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현장 혼란 지속…전국 의대 교수 집단행동 '초읽기'(종합)
전공의 복귀 요원… 병동 폐쇄·축소에 의료 공백 불가피
(전국종합=연합뉴스) 전공의 집단 이탈에 따른 의료 현장 혼란이 이어지면서 일선 병원 의료진의 피로도와 환자 불편이 더욱 커지고 있다.
상급종합병원에 긴급 투입된 군의관과 공중보건의사(공보의)들이 본격적인 진료에 나섰으나 의료 공백 해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대 교수들은 집단 사직 움직임을 보이며 의대 증원 '1년 유예'를 주장했지만, 정부는 이런 제안을 일축해 강대강 대치는 지속되고 있다.
파견 공보의 본격 진료 시작…효과는 여전히 의문
13일 정부와 의료계 등에 따르면 전국 상급종합병원 20곳에 파견된 군의관 20명과 공보의 138명(일반의 92명 포함)은 이날부터 본격적인 진료에 들어갔다.
이들은 이틀 전 각 병원에 파견돼 병원 근무에 필요한 교육을 받은 뒤 이날 진료에 투입됐다.
전남대학교병원 본원과 분원에 파견된 군의관·공보의 16명은 성형외과·소아청소년과·마취통증의학과 등에 배치돼 업무를 보고 있다.
대전 충남대병원과 천안 단국대병원에서도 각각 8명과 6명의 군의관·공보의가 교육을 마치고 진료를 시작했다.
경남에서는 창원 등 15개 시·군에서 공보의 17명이 차출돼 이 중 7명은 경상국립대병원에, 나머지 10명은 다른 지역에 배치됐다.
그러나 파견 의사 상당수가 비필수과 전문의이거나 일반의사여서 응급·중증 환자를 진료하는 3차 병원에서는 실효성이 크지 않을 거란 전망이 나온다.
충북도의 경우 전날부터 군의관·공보의 총 9명을 충북대병원에 투입해 의료 공백을 채우고 있으나 병상 가동률은 40%대에서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
앞으로 공보의 파견 인원이 더 늘어날 가능성도 커서 이들 인력이 기존 근무지를 비운 사이 또 다른 의료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의 시선도 있다.
대부분 의사 1명이 근무하는 전남지역 보건지소에서는 공보의 차출에 따른 진료 중단으로 주민 불편이 이어지고 있다.
공보의 7명 중 2명을 서울 대형 병원으로 파견한 산청군보건의료원은 전문의를 일손이 부족한 진료과에 임시 배치하고 순회 진료도 5명이 아닌 3명으로 줄였다.
전공의 집단 사직 장기화…병동 폐쇄·축소 잇따라
의대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3주 넘게 진료실로 복귀하지 않으면서 병동 폐쇄와 축소 등의 부작용도 커지고 있다.
원광대병원은 전날 기준 5층 응급 및 간호간병, 9층 병동 일부를 일시적으로 운영 중단하기로 했다. 지난주부터 운영을 중단한 7층 서쪽 병동까지 합치면 현재까지 4개 병동의 가동을 중단한 셈이다.
원광대병원은 전공의 126명 중 90여명이 사직서를 제출하고 병원을 이탈한 상태다.
원광대병원 관계자는 "병상 가동률이 떨어지면서 병동 일부를 통합해 운영하기로 했다"며 "이번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경영 여건은 더 열악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충남 천안 순천향대천안병원도 환자 감소에 따라 전날부터 21개 병동 중 호흡기내과 병동 1곳을 폐쇄했다.
직원들에게는 연차 휴가를 100% 소진하고 비용 최소화를 위해 출장과 교육을 자제하라는 지시가 내려오기도 했다.
울산대병원 역시 전공의 이탈에 따른 경영 악화로 지난 8일부터 비상 경영 체제에 돌입해 병동 축소와 무급휴가 도입 등을 시행하고 있다.
제주대병원은 내과 중환자실 운영 병상수를 20개에서 12개(내과 8·응급 4)로 축소해 운영 중이다.
병상 가동률이 10%대까지 떨어진 간호·간병서비스통합병동은 지난 4일부터 2개에서 1개로 통폐합했다.
상급종합병원이 수용하지 못한 응급 환자들이 2차 병원에 해당하는 인근 종합병원으로 이송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시흥 한 종합병원 관계자는 "최근 인근 상급종합병원들로부터 응급 환자 이송 의뢰가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다"며 "병원 내 진료협력센터에서는 병원 간 이송 의뢰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들이 격무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의대 교수 집단 사직 움직임…강대강 대치는 계속
의대 교수들은 '제자'인 전공의들을 지키기 위한 해법을 모색하면서 정부와의 강대강 대치를 타개하고자 집단행동을 시사하고 있다.
충남대 의대·충남대병원·세종충남대병원 교수 373명으로 구성된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는 전날 오후 200여명이 온오프라인으로 모여 긴급 임시총회를 열고 개인 의지에 따라 사직을 결정하기로 했다.
전북대 의대와 전북대병원 교수들도 전날 긴급교수회의를 열고 비대위원장과 비대위원을 선출했다.
지난 9∼10일 전북대 의대 및 전북대병원 교수 20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 188명 중 82.4%인 155명이 '정부와 대학 측이 즉각적이고 효과적으로 조치하지 않을 경우 사직서를 제출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충북대학교의과대학·충북대학교병원 교수 160여명이 모인 비대위는 이날 오후 5시 30분께 충북대의대 1층 대강의실에서 긴급 임시총회를 연다.
비대위 관계자는 "상징적인 서울대 의대에서 만장일치로 사직 의사를 밝혔기 때문에 연대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날 열리는 총회에선 충북의대생 집단 유급 문제도 거론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충북대 의예과 학생 90여명은 개강일이던 지난 4일부터 수업에 나오지 않고 있다.
울산대병원 로비 등 곳곳에는 '환자분들과 직원분들께 드리는 글'이라는 제목으로 울산대병원 교수협 비대위 명의의 대자보가 붙었다.
대자보에는 "지역 의료를 살리겠다는 정부의 일방적인 의료개혁은 전공의와 교수의 이탈을 낳으며 오히려 지역 의료의 위기를 앞당기고 있다"며 "지역 의료를 파괴하는 국가의 무책임한 포퓰리즘 의료 정책에 절대 부역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정부는 최근 의대 증원 문제를 1년 뒤 결정하자는 서울대 의대 교수들 주장에 대해 거부 입장을 밝히는 등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장상윤 사회수석은 이날 SBS라디오에 출연해 "(증원 결정을) 1년 연기하자는 것은 의료 개혁을 1년 늦추자는 것이다. 그건 생각할 대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는 정부에 사태 해결을 촉구하며 집단사직을 결의한 서울대 의대 교수들이 의대 증원을 유예하고 국민대표와 전공의가 참여하는 대화협의체를 구성하자고 제안한 것을 일축한 것이다.
한편 정부가 의대생들에게 제시한 '대화 마지노선'이 이날로 만료된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동맹휴학'에 나선 의대생의 복귀를 위해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와 대화를 제안하고, 이날 오후 6시까지 답신을 해 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교육부는 "의대협이 대화에 응하는 경우 의과대학 학사 운영 정상화, 학생 학습권 보호에 대해 학생들과 함께 논의할 것"이라는 방침이다.
(강태현 김상연 김솔 나보배 박성제 박정헌 박주영 백나용 장지현 정회성 천경환 황수빈 기자)
goodluc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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