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모두 “세금 깎아줄게”…“서민·취약계층 복지 축소 우려”

반기웅 기자 2024. 3. 13.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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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월 17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 - 네번째, 상생의 금융, 기회의 사다리 확대’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연합뉴스

총선 표심을 노린 각종 감세 정책·공약이 쏟아지고 있다. 정부가 무더기로 감세 정책을 내놓으면 여당이 총선 공약으로 다듬어 추진하는 모양새다. 그간 ‘부자 감세’라며 정부·여당의 감세 포퓰리즘을 비판하던 야당도 감세 행렬에 가세했다. 정치권의 무분별한 감세 경쟁이 시장 불확실성을 키우고 재정을 축내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재원 대책 없이 얄팍한 표 계산으로 나온 공약들이 정부 재정에 구멍을 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투세 폐지·증권거래세 인하 등 감세 봇물

올들어 정부·여당이 발표한 감세 정책들은 금융 고소득자의 세부담을 낮추는데 초점이 맞춰졌다.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가 대표적이다.

금투세는 주식이나 채권, 펀드, 파생상품 등 투자로 얻은 수익에 매기는 세금이다. 당초 2023년부터 시행할 예정이었지만 2년 유예돼 2025년으로 시행이 미뤄졌고, 지난 1월 윤석열 대통령이 폐지를 공식화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후속 조치로 금투세 폐지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금투세 폐지로 인한 세수 감소분은 연간 1조5000억원에 달한다. 앞서 국회 예산정책처는 금융투자소득세가 2025년부터 시행될 경우 2027년까지 3년간 세수가 4조328억원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 바 있다.

금투세 도입을 전제로 낮추기로 했던 증권거래세는 금투세 없이도 내리기로 했다. 증권거래세 인하로 5년간 세수는 10조원 이상 감소한다. 지난달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정부와 여당은 금투세를 폐지하더라도 증권거래세 인하를 예정대로 시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여당과 야당의 감세 정책·공약
대통령 ‘입’에서 내려오는 감세안…“조세법률주의 훼손”

여기에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세제혜택 확대로 5년간 2681억원, 연구개발(R&D) 투자 세액공제 확대·임시투자세액공제 연장으로 1조6000억원의 세수 감소가 예상된다. 이외에 신용카드 소득공제 중 전통시장 사용분 공제율 확대(-1960억원), 노후자동차 교체 시 개별소비세 감면(-1180억원)을 비롯해 비수도권 준공 후 미분양 주택 과세 특례와 소상공인 부가가치세 기준 상향 등 크고 작은 감세안을 감안하면 재정수입은 더욱 쪼그라들 전망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8일 은평구 한 헬스장에서 직장인 정책간담회를 하고 있다. 2024.2.28 [사진공동취재단] 연합뉴스

세수 부족과 별개로 세제 정책이 ‘대통령의 입’에서 시작되는 톱다운(하향식) 방식으로 이뤄진다는 점도 논란거리다. 윤석열 대통령이 민생토론회를 통해 큰 틀의 감세안을 공개하면 관계 부처가 세부 방안을 마련하고 여당은 이를 받아 법안을 발의하는 구조다. 형평성 논란을 부른 기업 출산지원금 전액 비과세 정책도 다르지 않다.

유호림 강남대 교수(세무학)는 “대통령 말 한마디로 시행 예정이었던 금투세가 폐기될 처지에 놓였다”며 “시장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무너뜨린 것 뿐만 아니라 법치 국가의 근간인 조세법률주의마저 흔들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도 ‘감세’…“가상자산 수익 5000원만까지 공제”

정부·여당의 행보를 두고 부자 감세라며 날을 세웠던 더불어민주당도 ‘서민 감세’를 내세워 세금 깎기 경쟁에 나섰다. 지난달 28일 민주당은 민주당은 근로소득세액공제 확대를 골자로 한 ‘4·10 총선 직장인 공약’을 발표했다. 소득세 기본공제를 가족 구성원 1인당 연 150만원에서 연 200만원으로 올리고 본인의 체력단련비와 통신비, 자녀의 예체능 교육비에 세제 혜택을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눈에 띄는 공약은 가상자산 공제 확대다. 민주당은 지난달 21일 ‘디지털 자산 공약’을 내고 가상자산 매매수익에 대한 공제 한도를 현행 250만원에서 5000만원까지 늘리겠다고 공약했다. 최근 비트코인 가격이 오름세를 보이는 등 가상자산 시장이 활기를 띠자 감세 카드를 꺼낸 것으로 보인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경쟁 구도 속에서는 한쪽에서 감세 공약을 내놓으면 다른 한쪽에서도 가만 있을 수 없다”며 “결국 ‘나쁜 균형’을 이루면서 세수가 감소하고 정부의 역할이 줄어 서민·취약계층을 위한 복지가 축소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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