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당의 새 역사적 소명 [장석준의 그래도 진보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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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진보정당'은 단순히 좌파정당의 동의어만은 아니었다.
'진보정당'은 '정치개혁 추진세력'의 다른 이름이기도 했다.
2000년대에 민주노동당을 출범시킨 진보정당 운동은 정치개혁 비전 역시보다 정교하게 발전시켰다.
물론 비례위성정당에 기꺼이 합류함으로써 정치개혁이라는 한국 진보정당 운동의 역사적 소명을 미련 없이 털어버린 이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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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준 | 출판&연구집단 산현재 기획위원
한국에서 ‘진보정당’은 단순히 좌파정당의 동의어만은 아니었다. ‘진보정당’은 ‘정치개혁 추진세력’의 다른 이름이기도 했다. 1988년 총선에 처음 도전할 때부터 정치개혁은 진보정당 운동과 한몸이라 할 만큼 우선적이고 근본적인 과제였다.
1988년이면, 제6공화국이 출범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다. 치열한 투쟁 끝에 대통령 직선제를 부활시키며 대의민주주의의 안착을 기대하던 시점이었다. 하지만 이후에 진보정당 운동에 나서게 될 이들이 보기에 제6공화국은 처음부터 문제가 많고 한계가 컸다. 결선투표제 없는 대통령선거, 승자 독식을 보장하는 소선거구제 일색 국회의원선거는 군부독재 잔당과 3김씨를 제외한 세력의 성장을 막는 거대한 장벽이었다. 처음부터 진보정당 운동은 이런 제도를 발판 삼아 기성세력만의 질서가 굳어지는 것을 막으려는 안간힘이었다.
2000년대에 민주노동당을 출범시킨 진보정당 운동은 정치개혁 비전 역시보다 정교하게 발전시켰다. 2004년 총선에서 ‘낡은 불판을 갈자’고 정치개혁을 설득하며 바람을 일으킨 노회찬이 특히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만 해도 한국에는 낯설었던 독일, 뉴질랜드의 지역구-비례대표 연동형 선거제도가 노회찬의 열정적인 소개와 설득을 통해 진보정당 운동의 공통 주장이자 핵심 요구로 자리 잡았다.
촛불항쟁의 여파로 2020년 총선을 앞두고 선거법 개정 가능성이 커지자 정의당을 비롯한 진보정당들은 수십 년 만에 드디어 정치개혁의 한 단계가 완성된다는 기대에 한껏 부풀었다. 비록 실제로는 기이한 ‘준연동형’ 방식이 채택됐지만, 그래도 전보다는 훨씬 나아진 정치 질서를 꿈꿔볼 만했다. 그러나 단꿈은 며칠 가지 못했다. 양대 정당은 곧바로 비례위성정당을 창당해, 새 선거제도에서도 양당 독점 정치를 충분히 이어갈 수 있음을 과시했다.
한때는 이것이 과도기의 해프닝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다시금 준연동형 방식에 따라 총선을 치르려 하는 지금, 양대 정당은 전보다 더 당당히 비례위성정당을 만들고 있고, 한때 이를 비판했던 인사들이 이제는 그 전도사로 활약한다. 이쯤 되면, 양대 정당과 그 비례위성정당이 한국형 정치제도로 뿌리내렸다고 봐야 한다. 달리 말하면, 양당 독점 정치를 깨려던 진보정당 운동의 정치개혁 시도는 일단 처참히 ‘실패’했다. 이렇게 한 시대가 끝나 버렸다.
그러나 패배를 솔직히 인정하더라도, 패배 ‘이후’의 미래까지 닫힌 것은 아니다. 물론 비례위성정당에 기꺼이 합류함으로써 정치개혁이라는 한국 진보정당 운동의 역사적 소명을 미련 없이 털어버린 이들도 있다. 그러나 제6공화국 정치체제는 복합위기와 다중재난의 시대에 점점 더 정치 엘리트 간 권력 다툼에만 몰두하며 말기적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정치개혁 운동의 한 주기가 끝났다고 하여 정치개혁 자체를 포기해도 좋을 상황이 전혀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치개혁 운동의 새로운 출발이다.
정치개혁 운동 제1기의 패배 이후 우리에게 남은 수단은 마치 1987년 6월의 거리에서 그랬듯이 정치체제 바깥으로부터 시민의 힘으로 낡은 질서에 충격을 주는 것이다. 아마도 법안 국민발의권, 국민투표 국민발의권 도입처럼 국민주권을 강화하는 ‘원 포인트’ 개헌을 요구하는 운동이 정치개혁 운동 제2기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진보정당’은 이렇게 시민주권 민주주의를 부르짖는 세력의 다른 이름이 되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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