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바위, 가시” 민주당 공천 주역 3인
정성호, 원칙 강조하며 李 빈자리 메꿔
안규백, ‘전술’ 바탕으로 끄덕없이 공천
이재명, 결과적으로 ‘자신의 민주당’ 완성
“정성호는 칼, 안규백은 바위, 이재명은 가시”
한 민주당 예비후보자는 자신이 몸소 겪은 민주당 공천을 이렇게 표현했다. ‘혁신 공천’과 ‘친명횡재 비명횡사’라는 평가가 난무하는 이번 공천, 그 주역들에 대한 평가다.
민주당 공천 과정에서는 유독 ‘잡음’이 많았다. 현역 의원이 배제된 채 떠도는 정체불명의 여론조사가 있었고, ‘현역의원 하위 20%’ 명단이 언론에 유출됐다. 중진 의원을 향한 불출마 권유도, ‘컷오프’도 매끄럽지 못해 탈당이 이어졌다. 급기야는 ‘경기도팀’이라는 정체불명의 조직을 두고 공천 비선 논란까지 일었다.
그러나 공천 작업을 주도한 이들에게도 사정은 있다. 세대교체, 현역 물갈이, 혹은 자연스런 당권교체라는 명분이다. 친이재명계 좌장 정성호 의원과 4선의 안규백 전략공천관리위원장, 그리고 이재명 당 대표가 이 같은 명분 아래 ‘컷오프’부터 ‘선거 전략’까지 구상하고 실행해왔다.
“당직 자격 정지는 돼야 하지 않을까. 공관위 컷오프 대상” (정성호)
지난 1월 9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포착된 이재명 대표와 정성호 의원의 텔레그램 대화 내용이다. 정 의원은 이 대표에 가장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인물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사법연수원 18기 동기로 30년 이상 함께한 동지, 내성적 성격의 이 대표에게 쓴소리도 거침없이 하는 조언자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친명계 좌장인 그는 어떤 당직도 맡고 있지 않지만 공천 과정에서도 핵심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의 예비후보들도 그걸 알고 있다. 다만, 정 의원을 만나본 사람들은 그가 자신만의 칼 같은 원칙으로 인물 검증을 한다고 했다. 친명계 정치인이라 해도 성희롱성 발언을 했다면 단호히 컷오프하고,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조언을 이 대표에게 한다는 것이다.
정 의원은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취임했을 때도 ‘윤석열 아바타가 왔다’며 조롱하는 지도부와 달랐다. 그는 “(한동훈은) 윤석열 대통령과 다르다.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라며 “민주당이 막연히 한 비대위원장의 실책만 기다리고 방심하다가는 필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4선의 중진 정성호 의원은 공천 과정에서 인간적 스킨십이 부족했던 이 대표의 빈자리를 메꾸는 역할도 했다.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서울 중성동갑 컷오프 과정이 대표적인 예다. 임 전 실장은 자신의 컷오프 가능성이 거론되자 이 대표에게 수차례 전화를 했지만 이 대표는 받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 정성호 의원이 임 전 실장을 만나 소주 한잔을 거치며 속내를 들었다는 후문이 있다. 임 전 실장은 송파갑 출마 권유를 끝내 거부했지만 ‘대표 측근이 내 얘기를 들으니 좀 후련하다’는 소회를 남겼다고 전해진다.
작년 12월 첫 전략공천관리위원회의 첫 회의가 열리던 날, 안규백 위원장은 당의 전략공천 방안을 이 같이 표현했다. 단순히 한 선거구에서의 경쟁력만을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총선 구도에 맞춰 전략공천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민주당 당직자 생활을 거쳐 4선 의원으로 20대 국회 국방위원장도 지냈던 그의 목소리에는 사령관 같은 자신감과 단호함이 있었다. ‘이기는 공천’을 해야 한다는 당 안팎의 비판에도 ‘현역 물갈이’를 과감하게 실천해온 안 위원장은 민주당 예비후보자들에게 ‘움직일 수 없는 바위’ 같은 존재였다고 한다.
민주당의 이번 공천 과정에서 주된 잡음은 주로 전략공관위에서 나왔다. 비명계 4선 홍영표 의원은 왜 컷오프를 당하는지, 지역구 관리에 힘써온 임종석 전 비서실장 대신 왜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서울 중성동갑에 출마를 해야하는지, 서울 도봉갑에는 왜 인재근 의원의 후임 대신 ‘차은우보다 이재명이 이상형’이라는 안귀령 대변인이 공천돼야 하는지 등이다. 공천 과정에 분노한 중진 의원들이 탈당이 이어져도 안 위원장은 끄떡없이 공천을 이어나갔다.
안 위원장의 그 ‘끄떡없음’에 ‘소통’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안 위원장은 전략공관위 출범 초 ‘동일 지역구 3선 초과 금지’ 등을 언급하는 국민의힘 인요한 전 혁신위원장을 비판했다. 그는 인 전 위원장이 “소통이 부족하고 독단적”이라며 “(민주당은) 당의 전략을 위해 소통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국민 오디션 결과를 엎고, 서울 서대문갑의 경선 후보에 대장동 변호사 ‘김동아 변호사’를 올렸다. ‘금품수수 혐의’를 받는 기동민 의원은 컷오프하는데 같은 혐의를 받는 이수진(비례) 의원에게는 경선 기회를 줬다. 납득할만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왔다.
안 위원장을 두고는 ‘기름칠을 한 바위’라는 평가도 나온다. 상대에 대해서는 흔들리지 않는 원칙을 고수하지만 자신에게는 유한 원칙을 적용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다. 전략공관위원장을 맡기전 ‘올드보이 퇴진론’에 대해 “나도 올드보이”라며 쓴웃음을 짓기도 했다. 과거 정세균계 대표인사로 꼽혔던 그가 지난해 12월 돌연 ‘친명계 전략공관위원장’으로 불리며 ‘공천파동’을 낳은 전략공천을 주도한 모습이다. 그리고 서울 동대문갑의 단수공천을 받아냈다. 왜 안 위원장은 ‘중진 퇴진론’이 합류하지 않느냐는 비판이 일자 그는 “화가는 자신의 자화상을 그리지 않는다”고 갈음했다.
이 대표를 두고는 ‘가시같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 대표를 위협할 가능성이 있다면 자의든 타의든 찌른다는 것이다. 단순히 공천 과정에서 제거되는 것을 넘어 ‘공천 파동’을 대하는 이 대표가 태도가 그랬다. 이 대표는 공천에 반발하며 당을 나가는 중진 의원들에게 “경기하다가 질 것 같으니까 경기를 안 하겠다는 것”이라며 “입당도 자유고 탈당도 자유”라고 날카롭게 대응했다. 민주당에서 국민의힘으로 당적을 옮긴 김영주 국회부의장에 대해서는 “윤리 항목에서 0점을 받았다”며 “채용 비리 부분을 소명하지 못했다”고 쏘아붙였다. 그러면서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는 ‘혁신 공천’을 강조했다.
이 대표를 옆에서 본 이들은 그가 최근 더 날카로워졌다고 이야기 한다. 지난해 2차례의 체포동의안 표결, 올해 초 흉기 피습을 겪으며 자신의 입지를 더 공고하는 ‘이재명의 민주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집념이 강해졌다는 것이다. 수차례 검찰 수사를 받으며 기자들의 질문에 묵묵부답하던 ‘고구마 이재명’은 어느새 윤석열 정권과 더불어 비이재명계의 비판에 사자후를 토해내는 ‘사이다 이재명’로 돌아왔다. 하지만 ‘0.5선의 당대표라 그런지 공천이 거칠다’는 평가는 친명계 의원들 사이에서도 나왔다.
전혜숙 의원은 이 대표의 태도에 “동지들이 상처에 소금을 뿌리고 있다”며 탈당했다. 전 의원은 서울 광진갑 경선에서 친명계 이정헌 전 앵커에 패배한 3선 의원이다. 그 외에도 박광온 의원이 이 대표를 정조에 비유했던 김준혁 한신대 교수에게, 강병원 의원이 강원도당위원장임에도 서울 은평을에 출마한 김우영 위원장에게 민주당 후보 자리를 내줬다. 전 의원은 이를 ‘혁신공천’이라고 부르는 대표를 향해 “낙인찍고 조롱하고 있다”고 했다.
물론, 그 현역의원의 자리를 채운 자들 중에는 민주당의 신선한 영입인재들이 있다. 민주당을 탈당한 이상민 의원의 지역구에는 항공우주 전문가 황정아 박사가, 5선의 노웅래 의원 지역구에는 여성 최초 홍익지구대장인 이지은 전 총경이 왔다. 인재위원장인 이 대표가 직접 선발한 민주당의 새로운 얼굴들이다. 한 영입인재는 “문재인의 민주당이 어느 정도 물갈이 돼야 이재명의 진짜 정책들이 실현 가능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표출했다.
이제 민주당의 공천 작업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선거대책위원회를 출범시키며 본격적인 ‘윤석열 정권 심판론’을 띄우는 상황이다. 선대위에는 김부겸 전 국무총리 등 비명계 인사들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재명표 공천판’을 통과한 출마자들이 치르는 선거다. 이재명이 꾸리고 팠던 이재명의 민주당, 그 체제가 이번 총선에서 의미있는 결과를 만들어낼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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