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에 5천대 … 우즈베크 홀린 K보일러
경동나비엔, 중앙亞서 러브콜
콧대 높은 이탈리아산 제치고
럭셔리주택에도 800대 첫 납품
'보일러=내수산업' 편견 깨고
현지화 전략, 해외 매출 8천억
최근 방문한 우즈베키스탄 수도 타슈켄트 야시나바드구의 아파트 건설현장. 이곳에서는 우즈베키스탄 건설사인 펄빌드가 짓는 5000가구 규모 아파트 단지 '타워업'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 단지는 우즈베크 최대 규모 아파트 단지로 현지 한국인 사이에서는 우즈베크의 '헬리오시티'(서울 송파구에 있는 9510가구 초대형 아파트 단지)로 불린다. 타워업에는 2026년까지 2만여 명이 입주할 예정이다.
이 단지는 국내 보일러 시장 1위 기업 경동나비엔의 가스보일러 '디럭스 에스'가 5000가구 전체에 설치되고 있어 주목된다. 이는 카자흐스탄을 포함한 중앙아시아 건설 업계 역사상 최대 규모 보일러 계약이다.
현장에서 만난 호지아크바르 틸라샤이호프 펄빌드 대표는 "경동나비엔 가스보일러는 다른 브랜드에 비해 에너지 효율이 매우 뛰어나다"며 "이미 미국 시장에서 검증을 받았고, 우즈베크에서는 한국 기업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신뢰감이 높다"고 덧붙였다.
경동나비엔이 우즈베크를 필두로 중앙아시아를 휩쓸고 있다. 시장 규모가 우즈베크보다 작은 카자흐스탄에선 이미 시장점유율 1위에 오른 데 이어 중앙아시아 최대 시장 우즈베크에서도 1위를 향해 속도를 내고 있다. 1990년대 중반 우즈베크의 대우자동차 신화를 이어받아 'K보일러 신화'를 써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타슈켄트 미라바드구에 있는 아파트 건설현장에서도 보일러 설치가 한창이다. 우즈베크 최대 건설사인 골든하우스가 짓는 2500가구 규모 럭셔리 아파트 '그리니치' 단지다. 럭셔리를 내세우는 골든하우스는 그동안 이탈리아 보일러 회사인 아리스톤의 제품만 고집해 왔다. 그러나 이번에 처음으로 800가구에 대해 이탈리아 제품이 아닌 경동나비엔 제품으로 채우기로 했다.
홍원지 경동나비엔 우즈베크 법인장은 "2022년 법인 설립 이후 매출이 빠르게 늘고 있다"며 "2년도 안 돼 '톱3'에 진입했고, 2026년에는 우즈베크 1등 보일러로 올라설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현지 법인에서는 모두 25명이 일하고 있는데 홍 법인장을 제외하면 모두 현지인이다. 이들을 활용해 올해 우즈베크 전국으로 유통·서비스망을 넓혀나갈 예정이다.
현지 조사기관에 따르면 우즈베크의 연평균 보일러 시장 성장률은 15%에 이른다. 중앙아시아 보일러 시장 규모는 연간 30만~35만대 정도인데 그중 우즈베크가 15만~20만대, 카자흐스탄이 8만~10만대를 차지한다. 우즈베크와 카자흐스탄을 노리면 인접국 시장은 쉽게 공략할 수 있다. 실제 지난해 경동나비엔의 중앙아시아 전체 매출은 전년 대비 35% 성장한 200억원을 기록했다. 올해도 30% 이상 고성장이 예상된다.
우즈베크에 'K보일러 붐'이 부는 것은 정부 주도로 인프라스트럭처 현대화가 빠르게 진행 중인 분위기와도 맞닿아 있다. 2016년 샵카트 미르지요예프가 제2대 대통령이 되면서 개혁개방 정책이 본격화되고 있다. 거주 자체가 제한받던 타슈켄트는 2021년부터 전입신고만 하면 입주가 가능해졌고, 그 결과 2016년 240만명에 불과했던 인구가 지난해 304만명으로 급증했다. 도시 곳곳에 대단지 아파트가 속속 들어서고 이에 따라 보일러 수요도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또 지난해 4월 정부가 난방 시스템 현대화를 선언하면서 난방 서비스·시스템 시장이 기존 정부 주도에서 민간 주도로 바뀌고 있다.
경동나비엔은 이미 북미 시장에서 현지화 전략 성공 사례를 써낸 바 있다. '보일러는 내수산업'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2008년 미국, 멕시코 등에 '콘덴싱 순간식 온수기'를 처음 출시했고 현재 북미 콘덴싱 보일러, 온수기 시장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2017년 해외 매출이 처음으로 전체 매출의 50%를 돌파한 이후 6년 연속 해외 매출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 경동나비엔의 해외 매출액은 2019년 4388억원, 2021년 7075억원, 2022년 7732억원에 이어 지난해에는 3분기까지 누적 5879억원을 달성했다.
[타슈켄트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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