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에는 ‘그만둬라’고 하면 그만둬야 했죠. 사실상 인간 이하의 대우였죠. 그런 분위기가 5~6년 전부터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13일 이충근 압구정 신현대아파트 경비원노조 지회장이 10년 전을 회상하며 말했다. 그가 꼽은 경비원 처우 개선의 핵심은 “노조활동”이라고 했다. 이 지회장은 “예나 지금이나 경비원은 사회적 약자다. 악성 민원이나 불이익을 스스로 해결해 나가기에는 한계가 있다”며 “누군가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 결국 스스로 힘을 모아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2014년 11월 신현대아파트 경비노동자가 입주민 갑질을 폭로하고 분신해 숨진 사건은 사회에 충격을 줬다. 당시 노조는 책임자 진상규명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했다. 이후 경비원 전원해고 논란이 일었지만 노조와 입주민간 합의로 갈등이 봉합됐다. 지난 2022년에도 농성을 벌여 고용승계 약속 등을 받아냈다.
노조 활동은 많은 것을 바꿔놨다. 현재 근무하고 있는 경비원 76명 중 70명이 관리원으로 일한다. 관리원은 근로기준법을 적용받는다. 계약은 ‘3개월 쪼개기 계약’이 아닌 1년 계약으로 이뤄진다. 퇴직금을 떼일 염려가 적고, 추가근무수당·휴일근로수당 등을 보장받을 수 있다. 손익찬 일과사람 공동대표변호사는 “신현대아파트 사건으로 입주자대책위의 갑질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다. 이후 교대근무제도, 독립 휴게 공간 확보 등이 제도적으로 많이 달라졌다”고 했다.
이 지회장은 “여전히 무리한 요구를 하는 입주민이 없는 건 아니지만 단지 내 미화 업무, 택배·등기 보관업무 등 가욋일을 하는 경우가 크게 줄었다. 10년 전보다 경비노동자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이 나아졌다”고 했다.
그러나 모든 사업장에서 이 같은 노동환경 개선이 이뤄진 것은 아니다. 노조를 만들려고 해도 비정규직·하청고용 구조 등 넘어야 할 난관이 많다. 정의헌 전국민주일반노조 공동주택분과 조직위원장은 “비정규직은 계약 기간이 3개월인 경우가 제일 많은데 괜히 나섰다가 계약이 되지 않을 수도 있으니 선뜻 노조를 설립하려고 나서기 어렵다”고 했다.
정 위원장은 “용역업체나 관리사무소가 노조를 만드는 것을 경계하니 연세가 많은 분들 사이에서는 ‘얼마나 일하겠다고 노조를 만드냐’는 분위기가 있다”고 했다. 남우근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와 위탁회사, 경비용역회사가 있는 간접 고용 구조가 있다. 이 때문에 일상적 노사관계가 형성되기 어렵다”고 했다. 하청에 해당하는 관리업체와 경비용역업체가 원청인 입주자대표회 눈치를 보는 탓에 경비원들의 노조 설립을 막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적은 인원 규모와 1인 근무체계도 걸림돌이다. 남 소장은 “대부분 아파트단지가 10명 내외 소수로 근무하기 때문에 노조 활동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김선기 민주일반노조 사무처장은 “근무 시간이 각자 다르고 초소 등에서 일하는 1인 근무체계도 노동자들끼리 연대를 어렵게 만드는 요소”라고 했다.
정 위원장은 “코로나 이후 3개월 단기계약이 빠르게 확산했다. 전국의 경비원 90%는 3개월 계약”이라면서 “노조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 등으로 고용안정이 이뤄져야 마음 놓고 노조를 설립할 수 있는 환경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이 지회장은 “인원 부족 문제는 개별 아파트 경비원들이 연합 노조를 결성하는 방식으로 해결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 동료가 세상을 등진 후, 거리가 일터가 됐다[강남 아파트 경비노동자 사망 1주기]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403131643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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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훈 기자 ksh3712@kyunghyang.com, 김송이 기자 songyi@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