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학 선구자·만주항일투쟁 지도자 ‘김교헌의 생애와 역사인식’

이나경 기자 2024. 3. 13.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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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원 김교헌의 모습.

 

무원 김교헌(1867~1923)은 경기도 수원군 구포리(현 화성시 비봉면) 출신으로 근대 민족주체 역사관의 토대를 만든 인물이자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다. 그는 조선조 말기 과거를 통해 입신양명했다. 그의 집안 또한 대대로 벼슬을 역임했는데 조선 사회 벼슬을 했다는 것은 성리학적 유교 지식인의 세계에 깊이 녹아들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김교헌은 유교적 가치로부터 환골탈태했다. 그는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중화적 지식인에서 민족주의적 역사가로, 지체 높은 사대부에서 독립투사의 길로 인생을 바꿨다.

‘김교헌의 생애와 역사인식’ (선인 刊)

중화주의적 가치관 속에 함몰됐던 그는 ‘국망도존(나라는 망했어도 정신은 있다)’을 외친 홍암 나철과 대종교(단군을 기리고 그 실체를 되살리는 민족고유 종교)를 만나며 변했다. 만주로 망명해 항일투장무쟁운동을 추진하고, 민족 교육에도 힘쓴 그는 1919년 2월 이세영, 이승만, 안창호 등을 39인의 명의로 선포된 대한독립선언서(일명 무오독립선언서)에 가장 주동적인 역할을 맡기도 했으며 대종교는 조국을 되찾으려는 열혈지사들의 공동체가 됐다. 일제의 탄압으로 만주로 망명한 김교헌은 우리 민족의 정체성에 기반한 민족적 가치가 담긴역사서를 만들어 애국혼을 고취시켰다. 이는 신흥무관학교를 비롯한 독립운동 현장에서 독립군들에게 정신적 교본이자 민족학교 교재로 사용됐고,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교과서로 사용되며 역사인식 고양의 중요한 지침이 됐다.

‘김교헌의 생애와 역사인식’(선인 刊)은 지난해 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출간됐다. 대학에서 대종교 독립운동사와 국학 이론을 강의한 김동환 국학연구소 연구원이 펴냈다.

그는 명문가의 종손으로 태어나 질곡의 시대를 거쳐 각성을 통해 항일투쟁의 선봉에 선 김교헌의 일생과 ‘단조사고’ ‘신달실기’, ‘신단미사’ 등 그의 주요 저서 및 역사인식과 마지막으로 ‘주인과 노예의 역사학’이란 제목 하에 그와 그의 역사관에 대한 평가까지 아울렀다.

대종교인들이 중심이 된 북로군정서 대원들, 청산리전투에서 대패한 일본군.

저자는 “사관은 역사를 바라보는 안목으로 주인 됨을 버리면 기준과 척도를 잴 수 없다”며 “중화적 사대주의사관이 일제강점기 식민주의역사관으로 연결됐다는 것은 다시금 주인의 눈을 잃어버린 아픔”이라고 말한다.

이나경 기자 greennforest21@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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