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D-28’, “참정권 보장해달라”며 법원 다시 찾은 발달장애인

김혜리 기자 2024. 3. 13.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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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이 투표에 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그림 투표용지를 도입하고 알기 쉬운 선거공보물을 제공할 것을 요구하며 정부를 상대로 차별구제 소송을 제기한 발달장애인 임종운씨(왼쪽)와 박경인씨(오른쪽). 가운데는 장애인인권단체 ‘피플퍼스트 서울센터’에서 만든 국회의원 선거 그림 투표용지 시안. 경향신문 자료사진

“제 일이니까 직접 보고,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법원에 나온 거에요.”

13일 오전 서울고등법원 305호. 박경인씨는 종전에 없었던 차별 구제조치를 청구하기 위해 법원에 다시 발을 들였다. 그는 발달장애인의 투표 참여 방식을 개선해달라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당사자 중 한 명이다. 구체적으로는 “정당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이해하기 쉬운 형태의 선거공보와 그림 투표용지를 제공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박씨의 요구는 앞서 한 차례 좌절됐다. 지난해 8월 1심 법원은 박씨 등 원고들의 소를 각하했다. 각하란 소송이 법적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경우 법원이 원고의 주장 자체를 판단하지 않고 재판 절차를 끝내는 것이다. 당시 재판부는 “공직선거법 개정이 선행돼야 한다”며 법원의 심리 대상이 아니라고 봤다. 박씨 등은 이에 불복해 항소한 상태다.

이날 서울고법 민사1-3부(재판장 이은혜) 심리로 열린 항소심 첫 변론기일에선 이해하기 쉬운 선거공보물이 무엇인지가 주된 쟁점이 됐다. 원고 대리인단은 “발달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동등한 수준으로 선거 관련 정보에 접근하고 투표용지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피고인 국가 측 변호인은 “‘이해하기 쉬운 형태’라는 표현이 불명확해 청구 내용이 부적합하다”며 맞섰다.

양측 주장을 전부 들은 재판부는 원고 측에 “청구 취지를 좀 더 특정해달라”고 요구했다. ‘이해하기 쉬운 형태’라는 표현만으로는 어느 정도까지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가 명확하지 않으므로 ‘문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와 같은 수준의 표현으로 청구 내용을 구체적으로 보완해달라는 취지였다. 원고 측은 “검토해보겠다”고 했다.

또 재판부는 이번 사건이 국내에서 전례가 없던 차별 구제조치를 다루는 것인 만큼 해외사례를 참고해보자고도 했다. 재판부는 양측에 “외국에 발달장애인을 위한 선거 보조기구나 그림 투표용지 등이 있는지, 실제로 공직선거에 제공되고 있는 사례가 있는지 찾고 자료를 제출해달라”고 했다.

박씨 등은 ‘평등하게 투표할 권리를 찾고 싶다’며 2022년 1월 소송을 제기했지만 이번 총선에서도 투표에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다음 기일은 총선이 끝난 이후인 6월12일 오후 2시에 열린다.


☞ “공약집도, 용지도 어렵지만 투표할게요”···생애 첫 투표 앞둔 발달장애인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403121823001

김혜리 기자 ha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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