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여왕', 역시 박지은-김수현! 또다시 나는 대박 스멜
아이즈 ize 조이음(칼럼니스트)
"홍해인이 그러더라. 나 귀여웠다고. 나 그때 왜 그랬지? 나는 왜 귀여워서 내 팔자를 꼬았지?" "용두리 배나무집 막내아들 귀여운 건 그냥 내추럴 본인데. 이건 기본 옵션인데. 어떡하냐고"
재벌 3세와 결혼한 서울대 법대 출신 남자. 절친과 맥주 캔을 기울이다 잔뜩 취한 남자는 결혼을 후회한다며 눈물 바람이다. 알맹이 없는 신세한탄에 절친마저도 공감하지 못하고 등을 토닥여줄 따름이다. 제 실상을 다 밝힐 수 없다는 답답함과 그런 결혼을 선택했다는 후회, 현실에 대한 한탄을 담아 노래까지 흥얼거리는 남자의 모습은 안타깝다가도 어째서인지 귀엽다. 남자는 분명 진심일 텐데, 행동은 그저 귀엽고, 그 괴리가 보는 이들에겐 웃음을 선사한다. 눈물과 웃음이 보장된 '선 결혼 후 연애' 스토리가 기대되는 tvN 토일드라마 '눈물의 여왕'의 막이 올랐다.
'눈물의 여왕'(극본 박지은, 연출 장영우 김희원)은 3년차 부부인 퀸즈 그룹 재벌 3세 백화점의 여왕 홍해인(김지원)과 용두리 이장 아들 슈퍼마켓 왕자 백현우(김수현)의 아찔한 위기와 기적처럼 다시 시작되는 사랑 이야기를 담는다. 드라마는 시작부터 두 사람의 연애와 결혼 그리고 이혼 직전에 이르기까지 롤러코스터 같은 부부 생활이 빠르게 담겼다. 여기에 박지은 작가의 특유의 코믹한 맛이 적절하게 어우러지며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홍해인은 그룹 후계자라는 사실을 숨긴 채 백화점 인턴 생활을 하던 중 신입사원인 백현우와 사랑에 빠진다. 업무에 서툴고 사회생활에 익숙하지 않은 홍해인을 걱정하던 백현우는 "나 서울대 나왔다. 그것도 법대" "우리집 지방이긴 한데, 마을에선 유지 소리 듣는 집이다" "지금 사는 오피스텔도 월세 아니고 전세다. 그만큼 목돈이 있다는 얘기"라며 제 매력을 어필한다. 제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홍해인에게 백현우는 "인턴 잘리고 재취업 안되도 내가 당신 책임질 수 있다는 이야기"라며 돌직구로 고백하지만, 이내 홍해인이 누군지 알게 되고선 회사에 사직서를 내고 잠수를 탄다. 그런 백현우를 놓아줄 생각이 없던 홍해인은 헬기까지 동원해 백현우의 본가로 찾아간다. 결국 두 사람은 어마어마한 집안의 차이를 뛰어넘어 세기의 결혼에 성공한다.
재벌가와 평범한 집안에서 자란 남자의 동화처럼 시작된 사랑이기에 결혼 생활 역시 오래오래 행복할 줄 알았건만, 3년이 지난 지금 두 사람은 카메라 앞에서만 연애 시절의 추억을 꺼내 보이며 행복한 척하는 권태로운 부부다. 특히 백현우는 세상 모든 사람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는 '신분 상승 결혼'에 성공한 재벌가 데릴사위였지만, 실상은 숨 막히는 처가살이를 버티지 못해 이혼을 꿈꾼다. 하지만 자기 집 밥 먹던 사람이 떠난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해 떠나는 등에 칼 꽂는 재벌가의 무시무시함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쉽게 이혼협의서를 건네지 못한다. 고심 끝에 이혼을 결심한 백현우가 용기를 내려는 순간, 홍해인은 "나 3개월 남았대"라며 시한부임을 고백한다. 백현우는 이혼협의서를 내미는 대신, 홍해인을 끌어안으며 그간의 제 행동을 사과하고, 사랑을 고백한다.
이후 백현우는 홍해인을 위해 달라진다. 아니 자신을 위해 달라진다. 제 목숨을 걸고 이혼서류를 내미는 대신, 3개월만 기다리면 홍해인과 '사별'로 포장된 '안전 이별'을 할 수 있을 거라 믿고 있다. 아내의 죽음 앞에서 안전이별을 바라는 그의 마음이 괘씸하면서도 마냥 그를 밉게만 볼 수 없는 건, 그가 지난 3년간 힘겨운 처월드 살이를 해왔음을 시청자는 알고 있는 탓이다.
'눈물의 여왕'은 시작 전부터 업계는 물론 많은 시청자에게 2024년 상반기 편성 작품 중 기대되는 드라마로 손꼽혀왔다. SBS '별에서 온 그대'(2013), tvN '사랑의 불시착'(2019) 등을 집필한 박지은 작가와 배우 김수현 김지원의 만남으로 '믿고 보는 조합'이 완성됐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시작부터 3년 차 부부가 연애 시절을 떠올리면서도 씁쓸해하고, 사랑보다 이별을 고민한다는 점, 결국 헤어짐을 선택하려 한다는 점 등 여느 드라마와 다른 전개로 흥미를 유발했다. 특히 익숙한 재벌가를 등장시키는 대신 기존 드라마 공식과는 달리 이른바 남자 신데렐라라는 설정으로 익숙한 '시월드'가 아닌 이른바 '처월드'를 만들어 제사 준비마저 사위들에게 모두 맡기거나(이마저도 '옛날 진짜 양반가에선 남자들이 다 제사를 준비했다'며 전통을 따르는 거라는 어른들의 말씀), 남편 말만 믿고 결혼했다가 후회하는 아내들의 익숙한 레파토리를 고스란히 읊는 백현우의 대사로 재미를 선사하기도 했다.
사실 이는 시한부 설정에도 똑같이 대입해 볼 수 있다. 첫 화 말미에서 홍해인은 이혼서류를 준비한 백현우에게 자신의 삶이 3개월 남았음을 고백해 놀라게 했다. 하지만 "기적은 (의학과는) 또 다른 영역"이라던 홍해인의 주치의의 대사나, 이를 곱씹으며 백현우가 검색한 누군가의 사례 기사들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고도 30년 넘게 살아있다' '자고 일어나니 종양이 모두 사라졌다', '의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결과'라는 한 기사의 제목은 생존 가능성이 낮다던 홍해인의 사례가 될 수도 있음을 기대케 한다. 또한 백현우의 행동을 지금껏 오해해온 홍해인이 백현우가 찾아본 사례들을 보고 "꼭 살겠다"고 의지를 다지며 외국의 신약 연구소 이야기를 한 것만 봐도 충분한 희망은 있다. 무엇보다 지금껏 박지은 작가가 전체적으로 유쾌한 톤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왔고, 전작들에서 역시 슬픈 결말로 시청자를 울리진 않았다는 것 또한 염두에 둬도 되지 않을까.
막장 소재로 익숙했던 재벌가의 결혼과 이혼, 그리고 시한부 설정이 유쾌하고 낭만적인 드라마를 만드는 박지은 작가의 손에서 김수현 김지원이란 배우와 만나 어떻게 표현될지, 다음 이야기가 무척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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