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발표] "기대 이상" ABS, 투구 추적 99.9% 성공…현장 반발한 피치클락은 경기 23분 감소, 효과 확실하네

신원철 기자 2024. 3. 13.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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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NC파크에 설치된 피치클락 카운트. 9일 열린 KIA 타이거즈와 NC 다이노스의 시범경기에서는 모두 13번의 피치클락 위반 경고가 나왔다. 그런데 정작 투수들의 위반은 단 2번에 불과했다. ⓒ NC 다이노스
▲ 롯데 나균안이 투구를 준비하고 있다. 사직구장 외야에 설치된 피치클락이 보인다. ⓒ롯데 자이언츠

[스포티비뉴스=신원철 기자] KBO는 이번 시즌을 준비하면서 큰 변화를 예고했다. '로봇심판' ABS(자동 투구 판정 시스템)를 1군급 리그에서는 세계 최초로 도입했고, 메이저리그가 먼저 시도한 피치클락·시프트 제한·베이스 크기 확대 규칙도 가져왔다. 다만 이 변화들은 큰 반발부터 마주해야 했다. 당장 익숙하지 않은 규칙으로 경기해야 하는 현장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ABS는 아직까지 전면 실행된 적이 없는 방식이라 팬들도 걱정의 눈초리를 보냈다.

그런데 시범경기 단 나흘 만에 긍정적인 신호가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ABS는 도입 첫 날 곧바로 여론의 환영을 받았다. 기술적인 문제도 지금까지는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피치클락은 여전히 찬반 의견이 맞서고 있지만 메이저리그와 마찬가지로 경기 시간 단축이라는 효과는 확실했다.

KBO는 13일 ABS와 피치클락 등 새 규칙 도입 효과를 소개했다. KBO는 보도자료에서 "공정하고 일관된 볼-스트라이크 판정을 통해 지속적인 심판 판정 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도입한 ABS는 12일까지 시범경기 19경기 동안 99.9%의 투구 추적 성공률을 보였다"고 밝혔다. 지난해 퓨처스리그에서 시범 도입했을 때는 99.8%를 추적했고, 0.02% 누락의 원인으로 1군 경기장보다 열악한 환경을 이유로 꼽았는데 실제로 100%에 더 가까워졌다.

KBO에 따르면 투구 추적이 실패한 사례는 중계 와이어 카메라가 이동 중 추적 범위를 침범해 투구 추적이 실패한 경우 등이 있었다. 시즌 중 급격한 날씨 변화, 이물질 난입 등 기타 불가항력적인 사유로 100% 트래킹 추적 성공이 어려운 점을 고려하여 추적 실패 시 대응 매뉴얼을 보다 철저히 준비하고 지속적으로 심판과 ABS 운영요원 교육을 통해 추적 실패에도 경기 진행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모든 준비를 다할 예정이다.

KBO는 "일관적인 ABS의 도입으로 선수와 팬들이 판정 이슈 등 다른 요소가 아닌 경기력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 KBO가 야심차게 도입을 추진한 자동 투구 판정 시스템 ABS. ⓒ KBO

KBO는 올해부터 '앞뒤', '상하', '좌우' 3가지 기준을 적용한 ABS를 도입했다. 스프링캠프 기간 10개 구단 캠프를 순회하며 설명회를 열었고, 시범경기를 앞둔 지난 7일에는 미디어 대상 설명회를 개최하며 새 기술 홍보에 나섰다. KBO가 설정한 ABS의 스트라이크 판단 기준은 다음과 같다.

①앞뒤 - 홈플레이트 중간면과 끝면 두 곳에서 공이 상하로 라인을 통과해야 스트라이크다. 중간면은 ②의 상하기준이 적용되고, 끝면은 중력을 고려해 이보다 1.5㎝ 낮은 쪽을 기준으로 한다. 규칙상의 스트라이크존은 홈플레이트 위 가상의 오각 기둥 일부만 스쳐도 스트라이크 판정을 내리도록 돼 있다. 그러나 KBO ABS는 홈플레이트 끝면에 또 하나의 기준을 설정해 '원바운드 아리랑 볼'이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는 일을 막았다.

②상하 - 선수들의 신장을 전수조사해 상단은 지면으로부터 신장의 56.35%, 하단은 지면으로부터 신장의 27.64% 지점을 '보더라인'으로 정했다. 만약 키가 180㎝인 타자라면 지면으로부터 101.43㎝ 높이부터 49.75㎝ 높이가 스트라이크존 상하단선이 된다. 타격 자세나 스파이크 높이는 고려하지 않는 이유는 이를 악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높이 기준은 메이저리그의 사례를 참고했다.

③좌우 - 홈플레이트는 좌우 폭이 43.18㎝지만 KBO ABS는 이보다 양쪽으로 2㎝씩 넓은 47.18㎝를 스트라이크존으로 본다. 홈플레이트 상공을 지나는 공만 스트라이크존으로 판정하면 투수들이 너무 힘들어진다는 우려가 있었다. 홈플레이트 중간면이 판정 기준이며, 공 일부분이 스치기만 해도 스트라이크다.

KBO의 강력한 의지에도, 여전히 현장은 물론이고 팬들에도 낯선 방식이라 베일을 벗기 전까지는 우려하는 여론이 제법 많았다. 그런데 막상 경기를 보면 ABS가 어색하게 느껴지는 일은 거의 없었다. 지난 7일 온라인으로 중계된 한화 청백전과 9일 시범경기 개막일 5경기를 통해 우려가 상당 부분 해소됐다. 무엇보다 투구 판정에 대한 시비가 없다는 점에 팬들은 만족감을 드러냈다.

▲ KBO가 7일 서울시 강남구 양재동 소재 더케이호텔에서 미디어를 대상으로 ABS(자동 투구 판정 시스템), 시프트 제한, 피치클락 등 새 규칙 규정에 대한 설명회를 개최했다. ⓒ KBO

타자들은 새로운 스트라이크존에 적응하는 일이 숙제로 남았지만 그래도 대체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경기 중 갑자기 기준이 달라지는 경우가 없기 때문이다.

단 판정 방식에 대한 의문을 드러내는 선수들은 더러 있었다. NC 박민우는 아주 조심스럽게 "기준을 왜 그렇게 정했는지 이해가 안 되는 점이 있었는데 해보니까 더 납득이 안 됐다. 내 말이 큰 파장을 일으킬 수도 있어서 조심스럽다. 그렇다고 안 따르겠다는 것은 아니다"라며 "좌우 넓어지고 상하단 기준을 키로 잡는 것은 찬성이다. 그런데 바깥쪽에서 변화구가 들어와서 홈플레이트 뒷부분 통과했을 때 스트라이크를 준다는 게 이해가 잘 안 간다. 타격은 홈플레이트 앞쪽에서 이뤄지는데 뒤쪽을 통과한 공도 스트라이크를 준다고 하면, 그 공을 맞추기 위해서 수비방해를 할 수 밖에 없지 않나"라고 볼멘소리를 냈다.

KIA 이범호 감독은 ABS 적응에 대해 "다른 경우는 부담스럽지 않은데 2스트라이크 이후에 내가 봤을 때 볼 같은, 그전에는 볼이라고 생각했던 공에 스트라이크 선언이 나올 때가 있으니까 약간 빠졌어도 쳐야하나 하는 생각이 생길 수 있다. 2스트라이크 이후에는 ABS가 무서워질 수 있다. 그전에는 골라서 치면 되니까 크게 문제가 안 되지만 2스트라이크부터는 런앤히트 같은 기분으로 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KBO는 9일 시범경기 시작과 함께 더그아웃에서 ABS 판정 기준을 확인할 수 있는 태블릿PC를 전달했다. 경기 중간에도 의문이 생기면 오류가 있는 것은 아닌지 심판진에 문의할 수 있다.

심판위원회도 ABS 관련 질의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KBO 오석환 심판위원장은 12일 "현장 보고를 들어보면 아직 경기 중간, 뒤에 공식적으로 오류 사항에 대한 문의가 들어오지는 않았다. 첫 경기 때보다는 추적 실패 사례가 많이 줄었다. 첫날은 주심이 콜하는 경우가 몇 구 있었는데 어제 오늘(11~12일)은 없었다"며 "시범경기이기는 하지만 현장에서 문의가 있다면 선수 코칭스태프 다 알려주라고 지시를 해뒀다. 선수가 물어보면 충분히 답은 해준다. 선수들이 잘 인식하고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허구연 총재는 비시즌 직접 피치클락과 ABS(자동 투구 판정 시스템)를 점검했다. ⓒ KBO

피치클락 적응도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다. KBO는 "경기 중 불필요한 시간 지연 최소화로 팬들에게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제공하기 위해 시범 운영 중인 피치 클락은 19경기에서 경기당 평균 4.5건의 위반(경고)이 나왔다. 19경기 중 총 85건이며 투수 위반이 38건, 타자는 46건이었다"고 밝혔다.

또 "특히 시범경기 첫날 39건, 2일차 21건, 3일차 16건, 4일차 9건(4경기)의 위반이 발생, 경기가 진행될수록 위반 사례가 감소하는 등 선수단이 규정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KBO는 선수들의 피치클락 적응을 돕기 위해 올 시즌 시범경기부터 시범 운영에 나섰다. 어디까지나 시범 운영인 만큼 위반에 따른 제재는 적용하지 않고 경고만 주어진다. 투수판 이탈(견제 등) 제한 규정도 적용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경기 시간이 유의미하게 줄어들었다. 이제 남은 것은 현장을 설득하는 일이다.

롯데 김태형 감독은 10일 "피치클락(도입)은 조금 빠른 것 같다. 선수들이 경고를 많이 받았다. 물론 준비를 빨리 해야겠지만 혼동이 올 것 같다"라며 "경기 시간을 줄이려고 야구 자체를 많이 바꾸는 것은 좀 아닌 것 같다. 불필요한 것은 조금씩 줄여야 한다. 투수와 포수의 사인이 맞지 않는 것을 어떻게 줄이겠나"라고 우려를 드러냈다.

SSG 이숭용 감독 또한 "선수들이 경기에 영향이 있을까봐 걱정했다. 선수들이 좀 더 나은 퍼포먼스를 보여주는데 치중해야 하는데 신경이 쓰일 것 같다. 그래서 조금 더 심사숙고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kt 이강철 감독도 시범경기 초반부터 피치클락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내며 정식 시행을 미뤘으면 하는 의사를 전했다.

▲ kt 이강철 감독과 LG 염경엽 감독 ⓒ곽혜미 기자
▲ 미국 메이저리그 포수들이 팔목에 착용하는 피치컴 밴드.

찬성하는 감독들도 있다. LG 염경엽 감독과 두산 이승엽 감독, 삼성 박진만 감독과 NC 강인권 감독은 공개적으로 찬성표를 던졌다. 강인권 감독은 스프링캠프 기간 메이저리그 시범경기를 지켜본 소감을 전하면서 "개인적인 소견이지만 무조건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정립만 잘 한다면 나쁘지 않을 거고, 시행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올 겨울 갑자기 나온 규칙이 아니라, 지난해 감독자 회의부터 얘기됐던 사안이라면서 준비할 시간이 충분했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최원호 감독은 피치컴(사인 교환 장비) 동반 도입을 전제로 피치클락 사용에 동의한다고 했다. 메이저리그에서 피치클락을 경험한 류현진(한화 이글스)도 여기에 힘을 실었다. 그는 지난 7일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주자가 없을 때는 전혀 문제가 없다. 오키나와에서 총재님이랑 이야기할 시간이 있었는데, 피치컴이 안 들어온 상황에서는 주자가 있을 때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다. 총재님도 알고 계시더라. 주자가 나갔을 때 피치컴이 없는 상태에서 던지면 나도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다.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이 지금까지는 없는 것 같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일부 구단은 스프링캠프 기간 피치컴을 테스트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은 한국에서 쓸 수 없는 기기다. 전파인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KBO는 전파인증 작업이 끝나는대로 피치컴 또한 경기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KBO 관계자는 지난 7일 규칙설명회에서 "피치컴 도입은 피치클락 도입을 논의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협상을 시작했다. 미국 장비라 국내에서 사용하려면 전파인증을 받아야 하는데 그 절차가 아직 통과되지 않았다. 해당 업체와 협의 후 이른 시일 안에 사용하도록 추진하고 있다. 빠르면 2개월이 소요된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단 이 과정에 수 개월이 소요되는 만큼 당장은 경기에서 피치컴을 통해 투수와 포수가 사인을 주고받는 장면을 보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정식 도입이 확정되지 않은 가운데 막연한 시범 운영이 오히려 선수단의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의견 또한 나온다. KBO는 이를 의식한 듯 13일 "피치클락 시범운영에 따른 각종 관련 통계와 팬들의 선호도, 현장 의견 등을 종합해 정식 도입 시기를 최대한 빨리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KBO는 13일 시범경기 첫 나흘을 보낸 뒤 새 규칙의 효과가 어떻게 나타났는지 통계 자료를 공개했다. ⓒ KBO

#12일까지 피치클락 위반 경고

9일 39회→10일 21회→11일 16회→12일 9회

경기당 7.8회→4.2회→3.2회→2.3회

최소 1위 LG는 경기당 1.0회 미만

LG 4경기 3회(타2, 투1)

두산 3경기 3회(타2, 투1)

롯데 3경기 3회(타3, 투0)

삼성 4경기 5회(타4, 투1)

한화 4경기 8회(타4, 투4)

kt 4경기 10회(타5, 투5)

SSG 4경기 12회(타5, 투7)

NC 4경기 12회(타10, 투2)

KIA 4경기 12회(타5, 투7)

키움 4경기 13회(타5, 투8)

이미 메이저리그에서 프로 수준의 야구선수들은 새로운 규칙에 아주 빠르게 적응한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지난해 3, 4월 열린 메이저리그 425경기에서 피치클락 위반은 모두 306번 나왔다(투수 210회, 타자 96회, 경기당 0.72회). 9월과 10월 422경기에서는 단 106번(투수 79회, 타자 27회, 경기당 0.25회)으로 시즌 초반의 3분의 1 수준까지 줄었다.

피치클락 위반이 나타나지 않은 경기는 전체 경기의 66%였다. 후반기에는 74%로 피치클락 위반 없는 경기가 있는 경기보다 3배나 많았다. 100구 이상의 투구를 던진 투수 가운데 49%, 100구 이상 상대한 타자 가운데 68%는 시즌 내내 단 한 번도 피치클락을 위반하지 않았다. 메이저리그는 KBO리그보다 시범경기 일정이 훨씬 길다는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마이너리그에서 올라온 선수가 아니라면 2022년까지는 피치클락 없는 환경에서 야구했다. 그래도 성공적으로 새로운 규칙에 몸을 맞췄다.

▲ 9일 시범경기 개막일부터 시범 운영에 들어간 피치클락. 한화 리카르도 산체스가 투구를 준비하고 있다. ⓒ곽혜미 기자

KBO 또한 현장의 의견을 적극 수용하며 피치클락 도입 연착륙을 이끌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12일 경기에서는 투수들의 피치클락 위반이 눈에 보여도 곧바로 경고를 주지 않는 장면이 나왔다. 대신 투구가 끝난 뒤 주심이 제자리에서 구두로 경고를 주고, 기록원 측에 경고 사실을 전달했다. 11일까지는 투수가 투구 동작에 들어갔어도 주심이 경고를 먼저 알렸다. 투수들이 투구 동작을 갑자기 멈추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KBO 오석환 심판위원장은 12일 "심판들이 경기 운영을 하다 보니 투수가 와인드업에 들어간 뒤에 경고를 주면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경고 시기는 완화를 하려고 한다. 오늘부터 그렇게 했다"고 말했다.

오석환 위원장은 또 "현장의 감독들이 문제제기를 하시는데 피치클락은 규제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간 단축, 역동적인 경기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지금은 제재가 있는 것이 아니고 (피치클락 규칙을)인지를 시켜주기 위해 경고는 준다. 정규시즌에서는 제스처가 크게 이뤄지지는 않고 구두로 전달하는 선에서 경고가 주어질 것 같다"고 설명했다.

KBO는 "피치 클락 시범 운영에 따라 19경기 평균 시간은 2시간 35분으로 2023년 시범경기 20경기 2시간 58분과 비교해 23분 단축됐다"고 밝혔다. 제재 없이 경고만 주는데도 선수들은 이미 새 규칙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 피치클락 도입 전후 메이저리그 타격 지표. 타자 쪽으로 유리하게 작용했다. KBO리그는 지난 2년만 보면 투타 균형에 큰 변화가 없는 안정된 환경이었다. 한때 리그 전체 OPS가 0.800을 넘는 타자들의 전성시대를 버텨냈던 투수들은 이 안정기가 피치클락과 ABS로 인해 다시 불리하게 바뀔 것을 우려한다. ⓒ 신원철 기자

한쪽에서는 ABS와 피치클락 도입으로 볼넷이 늘어나는 등 타자들이 유리한 경기가 되면 경기 시간이 늘어날 것이고, 사실상 피치클락으로 인한 시간 단축 효과가 없어진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메이저리그에서는 피치클락을 써서 타자들의 지표가 좋아졌는데도 경기 시간이 확실히 줄어들었다.

메이저리그에서 시간 제한이 없던 2022년과 피치클락을 도입한 2023년 시즌의 타격 성적을 비교해 보면 지난해가 더 '타고'에 가까웠다. 그러면서도 시간 단축 측면에서는 의심의 여지 없이 확실한 효과를 냈다. 메이저리그 평균 경기 시간은 2022년 3시간 4분, 2023년은 2시간 40분이었다. 피치클락이 투수에게 유리한 야구를 만들어 경기 시간이 줄어든 것이 아니다. 안타와 볼넷, 홈런이 늘어났는데 경기 시간은 짧아졌다. 경기를 늘어지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은 다른데 있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경기 시간을 늘리는 요인이 타석과 타석, 투구와 투구 사이의 시간이라고 판단했고 이런 가설을 바탕으로 피치클락을 도입했다. 또 단순히 '경기 시간을 단축하겠다'가 아니라, '경기에 박진감을 더하겠다'를 목표로 정한 것 또한 설득력을 더했다. 혹시나 주자가 더 많이 나가게 돼 총 경기 시간이 늘어나는 한이 있더라도 그 시간이 '촘촘하게' 채워지면 괜찮다고 판단했다. 실제로는 경기 시간이 대폭 단축됐다. KBO 또한 메이저리그의 성공 사례를 보면서 피치클락 도입을 추진하기에 이르렀다.

▲ 더 커진 베이스는 더 활발한 도루로 이어질 수 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KBO는 아직 피치클락 세부 규정 가운데 하나인 '투구판 이탈 제한'을 시행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견제 제한에 대한 현장의 거부감을 받아들여 이 부분만큼은 시범 운영에서 제외했다.

투구판 이탈 제한 규정이란 견제 시도, 견제구를 던지는 시늉, 주자가 있을 때 투구판에서 발을 빼는 횟수를 제한하는 규칙이다. 발을 빼는 동작이 있으면 피치클락이 '리셋'되는데, 이를 반복해 피치클락 위반을 회피하는 일을 막기 위해 생긴 규칙이다. 메이저리그에서는 2번까지 허용하고 세 번째 시도에서 아웃카운트를 만들지 못하면 보크가 주어지지만, KBO리그에서는 이보다 1번 여유가 생긴다. 3번까지 투구판을 이탈할 수 있고 네 번째 시도에서 아웃을 잡지 못하면 보크다.

'무한 견제'를 막을 수 있어 시간 단축에 큰 효과가 있는, 한편으로는 도루 성공률을 크게 높이는데 일조한 규칙이다. 그런데 KBO는 이 규칙까지는 도입하지 않았는데도 시범경기 경기 시간이 크게 줄어들었다.

▲ 메이저리그에서 스피드업을 위해 도입한 피치클락.

지금은 피치클락을 전면 도입한 곳이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 뿐이지만, 앞으로는 점점 더 많은 리그에서 '스피드업'과 '박진감 있는 경기'를 위해 경기 시간을 줄일 다양할 방안을 도입할 가능성이 크다. 메이저리그의 피치클락을 시작으로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규칙의 형태를 띄기 시작했다.

대만 프로야구(CPBL)은 이미 피치컴 사용을 전제로 한 피치클락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김윤석 전 중화권 전력분석원에 따르면 대만 프로야구(CPBL)는 올해부터 주자 없을 때 18초, 주자 있을 때 23초의 투구 시간 제한을 두고 피치컴을 도입할 예정이다. 메이저리그식 투구판 이탈 제한 규칙은 수정을 거쳐 도입한다. 메이저리그처럼 보크로 처리하지 않고 첫 번째 위반시 경고, 두 번째 위반시 자동 볼이 주어진다. 또한 향후 전자 스트라이크존(한국의 ABS 같은) 역시 도입을 추진할 방침이다.

일본 프로야구의 경우 피치클락은 도입하지 않는다. 지난해 통계를 분석한 결과 규칙으로 제한해야 할 만큼 투구 사이 시간이 길지 않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신 규칙에만 존재하고 적용하지 않고 있었던 타석 사이 30초룰을 확실히 지키도록 했다. 지난해 타석 사이 시간은 평균 36.9초였다. 1경기 평균 55회인 타석 사이의 시간이 30초 안으로 줄어들면 총 경기 시간의 6~7분을 줄일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늘 스피드업을 강조하면서도 뚜렷한 효과를 보지 못했던 KBO가 반발을 무릅쓰고 피치클락을 시도하는 것도 이런 세계적인 움직임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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