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질 외교” VS “로우키”…러시아의 진짜 속내는?

김경진 2024. 3. 13. 11:1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러시아가 한국인 선교사 백 모 씨를 간첩 혐의로 체포하고 뒤늦게 이 사실을 공개한 것과 관련해 러시아의 의도에 대해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 "체포 발표 시점 ·방식 ·내용, 모두 러시아 스타일"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한러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러시아가 외교 관계의 지렛대로 삼기 위해 백 씨를 추방하지 않고 굳이 체포했고, 이례적으로 언론에 공개한 거라고 분석했습니다.

러시아에서 근무한 한 전직 고위 외교관은 "이런 일은 러시아의 전형적인 외교 방식, 러시아 스타일"이라면서, "체포 발표 시점이나 방식, 내용 모두 러시아 스타일이고, 충분히 예견됐던 일"이라고 설명했습니다.

2022년 9월엔 일본의 외교관이 간첩 혐의로 체포됐다 풀려났고, 2023년 3월엔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의 에반 게르시코비치 기자가 러시아 중부 도시 예카테린부르크에서 간첩 혐의로 붙잡혀 1년 가까이 구금 중입니다.

블라디보스토크의 한 소식통은 "(과거 사례의) 데자뷔를 보는 것 같았다"며 "러시아 당국이 오래전부터 백 씨를 관리하고 인지하고 있다가 기획해서 붙잡고 때맞춰 공개한 거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한국이 서방 제재에 동참하면서 한러 관계가 수교 이래 최악으로 악화된 상황. 여기에 한국은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이라는 최후의 카드까지 들고 있기 때문에, 러시아 입장에선 한러 관계를 관리할 지렛대가 필요했다는 취지입니다.


■ "북한에 우호적 메시지 던지는 일석이조 목적의 포석인 듯"

또 백 모 씨가 탈북민 구출 활동을 돕던 선교사였단 점에서 북한과의 관계를 증진시키는 일석이조의 목적까지 노렸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합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러시아는 탈북민 구호나 북한 해외 노동자에 대한 인도적 지원이 중국에 비해서는 비교적 용이한 편이었는데,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로 러시아와 북한 사이 밀착 관계가 심화되면서 인도주의 지원이 점점 환경이 어려워지는 상황이 됐다"고 밝혔습니다.

조 연구위원은 "이번 사안도 최근 밀착하고 있는 러시아와 북한 간의 관계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며 "러시아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를 돕는 인도주의 활동 중에 체포를 함으로써 자신들이 북한에 협조하고 있다, 이런 메시지를 준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러시아는 지난해 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탈북한 모자를 직접 체포해 북한에 인계했고, 인도 지원 활동을 하는 선교사를 추방하는 등 북한과 한층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러시아에서 한인 교회를 운영하는 한 목사는 "블라디보스토크에 원래래 선교사와 가족들까지 200명 정도 있는데, 상황이 엄중하고 예민해서 매우 조심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백 씨 체포를 직접 요청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 "러시아 국내 정치적 목적도 있을 것"

이번 조치는 러시아 내부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합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또 반정부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의 갑작스러운 사망 등으로 혼란을 겪고 있는 러시아가 '간첩 체포'를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내부 결속을 다지려 한다는 겁니다.

더욱이 러시아에서는 오는 15일부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종신 집권'을 노리는 대선이 시작되는데, 사건을 두 달 이상 알리지 않은 채 갑자기 대선 전에 언론에 공개한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합니다.

한 러시아 전문가는 "블라디보스토크의 경우 북한 무기들이 옮겨가는 지역이기 때문에, 미국 CIA부터 영국 MI6, 이스라엘 모사드까지 전 세계 첩보원들이 모여 이른바 '첩보 전쟁'을 벌이는 곳"이라며 "러시아가 이 지역을 매우 민감하게 들여다보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런 곳에서 서방으로 분류되는 한국인이 간첩으로 체포되는 것은 러시아 국내 상황에 비춰도 큰 이슈라는 분석입니다.


■ 말 아끼는 정부…"러시아도 신중, 차분히 논의 진행 중"

이번 사안에 대해 우리 정부는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습니다.

외교부 당국자는 체포된 한국인의 신원, 정부의 사건 인지 시점, 러시아 측 의도 등에 대해서는 "우리 국민의 신변 안전이 확보되기 전까지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언급을 삼가고자 한다"고 말을 아꼈습니다.

러시아 측에 외교적 항의가 있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이미 필요한 소통을 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다만 러시아의 분위기가 우리 쪽에 비교적 우호적인 것으로 전해집니다.

정부 관계자는 "러시아가 영사 조력을 허용하면서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고, 차분하게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백씨의 체포 시한은 6월 15일. 이때까지 본격적인 한러 간 접촉이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데, 이번 사태가 수교 이후 최악이라는 한러 관계를 가늠할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픽: 권세라

■ 제보하기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카카오 '마이뷰', 유튜브에서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김경진 기자 (kjkim@kbs.co.kr)

Copyright © K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이용(AI 학습 포함)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