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 200주년···브루크너 재발견될까
“악단과 청중 모두에게 쉽지 않은 음악”
초심자는 4번과 7번…실황 현장이 중요
올해는 후기 낭만주의 대가 안톤 브루크너(1824~1896)의 탄생 200주년이다. 그가 태어난 오스트리아에선 1년 내내 브루크너의 음악을 들려주는 콘서트, 축제, 전시가 열린다.
한국에서도 브루크너의 교향곡이 공연된다. 2월 부천필하모닉이 교향곡 6번을 연주했고, 4월 서울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에서 4번(제주시립교향악단)과 7번(인천시립교향악단)을 들을 수 있다. KBS교향악단은 7월(9번)과 9월(5번), 서울시향은 12월(7번) 브루크너 교향곡을 연주 일정에 넣었다.
‘탄생 200주년’이라는 상징성을 고려하면 부족한 숫자다. 브루크너의 음악이 재발견될 수 있을까.
신앙과 지성으로 쌓은 교향곡
브루크너는 대기만성형 음악가였다. 빈에 와서도 화려한 ‘음악의 수도’에 녹아들지 못했다. 발표하는 곡마다 혹평을 받았다. 빈을 대표하는 악단인 빈 필하모닉은 브루크너의 곡을 연주하기를 거부했다. 브루크너는 40세가 넘어 교향곡 작곡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60세에 초연된 교향곡 7번에 이르러서야 ‘최초의 성공’을 거뒀다.
브루크너의 음악은 당시로써는 이례적으로 연주 시간 60분 이상의 대곡이 많았다. 대편성, 힘찬 관악기 소리, 대담한 화성은 브루크너가 동경한 바그너적인 요소였다. 다만 이같이 복잡하고 거대한 교향곡의 부피는 악단과 청자 모두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
브루크너 교향곡의 특징은 말러와 비교하면 더 쉽게 드러난다. 지휘자 브루너 발터는 “브루크너는 이미 신을 찾았고, 말러는 끊임없이 찾고 있다”고 말했다. 린츠 대성당 오르간 연주자이기도 했던 브루크너는 평생을 엄격한 가톨릭 신자로 살았다. 브루크너 교향곡이 성당의 파이프 오르간 소리처럼 차근차근 쌓아 올린 음향의 건축물 같다면, 말러 교향곡은 슬픔, 분노 등의 감정을 조금 더 직접적으로 풀어낸다. 브루크너 교향곡 ‘0번’ 악보를 본 지휘자 오토 데소프가 “그런데 주제 선율은 어디 있죠?”라고 물었다는 일화는 브루크너 교향곡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지휘자 윤한결씨는 최근 기자들과 만나 “브루크너는 할 말만 하고 빠져나가는 느낌인데, 말러는 ‘더 울어라’라고 말한다”고 표현했다. 음악평론가 황장원씨는 “말러 음악은 드라마틱하지만, 브루크너 음악의 드라마는 기술적 요소에 가려져 있거나 깊게 감춰져 있어 관객이 감지하기 어렵다”며 “애호가에게도 공부와 감상 내공이 필요한 음악”이라고 말했다. 음악평론가 허명현씨는 “브루크너 교향곡은 직관적이지 않다. 멜로딕하기보다는 음향의 층을 쌓아서 카타르시스를 얻는 방식”이라며 “빠르고 자극이 익숙한 시대에 층이 쌓일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관객에겐 장벽일 것”이라고 말했다.
악단으로서도 브루크너 교향곡은 흥행과 연주력 측면 모두에서 쉽게 공연하기 어렵다. 한 국내 교향악단 관계자는 “연주에 들이는 노력에 비해 청중의 반응이 적으니 공연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황장원씨는 “말러는 연주의 흐름을 타면 디테일이 거칠거나 사운드가 들쑥날쑥해도 맛을 살리고 감흥을 끌어낼 수 있지만, 브루크너는 악단의 기본기가 좋아야 하는 데다 음악이 요구하는 두텁고 풍부한 울림도 구현하기 어렵다”며 “지휘자와 악단이 오랫동안 연마해야 하는데, 상임지휘자 재임 기간이 짧은 한국 오케스트라 특성상 브루크너 교향곡을 올리는 것은 위험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그래도 브루크너를 듣고 싶다면
통상 브루크너 교향곡은 4번과 7번이 가장 대중적으로 꼽힌다. ‘낭만적’이라는 표제가 붙은 4번은 브루크너도 자신의 작품 중 “가장 알기 쉬운 것”이라고 말했다. 브루크너의 다른 교향곡과 비교하면 “좀 더 밝고 낙천적인 느낌”이 있으며 “음의 빛깔은 선명하고 선율은 직접적인 호소력”을 갖고 있다(문학수 <더 클래식 둘>).
브루크너는 7번을 작곡하던 중 바그너의 부음을 들었다. 브루크너는 2악장 아다지오 주제를 바그너 음악극의 특징과도 같던 ‘바그너 튜바’로 연주하게 했다. 7번 2악장은 KBS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 사용될 정도로 대중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브루크너 음악이기도 하다. 웅장한 결말을 보여주는 4악장 종결부는 “신을 찾은 브루크너의 음악적 특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음악”이라는 평을 받았다(최은규 <교향곡>).
황장원씨는 “4번, 7번 이후엔 브루크너 음악의 종교적 이미지, 숭고함이 절정에 달한 8, 9번을 들으면 좋다”고 말했다. 허명현씨는 “오디오가 아무리 좋아도 실황을 못 따라가는 작곡가가 브루크너”라며 “어떤 브루크너 교향곡이든 눈앞에서 조형감, 입체감을 느낄 수 있는 현장 공연이 가장 좋다”고 말했다.
백승찬 선임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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