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마이크론은 中에도 파는데”… 삼성전자·SK하이닉스, 노후 장비 처리 못하고 정부 눈치만

美 인텔·마이크론, 日 키옥시아는 노후 장비 中에 대규모 매각
삼성전자, SK하이닉스는 수천억원대 장비 창고에 방치
미·중 갈등에 한국 반도체 기업만 피해

중국 시안에 있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팹)./삼성전자 제공

미국의 대중 반도체 규제가 시작된 이후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중국 공장의 노후 반도체 장비 처리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가운데 미국·일본 반도체 회사들은 자유롭게 노후 장비를 매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기업들은 수만평에 달하는 부지에 수천억원대 장비를 쌓아놓고 미국·한국 정부의 눈치만 보고 있는 상황이다.

13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미국 마이크론, 인텔을 비롯해 일본 키옥시아 등은 노후 장비를 중국 기업을 포함한 다양한 국가의 기업에 매각하고 있다. 반도체장비 업계 관계자는 “미국, 일본의 대형 반도체 기업들은 미국 정부가 정한 기술 규제에 걸리지 않는 구공정 장비들을 제3자를 통해 중국, 러시아 등지에 매각하고 있다”며 “이에 반해 삼성전자, SK하이닉스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장비들도 매각하지 않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매년 수십조원 단위의 설비투자를 단행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반도체 생산라인을 첨단 장비로 교체한 뒤 낡은 장비는 중개업체 등을 통해 외부 기업에 판매해 왔다. 해당 장비들은 중고 반도체 장비 시장으로 흘러 들어가 재활용되는데, 주요 수요처는 대부분 중국이다. 중국 기업들은 한국 기업의 구공정 장비를 사들여 내수 시장에 쓸 저사양 반도체 생산에 사용한다.

하지만 미 상무부가 2022년 10월 중국 기업에 첨단 반도체 장비를 수출하는 것을 금지한 이후 이 같은 매각 작업이 완전히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 정부의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18나노 공정 이하 D램, 14나노 이하 시스템 반도체 생산 장비·기술은 중국에 수출할 수 없다.

문제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미 정부 규제에 해당하지 않는 노후 장비들도 매각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미국 정부의 규제 대상은 첨단 반도체 장비로 한정돼 있지만, 국내 기업에 대해 더 엄중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다.

삼성전자에 정통한 관계자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의 메모리 반도체 라인에서 사용되던 장비·부품을 신공정에 맞게 교체하고, 소프트웨어 개선 등으로 옵션을 추가하면 기존 수명보다 더 오래 사용할 수 있다”며 “D램이나 시스템 반도체 장비도 구공정 장비지만 낸드플래시 공정 전환에 재활용하는 형태의 개조도 가능하기 때문에 미국 정부가 그 점을 우려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중국 장쑤성 우시에 있는 SK하이닉스의 D램 공장 내부./SK하이닉스 제공

인텔이나 마이크론, 키옥시아 등이 제약 없이 구공정 장비를 처분하고 있으며, 중개자를 통해 해당 장비들이 중국 시장으로 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반도체 기업들만 미·중 반도체 분쟁에서 불이익을 받고 있다는 불만도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측은 노후 장비의 매각 작업이 중지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이에 대한 이유에 대해서는 언급을 자제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궁여지책으로 노후 장비를 재활용해 설비투자에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지만, 온전한 해결책이 되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장비 재활용의 경우 일부 공통적으로 사용되는 장비는 부품 교체나 업그레이드 등을 통해 재활용이 가능하지만, 전체 설비투자 측면에서는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며 “최선단 공정에서 경쟁력을 갖추려면 노후 장비 매각과 새로운 설비 도입이 원활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