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 일타’ 당 타이손 vs ‘감성 수업’ 시프 vs ‘촌철살인’ 바부제 [거장의 마스터클래스]
‘영감 충전’ 시프·‘팩트 폭격’ 바부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거장 앞에서 피아노를 칠 수 있고 바로 옆에서 연주를 듣는다는 것, 그것 자체만으로도 정말 많은 배움이 돼요.” (피아니스트 김송현, 정지원)
‘거장의 비밀’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시간이 있다. 유튜브나 공연장에서 만나던 거장의 손끝에 숨은 수 십년의 내공을 ‘공짜’로 마주하는 시간. 그들의 ‘마스터클래스’다.
마스터클래스는 한 사람당 약 한 시간, 지극히 짧은 시간이지만, 이 경험은 하나의 곡을 완벽하게 숙지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마스터클래스를 진행하는 ‘선생님’들에게도 특별한 시간이다.
장 에플람 바부제는 “마스터클래스는 짧은 시간 동안 빠르게 그 사람의 음악과 연주에 대한 기대나 자질을 진단해야 한다”며 “가르치는 사람이 말하는 것을 당사자가 얼마나 빨리 수용하는 지에 따라 큰 변화와 성과를 짧은 시간 안에 끌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마스터클래스에선 ‘그날의 스승’이 걸어온 음악의 길을 엿볼 수 있다. 그의 성향과 음악관, 연주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시간이 된다. 마스터클래스는 사람 그 자체인 것이다.
최근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들은 한국의 차세대 피아노 연주자들과 함께 마스터클래스를 진행하는 추세다. 동양인 최초 쇼팽 콩쿠르 우승자인 당 타이손, 지휘자 정명훈이 ‘이상적인 피아니스트’로 꼽는 안드라스 시프, ‘라벨 스페셜리스트’인 장 에플람 바부제는 뛰어난 연주 실력 뿐 아니라 후학을 위한 마스터클래스로도 추앙을 받은 거장들이다. 세 피아니스트는 각자의 성향만큼 수업 방식도 완전히 달랐다.
당 타이손은 ‘쇼팽 일타강사’라 할 만하다. 쇼팽 콩쿠르 우승자이자 2005년부터 쇼팽 국제 음악 콩쿠르의 심사위원을 맡고 있다. 그러니 쇼팽 콩쿠르를 꿈꾼다면 놓치면 안되는 수업이다. 당 타이손의 마스터 클래스 참가자들도 대체로 쇼팽 곡을 들고 나온다.
그는 음악의 큰 그림을 그리고 그 안으로 들어가 세세한 조언을 건네는 선생님이다. 당 타이손이 마스터클래스에서 강조하는 것은 네 가지. ▷작곡가에 대한 온전한 이해 ▷연주곡에 대한 주제의식 ▷ 해석의 방향성 ▷음악의 구조화에 대한 중요성 등이다.
한국에서 마스터클래스를 진행했을 당시 당 타이손은 “의도된 계획을 가지고 음악을 구조화하고, 또 넓은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는 점을 특히 강조했다. 이렇게 큰 그림을 그린 뒤 감정 표현과 테크닉, 음색, 템포를 다듬어 나가야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쇼팽 권위자’인 만큼 당 타이손은 쇼팽 곡만의 염두할 요소들을 조목조목 집어준다. 그는 “쇼팽은 육체적으로 큰 사람이 아니고 귀족적인 우아한 풍모를 가지고 있다”며 “사람이나 사물에 대한 반응을 할 때 늘 ‘노블 매너’를 보여주고 그게 음악에도 담겨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귀띔했다.
이와 함께 피아노 연주 시 감정 조절의 중요성에 대한 부분도 강조한다. 그는 “‘쇼팽의 발라드 2번’을 연주할 땐 절제된 감정을 끝까지 끌고 가다 터뜨리는 것이 청중에게 더 좋게 들린다”고 말했다. 시도 때도 없이 감정을 남발하는 것보다 응축된 감정을 한 번에 꺼내는 것이 더 큰 감동을 준다는 설명이다.
때때로 디테일한 설명이 나오나 당 타이손의 마스터클래스는 사실 ‘음악의 본질’에 대한 접근, 음악가로서 갖춰야 하는 기본 소양에 대한 설명이 많다. 모든 악기를 다루는 연주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조언이다.
그는 “연습할 때에도 양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퀄리티 있는 연습을 하고, 3시간을 연습하더라도 창조적인 연습을 해야 한다”며 “무조건 반복이 아닌 근본적인 문제를 생각하고 분석하면 훨씬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조금 더 옛날이야기를 하는 느낌으로”, “여긴 좀 음침하고 위험하게”
피아노 앞의 온화하고 여유로운 표정 만큼 안드라스 시프의 마스터클래스는 한 편의 서정시 같다. 그의 수업엔 살랑거리는 붐바람이 불고, 그 위로 작은 나비가 날아다니며 꽃이 핀다. 비전공자가 듣기엔 지극히 낭만적이고 추상적이다. 하지만 연주자들은 다르다. 시프를 만난 연주자들은 한결같이 “영감을 준 시간”이라고 입을 모은다.
시프는 한국에 올 때마다 마스터클래스를 열고 전도유망한 연주자들과 깊은 인연을 맺는다. 2008년엔 피아니스트 김선욱, 2011년엔 조성진이 그의 마스터클래스에 참여했고, 가장 최근 연 2022년 마스터클래스에선 피아니스트 신창용, 문지영이 함께 했다. 문지영은 이날의 인연을 계기로 시프의 제자가 돼 지난해 열었던 그의 콘서트에서 통역을 맡기도 했다.
자신의 연주회 역시 3~4시간 동안 진행하는 ‘강철 체력’답게 거장의 마스터 클래스는 충분한 시간을 들여 진행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연주 특성을 간파한 뒤 세세한 조언을 이어간다. 연주 방법과 기교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그 소리가 어떻게 전달돼야 하는 지 일러준다. 특히 곡에 대한 이해와 악보의 분석, 연주를 통해 감정을 끌어내고 입체적인 색채를 입히는 것을 ‘족집게 강사’처럼 이어간다. 무엇보다 기술적인 부분과 감성적인 부분을 촘촘히 엮어가며 진행하는 수업이 인상적이다.
흥미로운 것은 시프가 “봄에 꽃이 피어나는 장면처럼 쳐보라”고 하면 참가자들은 찰떡같이 알아듣고 음색과 감정을 바꿔간다는 점이다. 음악가들의 언어가 힘을 발하는 순간을 지켜볼 수 있다.
당시 마스터클래스에 참여했덤 문지영은 “해주시는 모든 말씀이 큰 영감을 줬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른 분께 수업을 듣는 기회가 있다는 것이 너무나 감사하다”고 말했고, 신창용은 “영감과 음악적 상상력을 키울 수 있는 포인트를 말씀해주셔서 앞으로도 더 재밌게 연주할 수 있을 거 같다”고 말했다.
장 에플람 바부제의 마스터클래스를 마주하면 한 편의 시트콤을 보는 것처럼 흥미로워 눈을 뗄 수가 없다. 수업 내내 바부제는 명배우가 된다. 음울하면서도 아름다운 프랑스의 낭만을 품은 ‘라벨 스페셜리스트’의 또 다른 얼굴을 마주하는 시간이다.
바부제는 1986년 독일 ‘국제 베토벤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1995년 30대에 접어들어 ‘지휘 거장’ 게오르그 솔티(1912~1997)에게 발탁돼 파리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이후 프랑스에서 가장 바쁜 피아니스트가 됐다. 현존 최고의 ‘라벨 스페셜리스트’인 그는 미국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의 심사위원으로서 임윤찬을 발굴하기도 했다.
바부제의 마스터클래스는 ‘촌철살인’의 향연이자 ‘팩트 폭격’의 아찔한 시간이다. 바부제가 음악가로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와 방향성을 볼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바부제는 악보에 적힌 모든 악상 기호를 단 하나도 놓치지 않기에 학생들의 실수와 그로 인해 달라지는 음악을 경계한다. 그는 “피아니스트는 악보에 담긴 것을 오케스트라처럼 대하는 지휘자가 돼야 한다”고 말한다. 피아노를 대할 때 때로는 바이올린처럼, 때로는 오보에처럼 들리도록 지휘자처럼 소리를 조율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바부제는 “음악을 많이 들을수록 귀는 훈련되고 그것이 연주에 영향을 준다”며 “많이 들어야 성부의 진가, 화성의 긴장감, 음악적 감정을 알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작곡가의 삶과 작품이 쓰였던 배경, 작품에 담긴 리듬과 주제의 구조에 대해 알아야 한다. 이러한 미세한 디테일들은 악보에 쓰여있다. 더 많은 정보를 알수록 연주로 날아다닐 수 있고, 해석하는 작품에 대한 비전이 명료해진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한 명의 작곡가에 대해 완전히 알고, 무엇이 그에게 영감을 주었는지 더 깊이 중심으로 들어가 파악해야 한다”며 “그제서야 나의 연주에 대한 확신이 생기고, 그러면 자유로울 수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 연 바부제의 마스터클래스에 참가한 현지윤(34) 씨는 “바부제 선생님은 악보에 있는 것을 충실하고 꼼꼼하게, 하나라도 그냥 지나치지 않으려고 애쓰는 연주자”라며 “고전에서 낭만에 이르는 다양한 레퍼토리를 연주하며 자신만의 목소리로 음악을 들려주는 분이다. 이번 수업에서도 답답했던 부분들이 많이 해소됐다”고 말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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