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 ELS 제도 개선 착수…이제 은행서 ELS 안 팔까?
자산관리센터 등 한정 판매 가능성…전면 금지도 고려
“수십조 신탁시장 위축” vs “소비자보호 안 할거면 금지”
(시사저널=정윤성 기자)
금융당국이 은행의 고위험 상품 판매에 대한 규제 논의에 들어갔다. 홍콩 H지수 기초 주가연계증권(ELS) 사태 여파다. 은행의 고위험 상품 판매 전면 금지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가운데, 규제 강도에 따라 은행권의 반발도 예상된다.
고위험 상품 판매 금지…DLF 때부터 지적 나와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등은 ELS 주요 판매사 검사 결과를 토대로 고위험 상품 판매 제도 개선안을 마련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소비자 보호, 영업 관행, 내부통제 시스템 점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조만간 제도 개선안을 발표할 방침이다.
쟁점은 은행의 고위험 상품 판매가 제한될지 여부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전날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서민·소상공인 신속 신용회복지원 시행 행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은행에서 고위험 상품의 판매를 금지하는 방향의 제도 개선 필요성을 언급했다.
김 위원장은 "지금 단계에서 은행 채널에서 (고위험상품) 판매 금지를 말씀드릴 단계는 아니다"면서도 "종합적으로 의견을 수렴한 다음에 제도 개선을 해야 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배상안 발표 이후 발빠르게 제도 개선에 돌입한 것을 두고 일각에선 당국이 '책임론'을 피해가려는 행보가 아니냐고 지적하고 있다.
2019년 파생결합펀드(DLF) 투자자들의 대규모 투자 손실이 일어나자 금융당국은 은행에서의 고난도 사모펀드와 신탁 상품 판매 금지 방침을 세운 바 있다. 당시 금융위는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렵고 원금의 20% 이상 손실이 발생하는 금융상품은 '고난도 금융상품'으로 정하고, 은행 판매를 제한하기로 했다.
이에 은행권은 강하게 반발했다. '40조원 규모의 신탁 시장을 잃게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결국 당국은 고난도 상품 판매를 제한하되, 홍콩H지수를 비롯해 5개 대표지수를 기초로 하는 신탁에 한해 은행의 판매를 허용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이렇게 예외적으로 판매가 허용된 ELS의 판매 잔액은 작년 말 기준 약 15조4000억원 수준이다. 손실 규모는 올해 1~2월 만기 도래한 상품 기준 1조2000억원이며, 연말까지 예상 손실액은 5조8000억원으로 추정된다.
'거점 점포' 한정 판매 유력…판매 전면 금지도 배제 안 해
현재 당국은 은행의 고위험 상품 판매 전면 금지부터 금융투자상품의 상품 구조 변경까지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개선을 검토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로선 은행 판매를 허용하되, 판매 창구와 판매자 등에 대한 조건과 기준을 강화하는 방안이 유력히 거론된다.
예를 들어 은행의 자산관리센터 등을 '거점 점포'로 보고 일부 창구에서만 ELS 등의 파생 상품을 판매하는 식이다. 모든 점포에서 판매를 허용하되, 예·적금 창구에서는 판매를 제한하는 방안도 고려 대상이다.
앞서 지난달 4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시중은행의 ELS 판매 전면 금지를 포함한 다양한 것들을 검토 중"이라면서도 "은행의 경우에도 소규모 점포까지 판매하는 게 바람직한지, 자산관리를 하는 PB 조직이 있는 은행 창구를 통해 하는 게 바람직한지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결정할 예정"이라고 언급했다.
아울러 직원의 성과평가에 고객 이익을 연계하는 방안 등도 논의중이다. 금감원은 일부 은행의 핵심성과지표(KPI)가 ELS 판매에 유리하게 설계됨에 따라 전사적인 판매 독려 분위기에 불완전판매가 발생했다고 보고 있다. 일례로 B은행에선 H지수가 하락하더라도 판매 당시 ELS 수익률을 영업점 KPI로 인정하기도 했다.
"고객 선택권 좁아지지 않도록" vs "소비자 보호 안되면 금지"
당국의 제도 개선 폭에 따라 은행권에서 강하게 반발할 가능성도 있다. ELS 판매 수익이 은행 수수료 수익의 상당 부분을 책임지기 때문이다. 또한 투자자 선택권이 좁아져 시장이 위축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각 은행 공시에 따르면, 4대 시중은행(국민·신한·하나·우리)이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홍콩 ELS 상품을 포함한 신탁 수수료로 벌어들인 이익은 2조9066억원이다. 통상 ELS 판매 수수료가 수수료 이익의 80%를 차지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은행 입장에선 포기하기 쉽지 않은 규모다.
소비자 선택권 침해 우려도 나온다. 조용병 은행연합회장은 지난 11일 기자간담회에서 "어느 상품을 파느냐, 안 파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을 고도화해야 한다"며 "은행 산업이 앞으로 자산관리 쪽으로 가야 되기 때문에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고객의 선택권이 좁아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반면 전문가들은 설명의무원칙 등 소비자 보호 시스템을 강화하는 동시에 은행의 전면 판매 금지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고령자들에게 고수익을 낼 수 있다거나, 예전엔 손실이 난 적 없다고 설명하는 등 근본적으로 금융소비자법에 명시된 판매원칙이 현장에선 지켜지지 않아 발생한 문제"라며 "가령 상품설명서 한 면을 '원금 손실이 날 수 있다'는 문장으로 크게 채우는 등 소비자 보호가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도록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은행에서 이러한 부분을 제대로 준수하면서 판매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고위험상품 판매는 전면 금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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