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하기 힘든 정부의 `의대 2000명 증원` 고집…복지부 무능에 파국으로 향하는 대한민국 의료시스템
의료 현장 혼란 장기화 속 의대 교수들도 집단행동 '초읽기'
종합병원 잇단 병동 폐쇄·축소에 의료 공백 불가피
강경대치 23일째...환자 불안감 커져
"정부·의료계 한 발짝씩 양보해야" 목소리 높아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추진으로 촉발된 정부와 의사들 간 갈등이 23일째로 접어들면서 파국으로 향하는 모양새다. 이번주까지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면 전국 의대생의 상당수가 유급이나 휴학을 해야 한다. 정부가 사직 의사를 표명하고 병원에 나오지 않는 전공의 1만명에 대한 행정처분을 진행중인 가운데 전임의와 의대 교수들의 사직도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대한소아심장학회 등 의학 학회들의 정부 비판 성명도 이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주요 병원들의 병동 폐쇄·축소 잇따르고 있으며 서울대 등 대형 병원들은 내원 환자가 급감, 적자가 수십억원에 달하면서 이번 사태가 좀 더 이어지면 존립 위기에까지 몰릴 형편이다. 정부는 언론과 광고 등을 통해 연일 의료 개혁의 정당성을 홍보하고 있지만, 의사들은 현실성이 부족하고 독소 조항이 숨어 있다는 입장이어서 좀체 타협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2000명 증원 변경 없다" vs "과학적 근거 없고 교육법에도 저촉"
이번 의정 갈등의 출발은 지난달 6일 보건복지부의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이라는 발표였다. 현재 3058명인 전국 40개 의대의 정원을 단번에 5048명으로 65% 늘리겠다는 것이었다. 보건복지부는 이렇게 의사를 대폭 확충하면 이른 바 '낙수 효과'로 인해 지역·필수 의료 의사 부족 문제를 풀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대한의사협회(의협) 등 의사들은 △정년 이후에도 일하는 의사들이 늘면서 우리나라 의사 증가율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을 훨씬 넘어서며 △지역·필수 의료 문제는 의사 수로 풀 수 있는 게 아니라 지역·필수 의료에 의사들이 지원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 시스템을 마련하고, 의료분쟁의 위험을 해결해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고 △2000명 증원시 의학 교육이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며 반대했다. 위험하고 힘든 필수의료 영역의 진료에 대한 보상과 민형사상 신분보장이 안 된다면 의사를 100만명 뽑아도 아무도 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의대 정원 증원이 바람직한지, 증원을 하면 몇 명이 좋은지는 의사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지만 교육 여건 등을 감안할때 대체로 현 정원의 10~15%선인 300~400명 정도가 적당하다는 의견이 많다. 의대 학장들이 설립한 단체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는 350명 증원이 적절하다는 의견을 밝힌 상태다.
서울대병원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12일 기자회견을 열고 의대증원 관련 대화 협의체 구성에 국민단체를 포함하고, 의대 증원 규모는 외부기관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논의하자고 정부 측에 제안했다. 2000명을 당장 증원할 것이 아니라 공신력 있는 기관에 연구를 의뢰하고 1년 후 증원 규모를 정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이런 의사들의 의견을 거부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12일 "의료개혁을 원칙대로 신속하게 추진하라"고 지시했으며, 한덕수 국무총리는 13일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에 대해 "정부의 결정 근거는 명확하다. 2035년에 의사 1만명이 부족하다는 여러 전문가의 과학적 방법론에 기초한 연구결과가 있었다"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의사들은 보건복지부가 2000명 증원의 근거로 제시한 KDI와 보건사회연구원, 서울대 의대 홍윤철 교수 연구 등 세 논문의 저자들도 "2000명이라는 숫자는 제시하지 않았으며 정부가 인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밝혔다며, 정부의 의대 정원 대폭 확충 계획은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또 전국 33개 의과대학 교수협의회 대표는 지난 5일 서울행정법원에 보건복지부와 교육부 장관을 상대로 2025학년도 의대 2000명 증원 처분과 그 후속 처분에 대한 취소소송을 제기하고,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서도 제출했다. 교수협의회는 "고등교육법상 대학 학과 증원 결정은 입시의 공정성 등을 위해 해당 학년도의 1년 10개월 전에 공표돼야 하는데 올 입시가 8개월여밖에 남지 않은 상태에서 의대 정원을 늘리는 건 위법"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의정 갈등의 핵심인 '2000명'이라는 숫자에 대해선 정부는 "협상 대상이 아니다"며 완강한 태도다. KAMC가 350명을 제시한 점으로 볼때 현 정원의 10% 안팎에서 정원을 늘리는 건 의사들이나 전공의들에게도 받아들일 수 있는 카드로 보인다. 하지만 정부가 워낙 강경, 협상의 문은 닫혀있는 상태다. 안팎에선 윤석열 대통령이 여러번 2000명을 언급한 까닭에 2000명이라는 숫자는 바꿀 수 없는 '성역'이 됐다는 소리가 나온다.
한 대형병원의 의사는 "응급실, 소아과, 산부인과 및 필수의료과들은 시스템 개선을 통해 당장 투입할 수 있는 전문의들이 이미 많이 있다"며 "현재 다른 직종에서 일하고 있지만, 의료계가 제기하고 있는 문제들을 개선하면 당장 1년 안에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는 분들이 많다"고 전했다.
◇"'낙수 효과' 있을 것" vs "의사와 변호사 시장 차이도 모르는 소리"
정부는 의대 정원을 늘리면 의사들이 늘어 어쩔 수 없이 지역·필수의료 의사가 늘어날 것이라는 이른 바 '낙수 효과'를 거론하고 있다. 그러면서 변호사 시장을 그 예로 꼽고 있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도입 등으로 지난 10년간 변호사 숫자가 2배 가량 증가하면서 지방 변호사도 2배 이상으로 늘어나, 지방서도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받게 됐다는 것이다. 한덕수 총리는 이를 근거로 의대 증원 근거는 명확하다고 했다.
하지만 이는 의료 현장을 전혀 모르는 소리라는 게 의사들의 지적이다. 첫째, 의사들이 지방에서 일하려면 자신의 돈을 들여 건물과 의료장비를 구하고, 간호사 등 보조인력도 채용해야 한다. 작은 사무실만 필요한 변호사들의 개업과는 비교할 수 없다. 그런데 그렇게 개업을 하더라도 저출산으로 환자 수가 줄어들고, 대부분 1시간이면 갈 수 있는 도시의 대형 병원으로 환자들이 가 도저히 병원을 운영할 수 없게 된다. 둘째, 변호사들은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고, 계약에 따라 자유롭게 서비스 보수를 받을 수 있지만 의사들은 정부의 엄격한 수가 규제로 마음대로 서비스 제공 댓가 또한 받을 수 없다. 이러니 어느 의사가 지역에서 일하려 할 것이냐는 얘기다.
한 의사는 "정부가 주장하는 낙수 효과는 문재인 정권의 소주성(소득주도성장)과 닮은 꼴의 희망 고문이자 망상"이라며 "소주성과 원전 폐쇄로 임금만 올라가고, 물가와 집값 폭등으로 삶은 각박해지고 어려워진 것처럼 지나친 의대 집중화를 유발시켜 타 영역의 발전 저해를 넘어 균형발전을 무너뜨릴 것이다. 이미 판도라의 재앙의 증거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필수의료 지원 패키지로 의사 돕겠다" vs "의사 수익 기반 빼앗고 개원의 통제 발상"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필수의료 지원 패키지에도 독소 조항이 숨어 있다는 게 의사들의 주장이다. 먼저 급여진료와 비급여진료를 동시에 하는 '혼합진료'를 금지한다는 조항이다. 예를 들어 환자가 근육통이나 관절통으로 치료를 받을 때 급여항목인 물리치료를 받게 되면, 추가적으로 받게 되는 도수치료 등 비급여 항목 치료를 금지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더 나은 치료를 위해 환자가 개인적으로 진료비를 부담하거나, 또는 추가적인 보험료를 내고 실손보험을 통해 보장받고자 하는 비급여 진료 부분을 제한하겠다는 것은 환자의 치료받을 권리를 박탈하고 의사의 진료권을 훼손한다는 게 의사들의 입장이다. 이런 혼합진료 금지로 인해 이익을 보는 곳은 환자가 아니라 실손보험회사뿐이라는 것이다.
또 일정 기간 임상 수련을 마친 의사에게만 진료 권한을 부여하는 '개원 면허제'를 도입하려는 것도 의사의 개원을 통제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우리나라 의료는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라 의료기관이 국민들에게 건강보험 급여를 제공해야하는 의무를 가진 당연지정제로 운영되고 있다. 2002년 헌법재판소는 '비급여 진료비를 통해 이익을 추구할 수 있으므로 당연지정제를 통한 수가의 통제가 어느 정도 정당화된다'고 판결한 바 있다. 수가를 통해 의사들이 제공하는 의사 서비스 가격을 정부가 통제하는 것은 당연지정제 때문이라는 판결이다. 그런데 당연지정제 이후 합법적으로 진행돼왔던 비급여 진료를 '혼합진료'라는 용어로 제한하면 수가를 통한 서비스가격 통제도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의료체계는 한정된 건강보험기금을 바탕으로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의료수가를 결정하고, 의료기관을 실사한 후 의료비용을 지불하는 구조다. 수가가 원가보다 낮은 까닭에 의료기관들은 만성적인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으며, 비급여 진료를 통해 적자를 메꾸고 있다.
◇"의사, 환자를 떠나면 안돼" vs "정부가 의사를 환자곁에서 내쫓은 것"
윤석열 대통령과 한덕수 총리, 그리고 보건복지부 고위 관료들은 연일 "어떤 이유로는 의사가 환자 곁을 떠나는 것은 이해될 수도 없고 용납될 수도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의사들을 비난하는 환자 등 국민들도 상당수다.
하지만 의사들은 "의사가 환자를 떠난 게 아니라 정부가 의사를 환자곁에서 내쫓은 것"이라고 항변한다. 성실하게 의학을 배우고, 환자들을 살리기 위해 땀흘리는 의사들을 자기 밥그릇만 챙기는 몰상식한 집단으로 악마화하면서 환자와 의사, 국민과 의사 간 사이를 갈라놓았다는 것이다. 한 대형 병원 의사는 "이번 의정 사태가 끝나더라도 예전처럼 온 힘을 다해 환자들을 볼 수 있을 것인가가 요즘 의사들의 솔직한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의사들을 이처럼 추락시킨 이번 사태의 단초는 서울대 의대(의료관리학) 김윤 교수가 "35세 전문의 연봉이 4억원"이라는 발언이 제공했다. 하지만 의사들은 4억원은 아주 잘나가는 의사들의 경우이며, 35세 전문의의 평균 연봉은 1억원 수준이라고 말한다. 임상 의사가 아닌 김 교수는 몇년전에는 의대 증원 반대에 앞장 서더니 갑자기 "2050년엔 의사 약 6만5000명이 부족하고 이를 충원하려면 2025년부터 2040년까지 15년간 4500명씩 늘려야 한다"고 찬성쪽으로 돌아섰으며,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하는 비례대표 위성정당 '더불어민주연합' 후보로 뽑혔다. 그는 2023년 1년동안 국가과제 연구비로만 10억4000만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의사 세계에선 "학자의 양심마저 판 사람"이라는 비난이 비등하다.
◇의정 갈등의 끝은?…보건복지부 무능한 정책 추진에 흔들리는 세계 최고의 대한민국 의료시스템
정부가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에서 물러설 뜻이 없고, 의사들을 압박만 하지 협상 문은 아예 닫은 상황에서 문제 해결의 길은 요원해 보인다. 전공의들이 돌아오지 않고 의대생 대부분은 휴학하며, 학생들을 가르칠 교수들도 학교를 떠나면 대한민국 의료체계의 붕괴는 불을 보듯 뻔하다. 정부가 압박만 한다고 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의대 증원, 전공의 자격 박탈 등을 둘러싼 무수한 법적 공방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번주가 지나면 '루비콘 강'을 건너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의대 교육은 1년간 휴무 상태로 들어가고, 전공의들이 없어 대형 병원들은 운영이 어려워진다. 필수의료 과에 지원하려는 전공의들은 사실상 전무하게 될 수도 있다. 최악의 경우 빅5 병원들이 문을 닫을지도 모른다. 중형 병원을 키운다고 해서 그동안 대형 병원들이 담당해왔던 기능과 역할을 다할 순 없다.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이 세계가 부러워하는 현 대한민국 의료시스템을 망가뜨리고, 가뜩이나 부담이 큰 건강보험료를 더 내야하는 참담한 결과를 감내할 만큼 중요한 과제인지 의문이 든다. 지금이라도 이성으로써 서로가 대화에 나서면 좋겠지만 이를 기대하기란 힘들어 보인다. 강현철기자 hcka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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