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시세] "반가사유상 사야 돼요"… '뮷즈' 사러 오픈런하는 MZ세대

정수현 기자 2024. 3. 13.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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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세대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
[편집자주]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시각이 남다른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 세대).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머니S는 Z세대 기자들이 직접 발로 뛰며 그들의 시각으로 취재한 기사로 꾸미는 코너 'Z세대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Z시세)을 마련했습니다.

뮤지엄 굿즈라 불리우는 일명 '뮷즈'가 MZ세대 사이에서 품절 대란을 기록할 정도로 인기다. 사진은 알록달록한 색의 반가사유상 미니어처의 모습. /사진=정수현 기자
"소주를 따르면 잔에 그려진 선비가 빨갛게 변하는 술잔을 사려고 직접 찾아왔어요."
"옛것이라고 하면 아직 생소한데 일상 속 컵, 안경닦이, 파일 등의 형태로 나오니까 관심이 가고 재밌어요."

회사원 김모씨(32·여)는 이날 연차를 내고 직접 굿즈를 사러 국립중앙박물관 안에 있는 국립박물관 뮤지엄숍에 들렀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유명한 '취객선비 3인방 변색잔세트'를 사기 위해서다.

'취객선비 3인방 변색잔세트'는 차가운 음료를 부으면 소주 잔에 그려진 선비의 얼굴이 빨개져 소비자 사이에서 품절 대란을 일으켰다. 이날 품절된 소주잔을 구매하지 못한 김씨와 일행은 못내 아쉬운 표정을 지은 채 발걸음을 돌렸다.

30대 청년은 알록달록한 반가사유상 앞을 서성이며 통화하고 있었다. 그는 "금색은 다 나갔대. 베이지 색도 있고. 무슨 색으로 사갈까?"라며 통화 상대방의 의견을 물었다. 그는 금색을 사려면 '오픈런'을 해야 한다는 점원의 말을 듣고 어떤 색을 사갈지 한참 고민하다 6만원이 넘는 가격의 은색 반가사유상을 1개 구매했다.

품절 대란을 이끄는 이 상품들은 모두 박물관 굿즈(Goods·상품)로, '뮷즈'(뮤지엄 굿즈)로 불린다.그동안 고리타분한 것으로 치부됐던 '전통 문화(tradition)'가 2030세대 사이에서 '힙(hip)'한 유행이 돼 돌아왔다. 이른바 힙트래디션(hip+tradition)의 선두주자인 국립중앙박물관의 오랜 유물, 금동대향로와 반가사유상이 알록달록한 미니어처 상품으로 재탄생돼 새로운 유행을 일으키고 있다.



'뮷즈' 사러 박물관 오픈런까지… 2030 열풍


사진은 국립중앙박물관이 뮷즈로 선보인 '취객선비 3인방 변색잔세트'(왼쪽)와 해당 상품이 온라인상에서 품절된 모습. /사진=국립박물관문화재단 제공.
국립중앙박물관 뮤지엄숍에서 만난 프리랜서 손모씨(30·여)는 "금동대향로 굿즈를 보러 박물관에 방문했는데 생각보다 더 다양한 소품과 볼거리에 지금 1시간 넘게 굿즈들을 구경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아기자기한 상품과 한국 문양이 이렇게 젊은 층의 마음을 사로잡을 줄 몰랐다"며 신기해했다.

한글 문양이 그려진 수첩을 구경하던 대학생 김모씨(22·여)도 "친구들에게 '이곳 굿즈가 유명하다'는 말을 들었다"며 "SNS에 많이 떠서 호기심에 전시도 볼겸 굿즈도 살겸 이곳에 들렀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자게와 같은 한국 문양이 다시 유행하는데 이런 굿즈 열풍으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것은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뮷즈에 마음을 빼앗긴 사람은 한국인뿐만이 아니다. 한국 전통 부채를 구경하던 한 미국인 유학생(20대·남)은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아 박물관을 구경하던 중 사람이 끊임없이 북적거리는 이곳이 궁금해 들렀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뮷즈를 보니 한국 감성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어 좋다"며 "한국 전통의 매력은 신비로움이다"고 밝혔다.

평일 오후 4시 마감 직전에도 사람들로 북적이는 국립중앙박물관 뮤지엄숍의 모습. /사진=정수현 기자
뮤지엄숍에서 일하는 점원 김모씨(20대·여)는 "오전 이후부터 방문객이 거의 끊이지 않는다"며 "특히 금동대향로 굿즈는 재고가 들어오면 곧바로 팔리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인터넷 구매는 서버가 마비돼 이곳에 직접 오픈런하는 사람도 생겼다"며 "원하는 색깔도 다양해 연락처를 직접 남기는 방문객도 많다"고 설명했다.

그룹 방탄소년단의 리더 RM도 자신이 소장한 반가사유상 미니어처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려 '뮷즈' 인기에 기름을 부었다. 품절을 이끄는 것은 국립중앙박물관의 소주잔만이 아니다. '반가사유상' '금동대향로' 만큼이나 덕수궁 굿즈의 '오얏꽃 위스키 잔'도 최근 3일 동안 400개가 모두 매진되는 등 확실한 뮤지엄 굿즈 팬덤을 구축했다.



MZ가 '전통 굿즈'에 열광하는 이유


실제 향을 피울 수 있는 금동대향로 미니어처와 이를 구경하는 방문객의 모습(상단), 한국 전통 문양이 새겨진 코스터와 민화를 미니 파일로 재탄생시킨 굿즈의 모습. /사진=정수현 기자
직장인 김모씨(30대·여)는 "경복궁에 놀러간 김에 고궁박물관 전시도 봤는데 그때 엽서가 너무 예뻐서 산 이후 뮷즈를 계속 모으고 있다"며 "전시에 맞춰 나오는 한정판이기 때문에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없는 유니크함이 젊은층을 사로잡은 것 같다"고 밝혔다.

이곳을 방문하는 연령층은 20대와 30대가 주를 이뤘지만 곳곳에서 굿즈를 구경하는 40대도 볼 수 있었다. 점원 김씨는 뮷즈가 인기인 이유에 대해 "옛것에 대한 즐거움이 담겨있다"며 "단순히 예쁜 게 아니라 실용성까지 갖춰 많은 사람의 이목을 끄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취객선비 3인방 변색잔'은 김홍도의 작품에 나온 선비가 현대적으로 재밌게 표현돼 사람들이 쉽게 공감하며 즐길 수 있다"며 "현대와 옛것이 즐겁게 어우러지는 재미가 바로 뮷즈의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김미경 국립박물관재단 상품기획팀장은 "박물관 문화유산을 모티브로 둔 브랜드 정체성이 가치소비 성향이 강한 젊은 세대와 잘 맞기 때문"이라며 "가치 있는 것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 MZ세대의 소비 경향에 초점을 맞춘 것이 이 콘텐츠가 성공한 이유"라고 분석했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뮷즈는 역사의 한토막을 소장하는 동시에 체험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MZ의 시선을 사로잡았다"며 "고궁을 거닐거나 역사를 감상하는 기성세대와 달리 역사를 현대적으로 해석하거나 실용적으로 더하는 것을 좋아하는 젊은층의 취향이 적중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뮷즈 덕에 박물관 방문객 급증 지난해 역대 최대 417만명
평일 오후 5시45분 마감 직전에도 뮷즈를 구매하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의 모습. /사진=정수현 기자
뮷즈의 인기 덕분에 박물관을 찾는 사람도 크게 늘었다. 국립박물관문화재단에 따르면 지난해 방문객은 역대 최대인 417만명을 기록했다. 매출도 재단 창립 이래 최대인 149억원을 기록했는데 전년(약 117억) 대비 30% 늘어난 수치다. 경복궁·덕수궁을 비롯한 고궁 굿즈를 전담하는 한국문화재재단 역시 지난해 기준 굿즈 매출액이 110억원을 기록하는 등 굿즈 열풍은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김미경 팀장은 "국립박물관이 소장한 문화유산 중 아직 상품화하지 않은 문화유산이 정말 많다"며 "십이지신, 책가도, 경천사지십층석탑 등을 검토 중이며 이외에도 하고 싶은 작업이 무궁무진하다"고 포부를 밝혔다.

한 외국인이 뮤지업숍에서 뮷즈를 구매하기 위해 진열된 상품을 살피는 모습. /사진=정수현 기자
그는 "시장 영향력이 크고 미래 트렌드를 이끄는 2030세대를 타깃층으로 삼아 상품 구성을 확대할 예정"이라며 "외국인 관람객도 정말 많아져 이 공간을 즐긴 경험을 기억할 수 있는 상품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김 팀장은 "뮷즈 브랜드의 존재 가치는 상품을 통해 국립박물관 문화유산을 널리 알리는 것에 있다"며 "해당 상품의 모티브가 되는 국립박물관 문화유산의 고유 매력과 의미를 제대로 담아낸다면 계속해서 좋은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뮷즈의 성장 가능성을 전망했다.

이은희 교수도 "역사를 다양하게 현대적으로 해석해 구현하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도 유일무이한 콘텐츠"라며 "한복을 입은 블랙핑크가 크게 주목받은 것처럼 뮷즈도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글로벌로 확대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수현 기자 jy34jy34@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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