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로하면 접불래라’ 춘향가 이 대목 뜻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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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꾼 박가빈(36)은 해마다 겨울·여름 두 차례 독공(獨功)을 거르지 않는다.
"판소리는 음악보다 이야기가 먼저잖아요. 뜻을 제대로 알고 부르지 않으면 소리와 내용이 따로 놀아요." 그러면서 춘향가의 눈대목 '사랑가'에 나오는 "화로(花老)하면 접불래(蝶不來)라"를 예로 들었다.
박가빈은 다양한 무대에 서는 현장의 소리꾼이자 이화여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은 학구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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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간 완창 판소리…이야기부터 이해 돼야”
소리꾼 박가빈(36)은 해마다 겨울·여름 두 차례 독공(獨功)을 거르지 않는다. 가객들이 득음(得音)을 위해 토굴이나 폭포 앞에서 홀로 하는 발성 훈련이다. 지난 2월에도 전남 구례군 천은사에 2주 동안 머물며 목을 다듬었다. 이런 공력 덕분인지 2년 전 송만갑판소리 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도 받았다. 최근 판소리 다섯 바탕 사설집 5권을 펴낸 그가 이번엔 오선지 악보에 옮기는 작업에 나섰다.
구전돼온 판소리를 글로 엮어 가사로 표현한 게 사설집이다. 계기는 2021년 3월 심청가 완창이었다. “너무 답답했어요. 4시간 동안 완창을 하면서도 의미를 제대로 몰랐거든요.” 최근 국립국악원에서 만난 박가빈은 “소리꾼들도 진짜 어떤 내용인지 모르고 부르는 경우가 90% 이상일 것”이라고 했다. “판소리는 음악보다 이야기가 먼저잖아요. 뜻을 제대로 알고 부르지 않으면 소리와 내용이 따로 놀아요.” 그러면서 춘향가의 눈대목 ‘사랑가’에 나오는 “화로(花老)하면 접불래(蝶不來)라”를 예로 들었다. 꽃도 시들면 나비가 날아들지 않듯 늙으면 이도령도 떠날 거라고 춘향이가 한탄하는 대목이다. “슬픈 내용이니까 이 대목에서 가락을 구슬픈 계면조로 바꿔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아요.”
기존 사설집은 얼기설기 만든 제본에 가까웠다. 빽빽한 글씨에 띄어쓰기도 안 돼 있어서 읽는 게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읽을 수는 있어도 의미를 제대로 알기는 어려웠다. “맞춤법도 틀린 부분이 많았어요. 목차도 없고 각주가 맨 뒤에 있어서 찾아보기도 어려웠고요.”
심청가 완창 뒤에 슬럼프가 찾아왔고, 이때다 싶어 사설집을 펴내는 데 몰두했다. 소리꾼이든, 누구든 쉽게 볼 수 있는 사설집을 목표로 세웠다. 6개월 만에 첫 사설집 ‘강상제 심청가-조상현 창본’을 펴냈다. 책엔 ‘교주 박가빈’이라고 돼 있다. 그가 교정을 보고 주석을 달았다는 뜻이다. 앞에 목차를 넣고 가사가 나오는 곳 바로 아래 주석을 달아 바로 의미를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이듬해 춘향가와 흥보가, 지난해 적벽가 사설집을 펴냈다. 지난 2월 수궁가를 끝으로 5바탕 사설집을 완성했다.
그 자신부터 심청가 사설집 덕을 톡톡히 봤다. 9차례 출전한 대회에서 모두 심청가를 불렀는데, 연거푸 낙방하자 주변에서 춘향가로 바꿔보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7번째 대회에 나갔을 때 ‘심청가가 아니라 내 문제다. 얼마나 진정성 있게 해석해 전달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깨달음이 오더군요.” 2022년 9월 8번째 도전한 서편제보성소리 대회에서 심사위원이던 신영희(82) 명창에게 99점을 받으며 “쟤가 누군데 저렇게 잘하느냐”는 칭찬을 들었다. 그리고 1개월 뒤 열린 구례 송만갑판소리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았다. 주변에선 그를 ‘8전9기의 소리꾼’이라고 부른다.
지난해 10월 서울 돈화문국악당에서 춘향가를 완창하면서 사설집의 효용을 확신할 수 있었다. “관객들에게 춘향가 사설집을 판매했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내용을 알 수 있어서 완창 5시간이 지겹지 않다고 좋아하시더군요.” 그는 “저도 내용을 제대로 알고 부르니까 세부적인 뉘앙스까지 살릴 수 있었다”며 웃었다.
그의 또 다른 목표는 판소리 5바탕을 모두 오선지에 담아 악보집을 펴내는 일이다. “음악에선 악보가 만국 공통 언어거든요. 판소리를 악보로 옮기면 다양한 문화권과 교류할 수 있을 겁니다.” 그에게 사설집이 판소리의 원형에 대한 탐구라면 악보집은 판소리를 확장하고 변형하는 근거였다. 지난 2월부터 심청가 채보에 들어가 올해 연말쯤 첫 악보집으로 펴낼 계획이다. 박가빈은 다양한 무대에 서는 현장의 소리꾼이자 이화여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은 학구파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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