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면’[유희경의 시:선(詩: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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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대길 건양다경' 하는 바람을 적어 서점 입구에 붙여놓은 게 언제인가.
가벼운 옷을 입고 느긋하게 오가는 모습이 보기 좋아 창문에서 시선을 거두지 못한 지 한참이다.
다시 봄이다.
다시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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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해 더러워지니 봄이다. 부풀어 오르는 것은 꽃봉오리만이 아니다. 흘러내리는 것은 마음의 고름만이 아니다./ 발랄하게 터져버리는, 뿌리는 겨울에 둔 채 피어난 섣달 홍매화처럼/ 봄이 오면/ 부끄러움 없는 생활이,/ 술에 취해 급작스레 네게 전화하리라./ 선뜻 더러워지리라’
- 김안 ‘입춘’(시집 ‘Mazeppa’)
‘입춘대길 건양다경’ 하는 바람을 적어 서점 입구에 붙여놓은 게 언제인가. 따뜻해지려는 모양이다. 목련은 느닷없이 피고 개나리는 참 철없어 보인다. 사람들은 두꺼운 차림으로부터 놓여났다. 가벼운 옷을 입고 느긋하게 오가는 모습이 보기 좋아 창문에서 시선을 거두지 못한 지 한참이다.
아아, 봄이다. 다시 봄이다. 봄은 왜 이토록 설레는가. 어쩌면, 미처 준비하지 못한 채 맞이하기 때문은 아닌가. 봄이 되면 나는 출발선 앞에 서는 기분이다. 백지처럼 새하얀 미래는 그러나 결코 막막하지 않다.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원하는 만큼 내질러도 되는 가능성처럼만 여겨진다. ‘너는 주어질 시간을 한 번도 살아본 적이 없다. 그러니 괜찮다. 실수해도 착각해도 네가 옳다.’ 그렇게 말해주듯 미풍이 불어 등 뒤를 밀어주고, 그렇다면 조그마하게 움트는 초록빛 싹과 화사한 꽃들은 나의 응원단이다. 지난 시간보다 더 해볼 만하다. 해보고 싶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생동(生動)해 가슴 저 안쪽에서 두근대고 있다. 아아, 봄이다. 다시 봄이다.
인근 학교 새내기로 보이는 두 사람이 와서 시집이 꽂힌 책장 앞을 서성인다. 이제 막 친구가 된 듯 친절함과 어색함이 절묘하게 공존하고 있다. 내게도 그렇게 만난 친구가 있다. 함께 보낸 시간이 이제 제법이다. 문득 그가 보고 싶다. 문자 메시지를 보내야지. 봄이 가기 전에 한번 보자고. 술 한잔하면서 함께 보낸 봄을 추억하자고, 새봄에 대해 이야기해보자고.
시인·서점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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