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암 확산 비밀 풀렸다…‘끈적한 거미줄’ 세포에 칭칭

곽노필 기자 2024. 3. 13. 14:3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곽노필의 미래창
백혈구 세포 중 호중구가 ‘거미줄 망’ 만들어
스트레스에 종양 크기 2배, 전이성 병변 4배
스트레스를 받은 쥐(오른쪽)와 그렇지 않은 쥐(왼쪽)의 암 세포 확산 정도 비교. 콜드스프링하버연구소(CSHL) 제공

☞한겨레 뉴스레터 H:730 구독하기. 검색창에 ’h:730’을 쳐보세요.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라고들 말한다. 미국 스탠퍼드 의대 통합의학센터에 따르면 대부분의 표준 의학 교과서에서 모든 질병의 50~80%가 스트레스와 관련한 원인을 갖고 있다고 설명한다.

예컨대 의학 분야 국제학술지 랜싯에 발표된 2017년 연구에선 스트레스와 심혈관 질환 사이의 연관성을 확인했고, 2022년 미국의사협회(자마)가 발행하는 ‘자마 네트워크 오픈’에는 스트레스가 뇌졸중 위험을 17% 높인다는 연구가 발표됐다.

그렇다면 스트레스와 암도 밀접한 관계가 있을까? 국내외 암 관련 기관들이 웹사이트에 올려놓은 건강 정보 자료들을 보면, 스트레스가 암 발병 위험을 높인다는 직접적인 과학적 증거는 불분명하다. 스트레스는 대신 암 발병 위험을 높일 수 있는 생활 및 신체 변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예컨대 스트레스가 면역 체계를 약화시키는 점, 신체 기능과 관련한 다양한 호르몬 분비에 영향을 미치는 점, 스트레스가 과음, 과식, 흡연 등 건강에 해로운 생활을 유발하는 점 등이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반면 암의 악화(진행)와 확산(전이)에는 스트레스가 직접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이 동물 실험이나 세포 실험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과학자들이 스트레스가 어떤 과정을 통해 암의 확산과 전이를 유발하는지 알아냈다. 픽사베이

백혈구가 암 전이에 유리한 환경 조성

미국 뉴욕의 콜드스프링하버연구소(CSHL) 연구진이 생쥐 실험을 통해 스트레스가 어떻게 암을 악화시키고 다른 신체 조직으로 퍼뜨리는지 발견해 국제학술지 ‘암 세포’(Cancer cell)에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스트레스를 받으면 백혈구 세포 가운데 하나인 호중구가 끈적끈적한 거미줄 같은 구조를 만들고, 이것이 암 세포가 신체 조직에 더 쉽게 전이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연구진은 실험을 위해 생쥐의 유방에서 발생해 폐로 확산되고 있는 암 세포를 떼어냈다. 그런 다음 생쥐를 두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엔 심한 스트레스를 줬다. 예컨대 생쥐를 계속해서 밝은 조명 아래 두거나 기울어진 우리에 가두고, 시끄러운 소리에 노출시키거나 음식을 주지 않았다.

백혈구 세포인 호중구가 외부 침입자를 공격하기 위해 세포 안의 DNA 가닥을 바깥으로 분출해 만든 거미줄 모양의 구조를 묘사한 그림. 콜드스프링하버연구소(CSHL) 제공

암 크기 2배, 전이 병변 4배 증가 확인

그러자 글루코코르티코이드 계열의 스트레스 호르몬(사람은 코르티솔, 생쥐는 코르티코스테론)이 호중구에 작용하기 시작했다. 스트레스를 받은 호중구는 거미줄 망 구조인 ‘네트’(NET, 호중구 세포밖 올가미)를 형성했다. 이 구조물은 호중구가 자기 세포 안에 있는 디엔에이(DNA) 가닥을 바깥으로 뿌려 만든 것이다.

호중구가 이 구조물을 만드는 것은 DNA에 붙어 있는 독소를 이용해 외부에서 침입해온 병원체를 공격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암의 경우엔 이것이 오히려 암 전이에 유리한 환경을 만든다.

두 그룹의 생쥐를 비교한 결과, 스트레스에 노출된 생쥐는 그렇지 않은 생쥐보다 종양 크기가 대략 2배 커지고, 전이성 병변은 2~4배 증가했다.

연구진은 스트레스가 실제로 호중구의 거미줄 망 형성을 유발해 암 전이를 촉진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세 가지 실험을 진행했다.

먼저 항체를 이용해 생쥐에서 호중구를 제거했다. 다음엔 거미줄 망을 파괴하는 약물을 생쥐에게 주입했다. 마지막으로 글루코코르티코이드에 반응하지 않는 호중구가 있는 쥐는 어떻게 되는지 살펴봤다.

암에 걸릴 준비 마친 것과 같아

놀랍게도 세 가지 실험에서 모두 같은 결과가 나왔다. 스트레스를 받아도 더는 암 전이가 발생하지 않았다. 연구진은 “이는 스트레스로 인한 암 전이에서 호중구가 거미줄 망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걸 보여준다”고 밝혔다.

스트레스는 또 암 세포를 억제하는 티세포, 자연살해세표(NK세포) 등 면역세포 수를 감소시키는 동시에, 혈류를 타고 종양 속으로 들어가는 호중구의 수를 늘렸다.

연구진은 특히 암이 발병하지 않은 생쥐에서도 스트레스로 인해 생긴 거미줄 망 구조가 폐 조직을 변형시키는 걸 발견했다. 연구진은 “이는 폐 조직이 암에 걸릴 준비를 거의 마친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이번 발견은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이 암 치료와 예방의 한 요소가 돼야 한다는 걸 보여준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이번 발견이 암 전이를 예방하는 새로운 치료 전략을 세우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논문 정보

https://doi.org/10.1016/j.ccell.2024.01.013

Chronic stress increases metastasis via neutrophil-mediated changes to the microenvironment.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