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 차등 임금’ 한은 보고서에 분노···“인간이 아니라 노예 취급”
돌봄·이주노동자 관련 시민사회단체들이 돌봄서비스 인력난 해소를 위해 외국인 노동자를 늘리고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할 것을 제안한 한국은행 보고서에 대해 “반인권·차별적 발상”이라고 규탄했다.
공공운수노조 사울시사회서비스원지부, 이주노동자평등연대, 이주 가사·돌봄 노동자 시범사업 저지 공동행동 등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는 13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은행이 제안한 ‘이주 가사·돌봄 노동자 확대 및 최저임금 차등 적용’ 등이 외국인 차별을 낳고, 돌봄 노동의 질마저 떨어뜨릴 수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 5일 한국은행은 ‘돌봄서비스 인력난 및 비용 부담 완화 방안’ 보고서를 통해 돌봄서비스 부문의 인력난 완화를 위해 외국인 노동자를 늘리고 이들에게 최저임금을 국내 기준보다 낮게 적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한국은행은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으로 외국인을 고용하는 국가에서 돌봄 서비스직에 종사하고 있는 외국인들의 업무 만족도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라고 언급하며 홍콩에서 일하는 필리핀 가사도우미를 예시로 들어 논란이 됐다.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는 “한국이 이미 맺은 각종 국제 협약과 국내법은 이주노동자의 인권과 노동권을 보장하기 위해 설계돼 있다”며 “이주노동자에게 낮은 임금을 지급하기 위해 법을 바꾸는 것은 국제적 비난과 국가적 수치를 동반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단체들은 내국인과 달리 외국인에게 최저임금 등을 차등적으로 적용할 경우 차별을 금지하는 국제노동기구(ILO)의 협약을 위반하는 것이라는 지적도 했다.
이날 회견에는 홍콩아시아가사노동조합연맹(FADWU)가 보내온 반박문도 공개됐다. FADWU는 “홍콩의 최저임금은 시간당 40홍콩달러이지만 이주 가사노동자들은 실질적으로 7.8홍콩 달러밖에 받지 못한다”면서 “홍콩의 이주 가사 노동자들은 차별적인 법과 정책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우리는 인간이 아니라 노예와 로봇처럼 취급당하고 있다”라며 “이주 가사노동자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해당 국가의 생활임금을 지불할 것을 요구한다”라고 했다.
단체들은 서울시의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 정책도 우려했다. 김혜정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사무처장은 “서울시의 이주 가사노동자 도입 시범사업에서 이주노동자의 체류자격은 비전문취업(E9)비자라 사업장 변경의 제한이 있어 사업주에 종속되는 인권침해 논란이 있다. 또 이주 여성은 젠더 기반 폭력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라며 “이러한 상황인데 최저임금 차등 적용을 말하는 것은 차별을 더욱 조장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6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신중한 한국은행이 이런 의견을 낸 것은 그만큼 상황이 시급하다는 것”이라며 “외국인에게도 최저임금이 적용되면 (외국인 가사노동자의 월급이) 월 200만원이 넘어서 대부분의 중·저소득층에게는 ‘그림의 떡’이 될 것”이라고 했다. 서울시는 올해 상반기 중으로 고용노동부와 함께 최저임금 수준으로 필리핀 가사 노동자를 우선 고용하는 시범사업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https://www.khan.co.kr/national/labor/article/202402061148001
배시은 기자 sieun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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