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아침에] 국민연금 고갈 이후 누적적자부터 공개하라

오현환 논설위원 2024. 3. 13.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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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공론화위 연금 개혁안은 ‘개악’
자문단에 보장성 강화론자 편파 배치
연금의 ‘회색코뿔소’ 위기 발생 우려
미적립부채와 누적적자 공개는 상식
[서울경제]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공론화위원회가 의제 숙의단 워크숍을 통해 내놓은 국민연금 개혁안이 ‘개혁’이 아닌 ‘개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공론화위의 개혁안은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13%로 올리되 소득대체율도 40%에서 50%로 올리는 1안과 보험료율만 12%로 올리고 소득대체율은 그대로 유지하는 2안이다. 두 가지 안대로 해도 연금 기금 고갈 시점은 당초 2055년에서 고작 각각 7년, 8년 늦춰질 뿐이다. 지난해 11월 연금특위 민간자문위원회가 유력하게 거론했던 ‘보험료율 15% 인상+소득대체율 유지’ 안이 고갈 시점을 16년 늦출 수 있었던 것에 비해 더 후퇴한 셈이다.

뒷걸음질 개혁안에 대해 뒷말이 무성하다. 공론화위의 전문가 자문단(11명)에 ‘보장성 강화’를 주장하는 사회복지학자들이 편파적으로 많이 배치됐다는 얘기가 나온다. 반면 ‘재정 안정’을 중시하는 재정학자들은 상대적으로 적게 배치됐다. 의제 숙의단에도 소득대체율 상승을 선호하는 노동·시민단체 출신 등이 많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으로 500명의 시민 대표단의 4차례 공개토론회를 거쳐 21대 국회 임기가 종료되는 5월 29일 이전에 입법화를 추진할 예정이지만 ‘기울어진 공론의 장’이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공론화위는 두 안 중 어떤 안이 채택되더라도 1998년 이후 27년 만(내년부터 적용 기준)에 보험료율을 올리고 기금 고갈 시점도 몇 년 늦추는 것을 대단한 개혁으로 내세우는 듯하다. 그러나 기금 고갈 이후에도 눈덩이처럼 불어날 누적 적자는 어떻게 감당하겠다는 것인가. 전영준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가 연금연구회 주관 토론회에서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국민연금 가입자와 수급자에게 지급을 약속한 예상 연금액(현재 가치 환산)이 2023년 말 기준 2825조 원에 달한다. 적립된 기금 1000조 원을 뺀 미적립부채는 1825조 원으로 이미 지난해 예상 국내총생산(GDP)의 80%를 넘어섰다. 미적립부채는 27년 뒤인 2050년에 6000조 원으로 늘어나고 기금 고갈 후 누적 적자는 연금재정 추계의 기준이 되는 70년 후인 2092년에 775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연금 학계에서 전망되고 있다. 특히 공론화위가 내놓은 2안은 2092년의 누적 적자가 1970조 원이 줄지만 1안의 경우 오히려 702조 원 늘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참여정부는 2007년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60%에서 40%로 단계적으로 내리는 재정 안정 개혁에 부분적으로 성공했다. 이 정도 성과라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국민연금의 잠재부채가 매일 800억 원 쌓이는 것을 생각하면 시한폭탄의 시계 소리를 듣는 느낌”이라며 미적립부채를 수시로 강조한 영향이 컸다.

국민연금을 제대로 개혁하기 위해서는 공론화위가 재정 추계 기간에 예상되는 미적립부채와 기금 고갈 이후 누적 적자부터 떳떳하게 공개해야 한다. 시민 대표단이 쉽게 비교해 토의할 수 있도록 개혁 방안에 따르는 미적립부채와 누적 적자의 변화 규모를 함께 보여주는 것은 상식에 해당한다. 정부와 국회 연금특위도 ‘비공개’ 입장을 바꿔 이러한 조치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재정의 변화가 눈앞에 드러나면 가입자와 수급자를 설득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지속적인 경고로 이미 알려진 위험신호들이 빠르게 나타나지만 이를 무시하다가 결국 당하고 만다는 미셸 부커 세계정책연구소장의 ‘회색 코뿔소’ 위기가 연금 개혁 과정에 현실화할까 두렵다. 학계에서는 우리나라의 연금 재정 안정의 수준이 금융위기로 수급자가 받는 연금액이 하루아침에 50% 칼질 당한 금융위기 이전 그리스 연금에 못지않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급속한 저출생으로 인구절벽은 가팔라지고 있다. 현행 복지 구조를 유지할 경우 2000년대 이후 태어난 세대는 생애소득의 40%를 세금으로 내야 할 것이라는 경고가 경제학 학술대회에서 나오기도 했다.

해외 선진국들은 수차례의 연금 개혁을 통해 보험료를 현실화하고 공적연금을 통합하고 수령 시기도 늦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분의 2는 경제 사정에 따라 연금 수령액을 자동 조정하는 자동 안정화 장치까지 갖췄다. 우리는 언제 국민연금 재정을 안정시키고 공무원·군인·사학연금을 개혁하고 공적연금을 통합시켜나갈 것인가. 가야 할 길은 먼데 해는 저물고 있다.

오현환 논설위원 hho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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