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유혹 뿌리치고 대학에 남은 까닭은?
”탐구심 발휘, 일과 삶 균형, 미래 세대와 교류가 보람”
지난해 11월 경력 연구 전문가인 애슐리 루바(Ashley Ruba) 미국 워싱턴대 교수가 자신의 X(옛 트위터)에 학문적 업적이 뛰어난 종신 교수 스무 명이 학계를 떠나 산업계로 자리를 옮긴 이유를 올렸다. 루바 교수에 따르면 이들은 평소 교수로 일하는 동안 한 일에 비해 감정적, 물질적 보상이 부족했고 결과적으로 정체성과 자신감을 잃었다. 또 수많은 재능 있는 사람이 결함이 있는 시스템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으며 성장할 수 없는 환경에서 살아왔다고 지적했다.
루바 교수는 스무 명이 각자 전한 이야기를 올렸는데, 1만2000여 명이 ‘좋아요’를 누르고 1000여 명이 퍼다나를 정도로 과학자 사회에서 호응을 얻었다. 실제로 과학계에선 이공계 인재들이 박사 학위를 받고 관련 분야 교수가 된 뒤에도 학교를 떠나 산업체로 가는 경우가 늘고 있다.
국제 학술지 네이처는 12일(현지 시간) 지난해 루바 교수의 이야기가 과학자 사회에서 반향을 얻은 것을 계기로 그와는 반대로 학계에 계속 남아 연구 활동을 펼치는 11명의 학자들을 만나 왜 학계에 남아있는지 이유를 물은 내용을 소개했다.
이번 인터뷰에 응한 11명의 과학자들은 대부분 “학계에서 연구하는 것이 흥미롭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것, 제자를 양성하는 일에서 보람을 느깐다”며 “이공계를 공부하는 학생들이나 석·박사 연구원들이 계속해서 꿈을 계속해서 실현해 나가기를 권한다”고 말했다.
대릴 리(Daryl Lee) 스위스 로잔연방공대(EPFL) 전자및마이크로기술부 교수는 3D 프린팅 기술로 약물이나 생체 조직을 제작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리 교수는 “연구를 하다보면 학계가 주목하고 있는 분야와 일치할 수도, 일치하지 않는 연구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연구를 계속하는 이유에 대해 “남들과 다른 관점에서 문제에 접근하고 풀이 과정에서 무엇인가 배우는 일이 즐겁다”고 말했다.
데빈 슈웨프(Devin Schweppe) 시애틀 워싱턴대 유전체과학과 교수는 연구자의 이점으로 ‘아이디어를 실현한다는 점’을 꼽았다. 슈웨프 교수는 “다른 사람들에게 과학적인 아이디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며 “사람들과 아이디어를 공유해 더 나은 결과를 찾는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유 종(Yu Zhong) 코넬대 재료공학과 교수는 “퍼즐을 맞추는 것처럼 지금까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답을 열정적으로 찾을 수 있다”며 “일반 회사보다 유연하게 근무 일정을 짤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엘라나 퍼티그(Elana Fertig) 존스홉킨스대 의대 종양학과 교수는 산업계에 갔다가 다시 학계에 돌아오기 위해 연봉을 절반 이상 삭감한 이력을 소개했다. 퍼티그 교수는 “하지만 수학과 생명과학, 의학 등 다양한 학자들과 교류하며 연구하는 것은 내 성공뿐 아니라 행복에 매우 중요하다”며 “연봉을 깎아 돌아왔지만 ‘내 인생 최고의 결정’이며 후회한 적 없다”고 밝혔다.
인터뷰에 참여한 과학자들은 제자를 키우고 젊은 과학자들과 함께 연구하는 일에서 특히 보람을 느낀다고 공통적으로 답했다.
리 교수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멘토링하는 것이 좋다”며 “이들이 이 분야 개념을 배우고 과학자로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 보람 있다”고 말했다.
한국 과학자 가운데 유일하게 네이처와 인터뷰를 한 이명재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는 “학생들과 관계를 맺고 멘토링하는 일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며 “미래 세대를 이끌어 줄 뿐 아니라, 이들의 도움으로 새로운 관점과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일에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조너선 무어(Jonathan Moore) 캐나다 사이먼프레이저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젊은 신진 과학자들과 함께 일할 수 있어서 즐겁다”며 “다양한 생각과 성품을 가진 사람들과 일하며, 그들이 어떻게 발전할 수 있는지 도와주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카트리나 클로(Katrina Claw) 콜로라도대 의대 생물의학및 정보학과 교수는 “약물유전체의 문화적, 윤리적, 사회적 영향에 대해서 아메리카 원주민 공동체와 공동으로 연구하고 있다”며 “학계에 있다는 것이 특권이라는 사실을 절대 잊지 않는다”고 말했다.
키아라 주르졸로(Chiara Zurzolo) 프랑스 파리 파스퇴르연구소 교수는 암이나 신경퇴행성 질환자의 세포가 어떻게 소통하고 작용하는지 연구하는 학자다. 주르졸로 교수는 “학계에서 연구한다는 것은 미지의 영역을 자유롭게 탐험하는 것을 뜻한다”며 “산업계에서는 좁은 범위에서 특정 목표를 향해 달리지만 학계에서는 호기심이 이끄는 대로 따를 수 있다”고 말했다. 주르졸로 교수는 “특히 차세대 과학자들과 아이디어를 공유하며 답을 찾는 것은 즐거운 일”이라며 “학계에 남아 있으면 연구에 대한 자율성과 과학적 호기심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고 말했다.
안쿠르 싱(Ankur Singh) 조지아공대 면역치료및세포공학연구실 교수는 연구자가 이런 보람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학계에 오래동안 남기 위해 “삶과 일의 균형을 유지하고 우선순위에 집중하며 신중한 결정을 내리라”고 조언했다. 싱 교수는 “일주일에 3~5일은 운동을 하고 한 달에 한 번 이상 하프 마라톤을 띈다”며 “ 학계가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탐색하면 결국 연구에서도 업적을 낼 수 있다”고 말했다.
네이처는 이공계 우수한 인재들이 다른 분야로 유출되지 않게 하려면 과학자로서 호기심과 탐구욕을 채울 수 있고 일과 삶에서의 균형을 유지할 환경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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