓰고 강의를 열어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가 집필하고 번역한 책을 읽고 강의와 세미나를 함께했던 사람들은 그를 이렇게 기억합니다. “마지막 힘이 소진될 때까지 밝게 공부하고 글쓰고 강의하신 도인”, “새로운 생각과 세상을 열어주신 선생님”, “공부한다는 게 뭔지, 생각한다는 게 뭔지 보여주신 분”, “지식을 전하는 사람이 아닌, 그 지식 안에서 함께 나누는 사람”. 그에 대한 기억들은 과거를 향하게 해 놓고 정작 본인은 아내와 두 아들을 통해 자신의 미래를 정해놓았다지요. 시신은 병원에 기증하고 빈소도 마련하지 말라고. 그 덕에 유쾌하고 호기심 많은 연구자 박성관을 잃은 우리의 상실감은 온라인 추모 공간에만 남습니다.

유쾌하고 호기심 많은 자유 연구자
진화론·현대물리학 등 다방면 집필
지식 안에서 새로운 생각·세상 나눠
그의 강좌에 교수·작가·비평가도 참석

암 투병 중에도 글 쓰고 강의 열어
“빈소 마련 말고 시신 기증을” 유언

서울대 종교학과를 졸업한 박성관은 몇 년의 직장 생활 후 자유 연구자가 되기로 마음먹습니다. 지금도 운영 중인 ‘수유너머’나 ‘대안연구공동체’가 그런 삶을 가능케 했습니다. 그는 정말 많이 공부했습니다. 다윈의 진화론을 공부하고 ‘종의 기원, 생명의 다양성과 인간소멸의 자연학’, ‘다윈에게 직접 듣는 종의 기원 이야기’를 썼습니다. 현대물리학을 공부하고는 ‘아인슈타인과 광속 미스터리’를 집필했습니다. 더 공부하기 위해 독학으로 익힌 탁월한 일본어 실력으로 일본어 강좌를 열었고, ‘응답하는 힘’, ‘중동태의 세계’, ‘분해의 철학’등 중요한 일본 사상가들의 책도 번역했습니다. 책이 나오면 늘 사람들과 함께 대화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그에게 공부란 혼자 하는 게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투병 중에도 ‘사이버네틱스를 읽자’, ‘강호, 작업장, 정원’ 강좌를 열었습니다. 그의 곁으로 교수, 학생, 작가, 비평가, 기획자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는 진정 공부를 좋아했습니다. 늘 뭔가를 붙잡으려는 듯 책을 읽고,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면 흥분되어 ‘유레카’를 외쳤습니다. 병으로 체중이 줄고 체력이 떨어졌어도 세미나와 강의에 매진하는 게 걱정스러웠지만 말릴 수 없었습니다. 공부를 놓으면 생의 에너지를 놓칠 듯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 와중에 본인은 이런 글을 쓰는 여유를 부렸습니다. “어느 출판사 대표는 나의 얘길 듣고, 그거 여러 권으로 출판해보자고 제안했고 나는 단칼에 거절했다. 이유는? 그거 하고 나면, 아니 어쩌면 쓰는 도중에 죽을 거 같다, 는 것이었다. ‘책 쓰다가 죽은 정약전’처럼 말이다.”

집필 중이던 책이 남았습니다. 거기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이산과 연속으로서의 우주관으로부터 지구 위기 시대를 맞은 우리는 어떤 새로운 조직론, 어떤 새로운 정치학의 시사를 받을 수 있을까? 달리 표현하면, 우리는 어떻게 아나키즘을 계속 견지하되 그 약점을 보완할 수 있을까?” 아나키스트인 그는 “누구의 결제를 받아가며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기에” “사람들 속에서 신처럼 살아가는” 자유로운 사람들의 공동체를 꿈꾸었습니다. 그 공동체들이 “온갖 빛깔과 향기의 꽃들이 피어있는 정원”처럼 서로 “부분적인 연결들로 언제나 일렁이며, 언제나 여유있게, 유두리있게” 관계맺는 세상을 상상했습니다. 불확실하나 독립적인 자신의 생으로 이런 삶이 가능함을 시전하고, 강의와 세미나로 만난 사람들과 함께 “적절히 풀어져 있는 상태의 흐뭇하고 편안한” 공동체의 윤곽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곤 그가 남긴 원고의 문장처럼 자기 것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기록으로조차 남지 않겠다는건, 전 세계, 동서고금 아나키스트들 특유의 공통점이 아닐까?”

김남시/이화여대 조형예술대학 교수, 사진 유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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